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일본수출규제, 고령화, 기후변화, 저성장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최근 우리 사회는 전례를 찾기 힘든 큰 도전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밖으로는 급변하는 산업 환경과 국제 지형에 맞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국민의 안전과 삶의 질이라는 내부 과제 역시 미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최소 수년에서 수십 년의 꾸준한 정책적 관심과 투자, 특히 한 발 앞서 민간과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는 공공 연구개발의 역할이 중요한 사안들이지요. 문애리 국책연구본부장이 무엇보다 ‘집단지성의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냥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지난 4월 부임한 문애리 신임 국책연구본부장은 유방암 전이 기전 연구의 전문가입니다. 1997년 미국 웨인주립대 교환교수를 지내며 유방암 전이의 신호전달경로 연구를 시작한 이래 꾸준하고 성실한 연구로 결국 암세포 전이 유전자와 관련 효소의 역할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바 있습니다. 지난 2001년 연구재단 우수연구센터 세부과제를 시작으로 최우수 실험실(2005), 국가지정연구실(2008), 대학중점연구소(2016) 선정 등을 발판으로 계속해서 독창적인 연구 성과들을 낳으며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떠올랐습니다.
웹진 독자들을 위해 본부장님의 주요 연구 분야를 소개해주세요.
유방암은 여성 암 가운데 1위이고 최근에는 국내 젊은 환자의 비중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높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질환입니다. 유방암은 특히 전이 이전과 이후의 생존율이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조기에 발견되면 외과적 수술이 가능하지만 전이가 되면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보통의 세포는 여러 가지 성분들로 구성된 기질세포에 둘러싸여 있어서 이를 뚫고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변한 암세포는 단백질 분해 성향이 생겨 자신을 둘러싼 기질세포를 뚫고 나와 혈관으로 흘러들어 전이를 일으키게 됩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왜 정상세포나 양성종양이 악성으로 변해 전에 없던 침윤성을 갖게 되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더불어 암세포 주변의 면역세포와 섬유세포 등 이른바 종양미세환경이 어떻게 유방암의 전이를 촉진 또는 감소시키는지도 관심사였습니다. 그래서 대학중점연구소 선정 이후부터는 혈관과 면역, 천연물, 동물실험 전공의 덕성여대 약대 교수들과 함께 암세포와 주변 환경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며 암 전이 기전을 포괄적으로 규명하고 제어하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연구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정책 분야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쌓으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로 교수 생활이 26년째를 맞게 되었습니다. 교수의 본분이라면 무엇보다도 한 분야의 깊이 있는 연구와 강의입니다. 그래야 경쟁력 있는 연구 성과를 도출할 수 있고 좋은 학문 후속세대들을 길러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제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육아까지 병행하자니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리나라 대표 여성 과학자인 나도선 박사님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창립(2001)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지요. 대선배님의 부탁이라 거절이 어려웠지만, 당시 속내는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을 또 쪼개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습니다. 각자 최선을 다하면 될 일이지 왜 이렇게 힘을 모아야 하는지 이해도 못했고요. 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된 노력들이 여성과기인 채용목표제 등으로 정착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험을 얻었습니다. 나의 일 이상으로 공공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이후부터는 대외 활동에 대한 요청을 가급적 거절하지 않게 됐습니다.
다수의 국가연구개발사업과 학내 보직들 그리고 과총, 여성과총, 대한약학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까지 정말 감당하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여성을 자리에 앉혀 놨더니 뭐가 잘 안 되더라, 이런 소리를 듣기 싫었습니다. 많은 부분 개선이 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성이 과학기술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첫 번째 조건은 물론 여성 과학자 스스로 전문지식과 실력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맡은 일을 해내는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리라는 것이 추구해서도 안 되고 또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일종의 소명 같은 것입니다. 그런 만큼 제 본연의 일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뜻하지 않은 역할들에서도 내가 최선을 다하고 모범이 되어야 다른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린다는 사명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생명과학 분야는 한 번 실험이 시작되면 보통 밤낮이 없이 진행이 되곤 하는데요. 맡길 데가 없어서 주말마다 실험실에 데리고 다녔던 두 딸이 엄마 같은 전공은 안 하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열심히 살았지만 딸들에게는 롤모델이 못 된 것이지요(웃음). 하지만 연구재단에 오기 얼마 전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생각하며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면서 ‘전공은 다르지만 엄마 같은 여성이 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딸들에게 들은 최고의 찬사가 다시 새 역할과 낯선 임지로 향하는 제게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