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전 세계 최대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코로나 19. 국가적 재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비단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에서 기인한 문제해결 능력과 미래지향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번 코로나 19 감염증 사태에 대한 인문학적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인문학 교수진이 모여 토론회를 가졌는데요. 이 시간은 기존 미디어에서 반복되어온 직접적인 문제 해결이나 백신에 관한 논의가 아니라, 인문학적 시선으로 근본적인 사회의 흐름을 바꾸기 위함입니다.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를 다루는 학문으로, 사회문화의 변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는 어떻게 역병을 극복했을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판데믹 사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서양 고대인이 역병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피고자 합니다. 세계사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인류 역사를 뒤흔든 판데믹 사태는 최소 여섯 차례 지나갔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원전 431년 발발한 아테네 역병은 전통 사회의 해체와 새로운 사회의 형성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대의 혼란은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미셀 스웨르츠가 1652년부터 1654년까지 완성한 아테네 역병 재난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림을 한 폭 한 폭 뜯어보면, 절대 절망에 빠진 아테네 사람들과 방향을 잃어버린 아테네 국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 서양의 고대인에게 역병은 현대와 마찬가지로 비껴갈 수 없는 사회 질병이었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삶의 조건과 방식을 재정립했습니다. 방황하는 욕망, 치밀어오는 분노,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연민, 자기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뒤섞여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감정을 환기할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때로는 그들을 위로해주고, 때로 웃게 해 주는 감정의 정화 장치가 바로 희극이고 비극이었습니다.
<아테네의 역병>, Michiel Sweerts
오이디푸스에게 물음을 던지는 스핑크스(대영박물관 소장)
이에 아테네는 시민의 감정 정화와 사회적 성숙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디오니시오스 극장을 증축하고, 희극과 비극을 경연하는 축제를 제공하였습니다. 디오니시오스 극장에서 상영된 희극과 비극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었습니다. 하나는 부풀어 커지는 욕망의 열기를 가라앉히려는 시도였고, 다른 하나는 전쟁과 역병을 이겨내고 극복하는데 적합한 정치는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원전 431년에 창궐한 아테네 역병은 비유적으로나 실제로나 당대의 비극과 희극 작가들의 언어와 이야기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으로, 아테네를 덮친 역병은 사회 질병이며 그것의 치료책은 정치라는 관점이 드러나있습니다. 이 비극은 국가란 진실을 뿌리로 삼는 공동체이며, 인간은 끊임없는 자연의 물음에 답변을 제시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의미를 시사하며 아테네인에게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제시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테네 역병은 전통 사회를 해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사회를 모색할 수 있는 원리와 방법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역병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 차원에서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정치적 고민과 반성을 거듭한 끝에, 새로운 사회를 모색할 수 있던 기회가 되었던 셈입니다. 어쩌면, 21세기 스핑크스인 코로나 19가 인간에게 던진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 중 하나는 ‘그것은 인류이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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