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호 스페셜 PLUS

인문학, 다행스러운 결점
(felix culpa ; blessed fault)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찬규 교수

이전호 목록보기 다음호

인문학, 다행스러운 결점
(felix culpa ; blessed fault)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찬규 교수

토마스 아퀴나스가 인용한 “복된 죄악(felix culpa)”은 유다의 배반을 지칭한다.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의 부활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인류에게 구원의 은총이 시작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이 말은 일반화되어 ‘다행스러운 결점’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예컨대 언어학 분야에서 의미를 설명할 때도 사용된다. ‘나무, 돌, 새, 의자’같이 형태가 있는 단어는 물론이고, ‘노랗다, 행복, 바람’같은 추상어, 현상어들을 보면 그 의미의 경계가 어딘지 분명치 않다. 뺨은 얼굴의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물론 의미의 불분명함은 불편할 때가 많다. “정의(正義)”라는 말이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되는지 생각해보라. 그렇지만 의미 범주를 분명히 하고자 무수히 많은 단어들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짧은 순간만 생각하면 뭔가 부족해 보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 결함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이다.

다행스러운 결점의 토대 위에서 움직이는 세상 이 말은 인간의 뇌 기능을 설명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인간의 뇌세포는 시냅스 간극으로 이어져 있어서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다. 이래서 생각을 빨리 해내기가 쉽지 않고, 기억이 희미해지기도 한다. 뇌신경이 끊기지 않고 전선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면 생각의 속도도 더 빠르고, 망각도 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정밀하게 사고하지 못하며, 인간의 감각은 근사값으로 외부 세계를 측정한다. 산에 있는 전나무의 높이나 바나나의 색깔, 바이올린 소리 등을 정밀하게 측정해 낼 수 없다. 물론 계속 경험을 쌓으면 비교적 정밀값에 가까워지지만, 인간은 이런 불완전함 덕분으로 에너지를 덜 쓰고 비교적 오래 살 수가 있으며, 좋지 않은 기억은 잊어가며 살아갈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결점이라 할만하다.

사실 인간 세상도 이 ‘다행스러운 결점’의 토대 위에서 움직인다. 만약 세상에 어떤 완전한 것이 존재해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인간 삶에서 다양성은 약화될 것이며, 삶의 목표 또한 한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세상에서 ‘완전한 것’은 존재한 적이 없으며, 완전함이라고 했던 것도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서 희미한 형체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찾아 수많은 시도를 해보는데, 그 속에서 개성이 만들어지고, 그 다양성이 쌓여 인간의 전체의 삶이 풍성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이 되는 셈이다.

인문학을 상상력의 학문이라 부르는 이유 지난 3000여 년 동안 인문학이 불완전성을 ‘깨닫는데’ 집중해 온 반면 과학기술은 깨달음과 상관없이 즉물적인 방식으로 불완전성을 극복해 왔다. 인간에게는 부족한 정밀값을 가지고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현재의 불완전함을 해소한다. 1000년 전 인간의 수명이 30세 정도였는데 오늘날 평균수명은 80세로 늘어났고, 배고픔, 추위, 더위로부터 벗어났으며, 기계는 뼈를 깎는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인류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람들이 과학기술에 믿음을 갖고 열광하는 이유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고등지능을 갖게 된 것은 고차적 사고(meta-thinking) 덕분이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과거를 곱씹어 보고 인류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며, 그 길이 옳았는지, 우리가 선택해서 가고 있는 이 길이 ‘인간을 보다 완전하게 해 주는 길’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이 근사값 방식으로 사고해서 얻은 결과물이다. 그로 인해 아주 오래 전 과거로부터 먼 미래까지 인간은 시간을 넘나들며 4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모든 지적 소산물이 이러한 능력을 통해 발전되었는데, 그 중 인문학은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더 집중함으로써 인간 사유를 확장해 왔다. 그걸 통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으며, 그것이 매우 다행스러운 결점임을 알게도 되었다. 우리의 삶이 불안정하고, 흔들거리며 흘러가는 것이 다행스러운 것임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는 더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인문학을 상상력의 학문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과학기술이 ‘정밀값’을 무기로 우리 앞에 놓인 불완전함을 빠르게 극복해 나갈수록 보다 먼 미래를 볼 수 있는 인문학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이다. 시속 10Km로 걸어갈 때보다 100km로 달려갈 때 앞에 무엇이 있을지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해지는 것과 같다.

인간에게 존재의 타당성을 일깨워주는 인문학 그러나 인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인문학이 인류에게 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는 필요성보다 더 큰 가치는 인간에게 존재의 타당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이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존엄함을 지닌 독립적인 개체이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고 ‘나에게서’ 끝이 나야 하는 자기중심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이것뿐이라면 인간은 그저 우수한 두뇌를 지닌 생물학적 존재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이보다 더 나아가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겸손함을 얻게 되고, 그리하여 경건한 영혼을 지닌 존재가 될 수 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텅 비어 있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삶에만 머물 것이고, 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공즉시색(空卽是色)’의 눈을 갖게 되어, “비어있지만 가득 차 있는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은 우주보다 넓은 ‘공즉시색의 세계’를 탐험하여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길을 펼쳐 보여준다. 설명 가능해야 하는 물리학의 법칙과 거리가 멀어 생활의 도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인문학의 숙명이 가히 ‘다행스러운 결핍’의 본보기이다.

이찬규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한국연구재단 정보
  • 대전청사

    (34113) 대전광역시 유성구 가정로 201

  • TEL

    042-869-6114

  • FAX

    042-869-6777

  • 서울청사

    (06792)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25

  • TEL

    02-3460-5500

  • 간행물 심의번호

    20141223-2-17

한국연구재단 웹진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홍보실
  • 홍보실

    TEL 042-869-6111
    FAX 042-861-8831
     

웹진에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나 의견을 기다립니다.

Copyright © 2021 NRF all rights reserved.

당신의 공감talk

글 작성
  • - -

개인정보 수집·이용안내

  1. (수집·이용 목적) 한국연구재단 웹진 이벤트 당첨자 경품발송을 위한 연락처 확인을 위해 수집 · 이용하며,
    경품발송을 위한 목적 외로 사용하지 아니합니다.
  2. (수집항목) 필수항목 : 성명, 핸드폰번호
  3. (개인정보의 보유 및 이용기간)수집된 정보는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되면 지체 없이 파기합니다.
  4. (동의 거부권리 안내) 본 개인정보 수집 · 이용에 대한 동의를 거부할 수 있으며,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벤트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유의사항 안내

  1. 당첨자 발표 후, 등록한 연락처로 모바일 쿠폰 발송 예정입니다.
  2. 잘못된 연락처로 인한 경품 발송 실패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3. 문의: pr@plani.co.kr

개인정보취급방침 및 유의사항을 숙지하였으며 위 사항에 동의하십니까?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