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호 신진연구자 “톡”

초대형 가속기,
냉장고처럼 작아질 수 없을까?

고려대학교 가속기연구센터
신상윤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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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속기는 코로나19 해법 마련의 첫걸음인 바이러스 분석은 물론 신약 개발 후보 물질을 찾는 일등 공신입니다. 성능이 우수할수록 장치의 크기도 함께 커지는데요. 유럽 가속기물리연구소 썬(CERN)의 입자가속기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을 걸쳐 구축될 만큼 초대형 연구시설입니다. 우리나라도 기초연구와 첨단산업의 발전을 위해 포항지역에 이어 대전, 오창 등지에 가속기가 추가로 건설되고 있는데요. 이런 거대시설이 냉장고와 같은 생활가전 크기로 작아진다면, 대학과 기업의 연구실에서, 또 암 치료 최일선인 병원에서 더욱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인 연구와 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가속기에 사용되는 장비를 기존의 거대자석이 아닌 고출력 레이저를 활용하면 가능해집니다. 레이저-유도 가속기 개발에 관한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그 가능성을 향해 많은 연구자가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고려대학교 가속기연구센터 신상윤 연구교수도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레이저-유도 소형 가속기 개발의 주춧돌을 놓고 있습니다.

part1. 연구자의 길

만나서 반갑습니다. 레이저-유도 가속기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수행 중이시죠? 웹진 독자들께 교수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레이저-플라스마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하는 신상윤입니다. 레이저의 원리를 밝힌 과학자들이 196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레이저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일상생활에 쓰이는 레이저 포인터와 조명으로, 안과와 피부과에서는 라식/라섹 수술과 피코토닝 시술 기기로 활약하는 등 의료, 산업, 통신 등 생활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의료용·산업용 레이저보다 더 강력한 레이저를 이용하면 수 킬로미터가 넘는 거대 가속기의 소형화도 가능합니다. 레이저-유도 가속기를 통해 다양한 파장의 방사광을 생성할 수 있으며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단위의 초단파 펄스(진동)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 원자와 분자를 미시 수준에서 들여다볼 수 있어요. 저는 레이저-플라스마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다양한 물리현상에 대한 이론연구와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 레이저-유도 가속기 개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주요 연구주제인 레이저-플라스마 상호작용에 대해 좀 더 소개해 주세요.

플라스마는 고체, 액체, 기체 같은 물질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원자에 엄청나게 큰 압력과 열을 가하면 원자핵과 전자가 각각 전기적인 특성을 지니면서 따로 움직이는 소위 ‘이온화된 기체 상태’가 되는데, 이를 플라스마라고 합니다.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한 안구 각막 제거술을 예로 들면 레이저와 물질(안구 각막)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레이저의 강력한 에너지가 물질에 전달되면서 물질은 순간적으로 플라스마 상태가 되고 금세 증발(벗겨져)합니다. 제가 진행하는 연구는 의료용 레이저 보다 훨씬 고강도의 레이저를 인체가 아닌 금속 플라스마 표적에 사용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레이저를 금속에 쪼이면 플라스마가 만들어지고, 이때 또 다른 레이저를 미리 만들어둔 플라스마와 상호작용하면서 강력한 플라스마 장(wake-field)이 생성됩니다. 초단파 고강도 레이저는 가속기 산업은 물론 차세대 핵융합 에너지원 개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관련분야 연구자가 되고 싶었나요? 연구자로 성장하며 걸어온 길을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어릴 적 꿈은 만화가였어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가 “그림 그릴래? 공부할래?”라고 물으셨는데, 그때에는 그림쟁이는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어요. 사실, 저 역시 그림이 좋으면서도 ‘만화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언어보다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 이과를 택했고, 또 생물과 화학보다 물리가 재미있어 대학 전공으로 물리를 택했어요. 학부 3학년 때 플라스마 물리학에 흥미를 느껴 플라스마 물리를 전공하신 중앙대학교 한상준 교수님 연구실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석사 과정에서는 레이저-플라스마 상호작용을 통한 이온 가속을, 박사 과정은 레이저-플라스마 상호작용을 이용한 전자가속을 연구했습니다. 또 같은 대학 에너지시스템공학부에서 진행하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의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시뮬레이션 연구’ 및 ‘원자력 발전소의 여과 배기 시스템에 관한 시뮬레이션 연구’에도 참여했어요. 현재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고려대학교 가속기과학과에서 공동연구하고 있는 레이저-유도 전자가속 연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part2. 내가 하는 연구는?
레이저를 이용한 소형 가속기 개발의 토대 마련

