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업적평가의 양적평가 위주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우수한 사례를 살펴보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DORA 선언, 라이덴 선언, IEEE 권고안, REF(Research Excellence Framework), ERA(Excellence in Research for Australia) 등을 살펴 보았으며,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량 지표 의존도를 낮춘 평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DORA 선언, 라이덴 선언과 IEEE 권고안 등은 기존의 정량 평가지표 중심의 연구평가를 탈피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DORA 선언은 개별 연구를 학술지 인용지수(JIF)로 평가하는 것의 위험을 경고하였으며, 다양한 연구 결과물로 연구가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라이덴 선언은 정량 지표 평가에서 제외된 목표에 따른 평가나 지역성 고려 등의 상황을 평가에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IEEE 권고안은 동료 평가의 비중을 높여 연구 커뮤니티에 따른 질적 평가를 제안하고 있다.
둘째, 연구의 질적 평가를 위한 다양한 지표 개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출판물에 대한 인용도로 개별 연구 과제를 평가하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비판 하에 다양한 질적 평가 요소가 대두된 것이다. DORA 선언의 연장선인 TARA 프로젝트에서는 대화형 대시 보드와 리소스 툴킷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라이덴 선언은 CWTS의 Leiden Ranking으로 확장되어 책임감 있는 대학 순위의 주요 원칙과 내용을 제안하고 있다.
한편, 해외의 교수업적평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해외 주요 대학의 업적평가 문서, 질적 업적평가 기준, 승진 심사 과정 및 업적평가를 위한 의사결정과정 등에 대해서 분석해 보았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수에 대한 평가를 승진만을 위한 심사가 아닌 교수업적의 양적 및 질적 요소를 파악하는 과정으로 본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 모든 대학에서 교수를 평가할 때, 출판물의 양적인 기준뿐만 아니라 이력서, 외부추천서, 학생추천서, 대표저작과 설명, 강의평가, 상담자료, 봉사자료, 수상이력, 연구비 수주, 산학협력자료, 내부 평가 등 다양한 문서를 기준으로 질적인 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둘째, 대학의 목표와 자율성을 포함한 다각화된 질적 업적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러한 질적 평가 기준은 학내 구성원과 사회의 요구를 반영해서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공과대학으로 유명한 중국의 칭화 대학교는 2020년 규정 개정을 통해 전면적으로 연구업적 평가에 질적인 요소를 도입하였으며, 특히 각 학과에서 심사 학술지 목록을 선정하여 각 학문 분야의 특성과 트렌드를 반영하도록 규정을 개정하였다. 칭화 대학은 또한 학술지나 인용지수를 지나치게 홍보하는 행위도 금지하여 연구의 수와 상위논문 중심으로 평가를 제공하는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런던 대학교도 DORA 선언을 지지하는 수준을 넘어, 각 연구자가 Open Science를 준수하는 의지와 방법을 심사 문서에 삽입하도록 요구하였고, 실제로 대학에는 ‘Office for Open Science and Scholarship’를 설치하여 실천하고 있다.
셋째, 연구 업적 평가 방법을 볼 때, 평가는 학문 분야의 성격과 특징을 반영하여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조사 대상 대학은 후보자가 학교에 바로 심사를 요청하는 식이 아니라 학장을 주체로 하는 학과 및 학부 내의 위원회에서 학문 분야의 성격과 특징을 반영하여 포괄적인 심사를 시작한다. 학과의 심사는 내부 종신교수들, 동료 교원 또는 임시위원회 등의 평가가 포함되며, 이들은 후보자의 연구와 경력이 각 학문 분야에 얼마나 중요성과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평가한다.
넷째, 질적 평가는 다양한 절차와 과정을 거치며 의견 수렴 과정을 포함한다. 조사 대상이 되었던 대학교는 모두 승진 평가 단계를 다면 평가로 진행하고 있었는데, 학과, 학부, 학교로 이어지는 큰 흐름 가운데 최고 17단계의 과정을 거쳐 한 후보자의 승진이 결정된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 가운데 다수의 연구자나 보직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며, 한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 아닌, 복수 평가자의 논의와 협의를 거치는 과정 속에서 후보자에 대한 장단점 평가와 평가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게 마련되어 있다.
다섯째, 이러한 평가의 과정은 교수자의 성장을 돕는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북경 대학교, 스탠포드 대학교, 임페리얼 컬리지 런던 등은 과정을 위한 승진 심사 준비가 아닌 동료 연구자와의 상호작용 활동을 과정에 포함한다. 승진을 준비하는 후보자는 선배 연구자의 조력과 도움을 받아 연구의 방향성, 개선 사항 등을 도출하여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와 같은 평가과정이나 절차, 질적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교수업적평가에 대한 원칙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라이덴 선언에서는 ‘연구성과 평가 방법론 10가지 원칙’으로 정량평가의 역할, 연구목표에 따른 평가, 지역성 고려, 투명한 과정 유지, 평가 데이터 검증, 분야별 다양성 고려, 개인의 질적 평가 강화, 잘못된 결과 주의, 평가와 지표의 효과 인식, 지속적인 지표 관리 등을 제시하고 있고(Hicks et al, 2015), ERA 지표는 정량평가, 국제적 인정, 다른 학문 분야 지표와의 비교성, 연구의 품질 및 우수성 식별, 모든 분야의 연구 구성요소와의 관련성, 반복 가능 및 검증 가능, 시간 제한, 행동 영향 등 8가지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으며(Australian Research Council, 2019, p18), IEEE의 권고안에서도 크게 복수의 보완적인 계량지표 사용, 학술지 평가 측정도구로 개별 논문의 품질 측정 자제, 질 평가를 위한 동료평가 필요 등을 제시하고 있다(유소영 외, 2015).
사례분석의 시사점을 볼 때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업적평가 환경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차이는 대학의 교수평가관계자 면담 및 교수자 대상 설문조사결과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한국연구재단,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