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어디에 살 것인가는 큰 고민거리다. 부동산 광풍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조선후기의 베스트셀러 택리지가 주는 시사점은 사뭇 새롭다. 실학자인 이중환은 1751년 택리(擇里) 즉, 사는 곳을 택하기 위해 지방을 발품팔아 답사하고, 조선판 부동산 족집게 노트를 출간하였다. 과거급제하여 수도 서울에서 행정관료로 출세하는 것이 유일한 인생 항로였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면, '지리'(地理)와 생업에 유리한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의 4가지 요건으로 살 만한 곳을 선정한 그의 관점은 가히 혁신적이다.
그로부터 270여 년이 흐른 오늘날 서울은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낙오한 남인 출신 사대부가 바라본 권력과 욕망의 공간과 크게 다르지도 않다. 젊을수록 그 병세가 더욱 깊은 이른바 서울병(病)이 만연하다. 심리적으로는 막연한 동경과 기대감에서 시작하여 신체적으로는 이주를 단행하며 도시의 고독과 미래 불안의 회한을 반복하며 서울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으려 경쟁한다. 교육, 문화, 일자리, 교통 등 모두가 서울로 편중되니 과밀로 인한 비극도 발생한다. 이쯤 되면 시대의 인재가 30여 년 유랑 세월 끝에 전한 진심 어린 충고의 결말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살 수 없다. 장차 살 땅이 없어지고 살 땅이 없어지면 동서남북이 없어진다......이렇게 되면 사대부도 없어지고 농부와 장인, 상인도 없어진다......사대부가거처 즉, 사대부가 거처할 만한 곳을 지은 이유다."
젊은 인재에게 기회가 없고 그들에게 살만한 곳이 마련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미래도 없다. 수도권 쏠림의 대안으로 인기 있는 의·약대 지역인재 선발 의무화, 이전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채용할당제, 대학정원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억제책은 진학 기회의 희소가치를 높여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풍선효과를 낳았다. 재수나 반수로 지방대학의 중도탈락률이 높아지고, 급기야 초등 의대반까지 등장하며 사교육비는 26조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수한 인재를 지방에 할당하는 이른바 '인재분산' 전략은 기어코 정부를 이겨먹고 마는 교육정책 내성만 키웠다.
지역을 살리려 각 부처는 저마다 정책 파이프라인을 설치하고 공급밸브를 열어 보았지만, 지역이 자가발전할 동력을 얻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굳어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비약적 발전이 필요하고 지역혁신으로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중앙정부 의존적 재정구조나 기존 산업으로부터 탈피하여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만큼의 스파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지역이 주도 하에 대학이 지역혁신 생태계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RISE 체계(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범부처 인재양성의 지역 융합적 점화에 나섰다.
중앙정부는 고등교육에 대한 행·재정 권한을 지자체로 위임·이양하여 지자체가 리더십을 갖고 대학과 지역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인재양성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RISE의 핵심 목표다. 교육부는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연계·통합하여 2025년부터 기존 예산의 절반을 시·도 지사에게 위임하여 실질적인 재정 권한을 갖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지자체와 대학이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고 관련 법령을 개정하여 지원한다. 이로써 지자체는 지역혁신을 선도할 글로컬 대학을 육성하는 등,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정책을 자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다.
지난 2월 RISE 시범지역을 공모한 결과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 중 13개 광역지자체가 지원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고, 이 중 7개 지역을 선정하여 현재 시범체계 구축 중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는 하향식 정책전달이 아닌 지방정부와 공동설계(co-design) 방식으로 지역주도로의 전환을 위한 이행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며 협약을 체결하여 대학지원에 대한 의지와 신뢰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수평적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갈 전망이다.