학문 후속세대 지원사업을 통해 ‘금속 플라스마의 원소 구성비에 따른 레이저 가속 효율 분석 연구’를 수행하셨습니다. 어떤 연구인지 소개해 주세요.

레이저-플라스마 상호작용을 이용한 전자/방사광 가속기를 만드는 것이 연구의 최종 목표입니다. 그 첫 단계로 레이저-유도 전자가속 실험에 요구되는 최적 조건을 찾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즉,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화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레이저와 플라스마의 조건을 찾고 있어요. 현재까지는 가속기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성능이 뛰어났습니다. 썬(CERN)의 입자가속기 LHC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험 장치로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연구도 수행하지만, 건설과 운영에 막대한 비용이 수반돼요. 하지만 소형 레이저-유도 가속기는 크기가 획기적으로 작아져 기업연구소나 대학연구실에도 구축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저 같은 신진연구자들도 가속기를 더욱 쉽게 활용할 수 있겠죠?

연구의 주요 내용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연구의 주요 내용과 최종 목표는 명확합니다. “양질의 전자빔 또는 방사광을 만든다.” 문제는 ‘어떻게’ 만드느냐 입니다. 무작정 아무 플라스마에 레이저를 쏜다고 전자빔이나 방사광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현재 구축된 거대 가속기만큼의 성능을 구현하려면 굉장히 정밀한 제어가 필요해요. 현재 전자빔 또는 방사광을 만드는 방법은 대부분 강력한 자석들을 이용한 RF(radio frequency) 가속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자석이 아닌 레이저를 이용해서 전자빔과 방사광을 만드는 방법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연구가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레이저-유도 전자가속 방식이 실현되려면 앞으로 여러 가지 매개변수를 제어하거나 최적화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는 이론, 시뮬레이션, 실험의 삼박자가 잘 갖춰져야 합니다. 고려대학교 가속기과학과 박성희 교수님과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팀이 레이저-유도 전자가속 실험을 주로 진행하고, 저는 이론과 시뮬레이션 연구를 담당합니다. 즉, 실험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시뮬레이션 연구를 통해서 뒷받침하고, 나아가 앞으로 실험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제안하기도 합니다. 시뮬레이션은 영국 워윅(Warwick) 대학에서 개발한 EPOCH 코드를 활용해서 연구실 내의 워크스테이션과 국가 슈퍼컴퓨팅센터의 자원을 이용해 계산합니다.

연구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연구자가 연구를 잘했냐 아니냐는 대부분 논문으로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단순히 ‘시뮬레이션 결과가 이렇다’라는 내용으로 논문을 발표할 수 없죠. 또한 시뮬레이션 연구를 하다 보면 무작정 부딪쳐 봐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당연히 실패확률도 높아집니다. 물론 실제 실험에서 실패한 것에 비해 시간적, 비용적 손실은 적지만,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한 달 넘게 연구한 결과가 실패로 끝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또 논문으로 발표하지 못하는 강박증도 크고요.

