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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BK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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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4단계 BK사업단장을 맡게 되면서 스스로 던진 질문이 있다. 학부의 구성원들이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 중요한 요건은 무엇일까. 필자는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닌 중요한 질문 자체를 찾는 능력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평가 제도는 대부분 질문보다는 ‘답’을 찾는 능력을 중요시하고 있다.
본교 생명과학부에 새로운 질문을 도출하고, 난제에 도전하는 연구풍토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평가제도는 구성원이 스스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면서 조직 전체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본 틀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교수진이 교육 및 연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평가방식을 개선하고자 했다. 본고에서는 기존 서울대학교 교원평가제도가 가졌던 문제점과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 앞으로의 개선 방향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기존 서울대학교의 교원평가제도는 숫자 위주의 양적 기준만 존재한다는 문제가 있다. 교육활동 분야의 평가기준을 자세히 살펴보면 평점요소는 책임시간(15점), 학위배출(15점), 강의평가(5점), 기타(5점)로 총 40점을 이룬다. 전공과 무관하게 획일적인 기준이 적용되며, 강의 책임시수의 충족 여부와 배출학생 수 위주의 간단한 양적 기준만 존재했다. 즉, 도전적, 혁신적, 자율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을 위한 교육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는지에 대한 정성적인 평가 기준이 없다.
점수 채우기에 급급한 연구분야연구활동 분야의 평가기준 역시 전공과 관계없이 정량적 기준만 존재해 질적인 우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국내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하버드 대학 등 세계 유수 대학에서 교수의 개별 성과물에 점수를 부여하는 등의 숫자로 된 규정을 찾기 힘들다. 국내 연구 중심의 대학도 마찬가지다. 카이스트는 학과 재량에 맡기고 있으며, 포항공대는 연구실적물의 편수를 제한하여 오히려 많으면 불리할 수도 있는 등 본부 규정에서 최소 기준만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의 경우 조교수 재임용을 하려면 논문이 최소 3편이 필요하고, 부교수 승진은 5편은 필요하다.
특히 자연대는 학과 내에서도 세부 전공에 따라 논문 출판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르다. 실험 분야의 경우를 예시로 들어보자. 조교수 부임 후 강의를 시작하고 연구실을 구축해 대학원생의 기초 교육만 하는 데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어 논문을 위한 실험결과를 도출하는 데 2년 이상,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라도 논문을 작성하는 데 3개월 이상, 논문 심사 및 수정에 최소 2개월에서 1년이 소요된다. 특히 분야에 상관없이 수준 높은 논문일수록 review와 revision에 걸리는 시간은 훨씬 길다. 내부 조사 결과, 생명과학부 대학원생이 첫 논문을 출판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입학 후 평균 5년 이상이다. 그런데 분야에 관계없이 부교수 승진 요건 점수(300점)를 맞추기 위해서는 임용 후 3년 동안 주저자 논문 4편을 포함한 5편 이상의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연구자는 편법의 유혹을 받게 된다.
생명과학부 교수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승진 시 논문 쪼개기를 하거나 출판이 쉬운 부실 학술지에 점수 채우기용 논문을 투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들은 학위과정이나 박사후 과정(포스트닥) 시절에 했던 연구들을 모아 논문거리를 만드는 종속적이고 단기적인 연구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러니 긴 호흡의 독자적, 도전적, 창의적인 연구세계 구축을 위한 시도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런 방식으로 무작정 양적 기준을 채우기 위해서는 교수가 직접 실험을 할 수밖에 없어 자연스레 교육에 신경을 쓸 여유가 부족하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반복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평가제도는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의 역량 발휘를 도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조직 전체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기본 틀이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평가제도는 평가자와 피평가자 간 양방향적인 소통이 없다. 평가자는 피평가자가 제출하는 서류에 근거해 점수를 부여하는 식의 일방적인 평가만 지속하고, 이러한 평가로 인해 피평가자는 교수로서 자기개발이 어려울 뿐 아니라 조직봉사를 위한 자극을 받을 기회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교원이 능력을 발휘하며 본인의 소임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업적평가 방식의 개편을 추진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생명과학부는 4단계 BK사업에 지원함과 동시에 평가제도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먼저 승진 대상자들이 스스로 발전에 필요한 합리적인 질적 평가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를 인사위원회와 조율하는 절차를 거친 후에 전체 교수회의에서 의결했다. 기본 동의 사항은 같은 학과 내 세부전공에 따라 불이익이 없는 보편타당한 지표를 설정하고자 했다.
양적 기준을 채우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IF(Impact Factor)나 H-index(Hirsch index) 등 세부전공에 따라 차이가 큰 지표를 배제했다. 세부 분야에서의 인지도 위주로 평가하고, 공동연구가 절실한 분야도 불이익이 없도록 하며 나아가 이를 장려함으로써 질적 수준이 더 높은 논문에 도전하도록 유도하고자 했다.
위의 내용을 포함한 개정 후 평가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개정 전에는 연구업적을 중심으로 평가했으나, 개정 후 스스로 기술한 교육, 연구, 봉사 실적에 기반한 정성적 평가를 진행한다. 정량적 지표로 꼽히는 SNIP, IF가 아닌 세부분야에서의 글로벌 수준을 평가한다. 한편 기존에는 리뷰논문을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논문 쪼개기나 부실논문 투고를 막고, 새로운 질문을 찾기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부교수 승진 시에 한정해 리뷰논문을 인정한다. 또한, 평가자는 피평가자의 발전에 필요한 다양한 피드백을 제공하기 위해 발표를 듣고 별도의 멘토링을 진행한다. 공동교신저자 논문의 경우 교신저자 수에 관계없이 100%를 인정해 실험실 간 공동연구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승진 임용 시 양적 기준을 완화했다. 사실 이 부분은 상위 규정인 본부 규정에 위배해 약간의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본부 인사규정에 따르면 필요 시 학장이 대학의 학문적 특성을 고려해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 이에 자연대 각 학과 교수님들의 의견을 수렴해 2024년 2월 자연과학대학 인사규정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육평가는 정량적 지표를 완화하고 자기 기술서를 참고한 정성 평가를 강화했다. 연구 측면에서는 질적 기준 강화를 위해 양적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만들었다. 봉사 또한 기계적인 정량평가에서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부여했다. 전체적으로 일방적인 평가보다는 중간점검 및 멘토링을 통해 양방향 소통의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이다. 연구실적물의 경우 각 편에 대한 평가가 아닌 총괄실적물에 대한 종합평가를 실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서울대학교는 연구중심 대학이다. 연구중심대학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교원업적평가제도 운영을 위해 개선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첫째, 본부와 학과가 신뢰를 구축한 뒤 각 학과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서로의 역할을 분할했으면 한다. 평가제도를 학과의 재량에 맡기고, 대학·본부는 평가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둘째, 저자 수에 따른 논문 점수 등과 같은 연구성과물 인정 점수 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수정했으면 한다. 특히 셋째,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개별 연구 성과물이 아닌 총괄업적의 정성적 평가로 대체하기를 희망한다. 넷째, 정년보장을 받은 교수진을 대상으로 본교의 발전을 위한 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별도의 평가제도를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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