07월호 스페셜 PLUS

한반도 통일을 위한 공간 사유,
그리고 ‘통일인문학’

건국대학교 철학과 김성민 교수(통일인문학연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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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을 위한 공간 사유,
그리고 ‘통일인문학’

건국대학교 철학과 김성민 교수(통일인문학연구단장)

한반도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은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두드러지는 가장 큰 특징은 아마도 70여년이 훌쩍 넘어서는 ‘분단의 시간’일 것이다.

한반도 분단과 공간의 형성

하지만 그러한 분단 70년이라는 시간은 단선적으로 흐르는 ‘역사적 시간’만을 단순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70여년이라는 시간을 압축하고 있는 ‘분단의 시간’을 한 축으로 하면서, 동시에 이 시간들이 특정 공간 속에서 압축되는 ‘공간화된 시간’을 중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시간과 공간을 독자적으로 다뤄서는 안 되며 반드시 이 둘의 결합을 통해 사유될 필요성이 우리들에게 주어진다.

한반도의 역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반도의 ‘분단체제’이다. 이러한 ‘체제’라는 규정의 핵심은 분단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분단질서의 자체적인 재생산 기제가 ‘현재의 오늘날에도’, ‘이 한반도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한반도 주민들’에게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한반도 분단체제의 지속은 어떤 측면에서 볼 때 한반도 구성원들을 둘러싼 사회・물리・환경적 공간이 분단에 알맞게 재구조화되는 역사적 과정인 셈이었다.

한반도의 공간에 축적된 ‘트라우마’

주지하듯 분단의 일관된 질서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70여년이라는 시간이 넘도록 유지될 수 있었던 핵심적 이유는 ‘적대성’이라는 사회심리적 기제가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심리적 적대성은 한반도의 여러 공간을 통해 확대재생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분단의 지속은 분명 특정 공간의 생산 과정과 일치했다. 더불어 그러한 공간은 분단체제의 유지라는 특정 목표의 달성과 그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활용되었다. 이를테면 분단의 적대성은 한반도의 여러 공간 속에서 증폭된다. 철원의 노동당사는 ‘탈환’, ‘승리’, ‘학살’, ‘침략’과 같은 단어들로 설명되면서 전쟁의 비극과 함께 남북의 적대성을 강화하는 의미망으로 소개될 뿐이다. 이처럼 우리가 잘 몰랐던 한반도의 다수의 공간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의미체계, 그것의 전승과 재생산 매커니즘을 포착해낼 수 있는 하나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강원도 철원군 노동당사>

하지만 오늘날까지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공간에 대한 고찰은 주제화되지 못했으며, 관련된 전문적인 논의 역시 활발히 전개되지 못했다. 특히 DMZ와 접경지역은 대표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상대에 대한 적대심, 서로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증폭, 오랜 기간 유지되어온 다른 사회에 대한 공포심 등이 의도적으로 장려됨으로써 분단을 보다 강고하게 만들고 있다. 한반도의 구성원들은 그러한 분단체제가 우리들에게 강제하는 지리적, 의미론적 공간 속에서 큰 자각 없이 살아갈 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분단의 적대성을 환기시키는 한반도의 여러 공간들에 대한 비판적이고 자유로운 재인식이다. 또한 그와 같은 비판적 인식 속에서 이 공간에 필요한 새로운 의미체계와 가치지향을 확인하는 일이다.

아픔과 상처가 스며든 공간들, 그것들을 ‘다시 읽는다’는 것

이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개방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간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이 다시금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은 진리에 가깝다.

달리 말해 한반도의 다양한 공간들은 분단의 적대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적대성의 치유적 맥락을 매개하고 실행할 수 있는 실체적 공간이 될 수 있다. ‘공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과 그 결과를 의미한다. 특히나 우리들에게 요구되었던 공간과 장소에 대한 기존의 일반적인 태도 자체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변화 가능성을 가깝게 당겨올 수 있기 위해선 일종의 대안적 공간 사유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파주의 ‘북한군묘지’는 피아(彼我)의 구분을 뛰어넘어 거대한 전쟁에 의해 사라져간 모든 희생자들을 애도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체험의 공간이 된다.

<경기도 파주 북한군묘지>

특히 공간이라는 것은 그것과 결부되어 ‘체험’이라는 독특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가장 큰 장점이 있다. 만약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사유가 시작되고 그것으로부터 기초한 기존 공간을 둘러싼 또 다른 체험이 반복된다면, 곧 인간의 삶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수행적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공간은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충돌이 남긴 아픔과 구조적 폭력에 의한 상처들, 그리고 상처들을 나누고 극복해왔던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서로의 충돌이 낳았던 역사적 교훈과 새로운 가치와 이념들에 대한 강조에 관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들 각 공간 속에 숨 쉬고 있는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내어 맥락화하고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체험일 수 있다.

<강원도 고성군 합축교>

예를 들어, 6.25전쟁을 전후로 남과 북에서 각각 건설해서 완공하게 된 고성의 ‘합축교’는 6.25전쟁의 아픈 역사와 분단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구조물이지만, 동시에 이질적인 남북의 ‘합작’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평화’에 대한 우리들의 희망을 상기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치유는 민족의 아픔과 상처에 대한 기억을 객관적으로 복원하고 애도하면서 마침내는 공감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곧 식민, 이산, 분단과 전쟁의 상처와 그 계속됨이 한반도의 공간들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객관적이지만 동시에 심층적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그 극복의 가능성을 찾아서 세세히 기입하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인문학적 공간 사유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성민 건국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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