교수님의 연구가 기존 레이저-유도 전자/방사광 가속기 개발 연구와 차별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레이저-유도 전자/방사광 가속기에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고진공 상태 유지와 높은 반복 효율입니다. 기존의 레이저–유도 전자가속 연구는 표적으로 중성 기체-제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방법은 실험 장비의 진공도가 급격히 낮아져 반복 효율이 낮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즉, 실험을 시작하면 닫혔던 밸브가 열리며 순간에 다량의 기체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때 장치의 진공도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그럼 가속기를 유지보수하기 힘들어질 뿐 아니라 다시 진공상태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저는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금속표적에 레이저를 조사해서 플라스마 구름을 만들고 또 다른 펨토초 레이저를 앞서 생성한 플라스마 구름에 조사해서 전자를 가속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레이저 가속기가 탄생하면 기초과학은 물론 산업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됩니다.

금속과 같은 고체 표적을 이용한 레이저–유도 전자가속기가 상용화되면 암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전망입니다. 정상세포가 아닌 종양만을 골라 죽일 수 있는 암 치료용 양성자 가속기가 현재는 규모와 비용 때문에 국립암센터에만 구축돼 있는데, 각 지역의 대형병원에서도 가속기를 이용한 치료가 가능해집니다. 또한 신약 개발, 물질의 미세구조 분석 등 다양한 기초연구와 첨단연구가 소규모 연구실에서도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part3. 나의 원동력, 나의 경쟁력

교수님의 연구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제 경력을 보면 아시겠지만, 또래 연구자보다 비슷한 수준의 연구자가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냈습니다. 남들이 논문을 한 편 볼 때 저는 두세 편 보며 부족함을 시간으로 극복했습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단호함과 결단력을 가지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이행하는 것이 저만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궁극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구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 진행하는 레이저를 이용한 가속기 개발이 최고 관심입니다. 나아가 관성핵융합을 통한 차세대 핵융합 에너지원 개발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두뇌와 컴퓨터의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를 활용한 브레인 컴퓨팅 게임산업 육성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을 하셔서 동생과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서 게임에 관한 관심도 매우 큽니다. (웃음)

연구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 또는 신념, 철학도 들려주세요.

저는 연구자의 길은 상당히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고, 옛날만큼 명예가 따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돈과 명예를 좇는다면 다른 길을 알아보는 게 맞습니다. 따라서 진짜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끈기와 노력으로 버티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신념을 관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갈수록 배워야 할 지식의 양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무차별한 정보가 난무하는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한 정보를 가려내고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더더욱 자신만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재단에 전하고 싶은 당부의 말씀도 들려주세요.

미래의 대학교수가 될 수 있도록 현재 연구교수라는 디딤돌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 박사후국내연수과제(학문후속세대양성사업)가 선정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연구를 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박사후연구자들에게도 많은 혜택이 돌아가 계속해서 신진연구자들이 대한민국 연구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epilogue

꿈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거친 지식의 풍랑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자신만의 항해를 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레이저-유도 가속기라는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는 신상윤 연구교수가 뿌린 씨앗이 땅에 뿌리내리길 응원합니다.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2020.8~현재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가속기과학과 연구교수

2020.2~2020.8

중앙대학교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2013.9~2020.2

중앙대학교 물리학과 박사 졸업
중앙대학교 원자력안전연구센터 참여연구원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가속기과학과 참여연구원

2011.9~2013.8

중앙대학교 물리학과
석사 졸업

2004.3~2011.8

중앙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졸업

연구모음zip
  • 레이저-플라스마 상호작용 : 레이저-유도 이온/전자 가속연구
  • 레이저-유도 방사광 생성연구
  • 관성핵융합 연구
  • 고에너지밀도 물성 연구

내 인생의 책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일로 바쁘셔서 동생과 단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주로 집에서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아버지 서재에서 책을 읽곤 했는데요. 그중 <반갑다 논리야>, <논리야 놀자>, <고맙다 논리야> 시리즈에 가장 애착이 갔어요. 이 책 덕분에 어려서부터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또 고등학교 시절 추천 과학 도서였던 <E=mc∧2 >와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를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달달 외울 정도로 재미있게 봤어요. 그 덕에 플라스마 물리 연구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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