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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김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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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라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김헌 HK교수

학문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학자이다. 뛰어난 학자가 좋은 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지원을 받으며 학문에 전념할 때, 돋보이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집현전과 규장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뛰어난 학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이루기도 한다. 유배지에서도 정약용은 수많은 저서를 남기지 않았던가. 따라서 국가의 체계적 지원이 학문 발전에 필수라고 일반화할 순 없다. 그러나 국가적 지원은 학자의 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까지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탄생한 환경은 좋지 않았다. 그리스 전역이 동방 대국들의 침략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철학자로 꼽히는 탈레스의 고향 밀레토스는 기원전 7세기에 뤼디아의 침략에 맞서 전쟁을 치러야 했고, 뤼디아를 무너뜨린 페르시아에 복속되었을 때는 독립을 위한 전쟁을 일으켰다. 바로 이런 시기에 탈레스가 살았고, 밀레토스 학파를 구성하여 그리스 철학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더 좋은 연구 환경에서 체계적인 지원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기원전 392년 철학자이자 수사학교사였던 이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뤼케이온에 학교를 세우고, 약 5년 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에 학교를 세우기 전까지 자연철학자들과 소크라테스는 탈레스와 비슷한 상황에서 학문을 했다. 집단생활하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그들은 세상을 관찰하고 사색하며, 대화하면서 진리를 깨쳐나가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나가는 방식으로 철학을 했다. 그러나 학교가 등장하면서 학문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학교에 학생들이 모이자 교육이 연구를 심화시켰고, 다양한 시각의 비판적인 논의는 연구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연구의 풍성한 결과는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축적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에 날개를 달아준 뤼케이온 학교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에 날개를 달아준 뤼케이온 학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약 20년 동안 공부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5년 뤼케이온에 자신의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수많은 두루마리들은 물론 다양한 동식물의 표본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구노트와 강의록, 출판용 서적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었다. 일찍이 그는 마케도니아 왕실의 초청을 받아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쳤는데, 왕실에 학술기관을 설립하고 관리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그곳에서 축적한 자료들은 물론, 학술기관의 운영시스템까지 뤼케이온의 학교로 옮겨져 왔다. 학문의 도구인 논리학에서부터 자연학, 생물학, 기상학, 심리학, 그리고 정치학과 윤리학, 시학과 수사학에 이르기까지 아리스토텔레스와 제자들이 뤼케이온의 학교에서 이루어낸 전방위적 탐구의 백과사전적 성취는 그 이후 서양학문의 틀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뛰어난 학자다. 그러나 그들의 성취는 단순히 개인의 역량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이 가진 학교의 힘, 조직의 힘이 컸다고 말해야 한다. 그들의 저술 또한 그들의 천재성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들과 대화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하며 비판하고 반박했던 논의의 과정이 있었기에 완성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던 집단 지성적 노력들도 그들의 성취를 가능하게 해주었던 중요한 요소였다. 이런 요소들 덕택에 그들의 성과는 그 이전의 자연철학자들, 소피스트들,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업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시적이고 위력적인 것으로 남게 된 것이다.

1천년 가까이 이어진 국가의 지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상상도>

그러나 그들의 활동에 국가적 지원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주목할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통합하고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여 헬레니즘 제국을 건설한 뒤, 이집트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세우고 그곳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모아 담아낼 거대한 도서관을 세울 계획이었다. 그 계획의 실행은 그의 후계자 프톨레마이오스 1세에 의해 시작되어, 프톨레마이오스 2세에 의해 완성했다. 이를 위해 아테네에서 뤼케이온 학교 소속 데메리오스가 초빙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기획한 뤼케이온의 조직과 운영방식에 엄청난 국가적 지원이 더해진 셈이다.

거기에 ‘무세이온(Mouseio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와 예술, 학문을 관장하는 무사(Mousa) 여신의 가호를 바라는 이름인데, 지금의 ‘박물관(Museum)’이 거기에서 왔다. 이곳으로 지중해의 석학들이 모여들었고, 방대한 자료들이 수집되고 연구되어 정리되었다. 손상된 파피루스는 다음 세대를 위해 정성껏 복원되고 필사되었다. 초대 도서관장인 제노도토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정리했다. 아르키메데스가 펌프를 발명하고,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고, 바케이오스가 히포크라테스의 전집을 정리하고 주해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도서관은 거의 1천년 가까이 유지되었고, 이곳의 성취가 고스란히 서양학문의 토대가 되었다. 바꿔 말하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없었더라면, 서양학문의 성취는 지금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복원된 현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내·외부>

뛰어난 학자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학문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이들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우리에게도 절실하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을 때, 눈을 들어 한번쯤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보는 것이 좋겠다.

김헌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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