2014년 「지방대학 육성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지자체의 고등교육에 대한 책무가 법적으로 구체화 되었지만, 중앙정부와 대학 간의 양자 구도에서 지방정부가 지역대학을 총괄 지원한 경험은 부족하다. 이 때문에 RISE 체계 도입을 위한 지방정부의 역량과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우려도 크다. 지자체는 RISE 시범체계 구축(안)에서 대학지원을 위한 지자체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지자체 전담법인인 RISE센터를 지정 운영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부산과 전북은 테크노파크를, 경남과 전남은 평생교육진흥원을 그리고 충북, 경북, 대구는 지자체 산하 연구원을 전담법인으로 지정하였다.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표준모델에 따른 체계 구성이 아닌 각 지역의 사정과 여건을 고려하여 전담법인을 둠으로써 지역 최적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대학지원을 지역주도로 전환할 때의 최대 장점은 대학의 의견을 가까이에서 듣고 효율, 효과적으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다. 지자체는 지역사회의 수요와 요구를 명확히 파악하고, 대학의 역할과 기능을 지역발전 방향과 일치시키기는 조정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또, 지역의 내외적 자원을 연계·통합하여 부족한 자원을 추가 확보하고, 한정된 자원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략적으로 배분, 관리하는 기획력을 가져야 한다. 기획자의 숙명은 혼자 아닌 같이 일하는 것이고, 핵심 덕목은 구성원의 진정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다. 지자체 리더십의 출발점은 소통이고, 제대로 소통하는 지역이 RISE 체계의 성과를 누릴 수 있다.
학령인구 급감이 예고되어 있다. 이전과 같이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대학을 골라가기 위한 요건으로 新택리지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였다.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부가가치 역량이 대학 선별의 핵심 요건이 될 것이다. 범재를 인재로 키워줄 대학의 혁신역량이 그 지역에 거주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우수한 인재는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더 빠르게 떠난다. 두뇌유출(brain drain) 걱정이 없는 지역이나 지식, 산업 분야는 사실상 없다. 유출을 걱정하기보다 지식 창조의 힘(brain power)이 있는 대학이 먼저 되어야 한다. RISE 체계 구축을 통해 지자체, 대학, 기업, 그리고 모든 혁신기관이 이해와 개방으로 지방대학 대도약의 시대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휘정
미국 The George Washington Univ. 교육학 석사, 고려대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 ERIC Clearinghouse on Higher Education, 성균관대, 고려대에서 대학행정과 다수의 연구를 수행하였고, 현재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진로교육연구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대학리셋’(공저, 2021), ‘지방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자율과 책무: 일본의 공립대학 법인화의 시사점을 중심으로’(2022) 등이 있다. 연구분야는 고등교육, HRD, 진로교육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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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의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대학이 지역발전의 허브가 되어 지역을 살리고, 지역은 경쟁력 있는 지역대학을 육성하여 대학을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인재를 양성하고 지역에서 취업·창업을 하며 지역에 거주까지 하게 되는 지역발전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RISE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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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고등교육에 대한 교육부의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중앙집권적 대학지원 방식으로는 지역소멸과 지방대학 위기를 극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시·도에 대학지원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여, 시·도 주도로 대학을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혁신 허브로 육성·지원하게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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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2025년에 전 지역으로 RISE를 확대 시행하며, 대학재정지원사업의 50% 이상을 RISE 예산으로 전환한다고
하는데, 전체 시·도에는 어떤 방식으로 예산을 배분하나요?
시·도가 RISE 계획을 수립하여 예산을 교육부로 신청하면, 교육부와 기재부가 검토해서 확정하고, 이후 국회에서 예산안이 확정되면 시·도로 예산을 내려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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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교육부가 대학재정지원사업 50% 이상을 시·도로 예산을 내려주면, 시·도에서도 매칭해야 하는 비율이나 조건이 있나요?
시·도마다 재정상황과 여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매칭 비율이나 조건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지역의 대학을 육성하고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도에서도 예산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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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시·도별 전담기관 법인의 역할은 어떻게 되나요?
교육부가 시·도별로 대학재정지원 예산을 출연하면, 시·도 법인에서 예산을 교부받게 될 것입니다. 지역주도로 사업을 기획하고 참여대학에 사업비 교부, 집행·관리, 선정 및 성과평가 등 사후관리까지 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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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글로컬 대학과 RISE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지자체가 대학과 상생 협력하기 위한 체계가 RISE이며, 글로컬 대학은 지자체와 대학이 함께 키워 나가는 경쟁력 있는 지역 대학을 의미합니다. RISE의 대표적인 성과가 글로컬 대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역의 우수 인재가 글로컬 대학에 진학하고, 글로컬 대학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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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은 무엇인가요?
지방대학의 혁신 및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고등교육 분야 특례 제도로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을 도입(’21.6)하면서 특화지역 지정(’21.12)을 했습니다. 기존에는 RIS 지역 플랫폼 단위로 신청하고 지정했다면, 이제는 시·도 단위로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을 지정할 계획입니다. 시범지역이 특화지역을 신청하면 심의를 통해 고등교육혁신특화지역으로 지정하여 맞춤형 규제 특례를 제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