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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문학의 탄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장정희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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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문학의 탄생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장정희 학술연구교수

우연한 기회에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학술지명 가운데 ‘어린이’라는 표현을 담고 있는 학술지가 있는지 검색해 보게 되었다. 약 5천 9백여 종이나 되는 학술지 가운데 불과 3종 정도였다. 그 중 2종은 교육과 관련된 학술지였다. 정신사적으로 근대 ‘어린이’가 태어나고 활동한 시간도 백여 년이 넘고 있지만, 아직 인문학적 연구 대상이 되기엔 이르다는 것일까?

전통적인 유교 사회를 유지해 온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어린이’ 시기는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하여 배움에 있어서도 어린아이의 공부는 ‘몽학(蒙學)’이라고 불렀다. 또한 ‘장유유서’라는 미명을 빌어 오히려 어린 사람과 어른에 서열을 두고 차별을 했다.

그러한 우리나라에 있어 ‘어린이’라는 말이 새롭게 인식되고, 그 ‘어린이’가 사회의 주체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어린이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운동 주체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이는 여전히 그리 많지 않다.

‘어린이’를 새롭게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장하는 세계의 물리적 어린이와 완성된 세계의 정신적 어린이라는, 한 존재의 두 세계를 함께 인식하고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이 아닐까?

어린이 인문학을 탄생시킨 선구자, 소파 방정환 선생

1923년 5월 1일.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개척자, 어린이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소파 방정환’(1899~1931) 선생은 일본 동경 유학생들과 우리나라 최초로 <색동회>를 결성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난 기사는 “어린이 문제를 연구하는 모임”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과 <색동회>는 우리나라 최초로 어린이 인문학을 탄생시킨 선구자요, 그 학회가 아닌가 한다.

<1923년 5월 1일, 방정환과 색동회 동인의 모습>

방정환 선생이 쓴 글은 지금 읽어도 번쩍번쩍 ‘어린이’를 새롭게 인식케 할 만큼 눈부시다.*

*인용: 방정환한울학교 엮음, 『방정환말꽃모음』, 단비출판사, 2018.

‘우리의 어림(幼)은 크게 자라날 어림이요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입니다’

우리의 어림(幼)은 크게 자라날 어림이요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입니다. 어른보다 10년 20년 새로운 세상을 지어낼 새 밑천을 가졌을망정 결단코 어른들의 주머니 속 물건만 될 까닭이 없습니다. 20년 30년 낡은 어른의 발밑에 눌려만 있을 까닭이 절대로 없습니다. 새로 피어날 싹이 어느 때까지 내리눌려만 있을 때 조선의 슬픔은 어느 때까지든지 그대로 이어만 갈 것입니다.

- 「어린이날에」 중에서, 『조선일보』, 1928. 5. 8. -
‘낡은 것으로 새것을 누르면 안 됩니다.’

헌 것 낡은 것으로 새것을 눌러서는 안 됩니다. 어린 것이라 하여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어린 사람의 뜻을 존중하고 어린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여야 우리가 바라는 좋은 새 시대를 지을 새싹이 부쩍부쩍 자라납니다.

- 싹을 키우자, 『조선일보』, 1926.5.1. -

‘우리의 어림(幼)은 크게 자라날 어림이요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이라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어린이의 존재를 인정해 주자는 것이다. ‘맨 밑층 또 맨 밑층’에서 ‘한몫 사람이란 값’이 없었던 어린이를 ‘사람 대접’해 주자는 운동,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인권 운동이 바로 ‘어린이운동’이었다.

‘어린이’라고 하여 업신여기지 말고 어린 사람에게도 존대를 해 주자는 그 운동. 이렇게 백년 전 어린이 운동가들은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세우기 위해 사회 운동을 펼치고 또 몸소 그 윤리를 실천하려고 애썼다.

‘어린이’를 잘 배우고 익히지 못하는 현대의 우리들

그런데 방정환 선생의 이러한 말들은 ‘어린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다.

<방정환 창간 『어린이』지 표지>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면 신문 기사를 장식하는 것은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아동 학대 사건이다. 자녀를 한 인간 존재로서 ‘어린이’가 아닌 부모의 종속물로 알고 함부로 대한 결과이다. 이 모두 인간의 새로운 존재로서 ‘어린이’를 잘 배우고 익히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아기 울음은 말이다.’

말 모르는 아기의 울음의 절반은 울음이 아니고 말(언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무슨 말인 줄을 알아내기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 답답한 어머니-제1회 아기의 말, 『별건곤』 제18호, 1929 -
‘어린이를 잘 인도하고 해방해야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어른의 말에 눌리어 자기 마음에는 잘하였건마는 자기의 어른 마음과는 맞지를 아니함으로 오직 잘못하였다는 나무라는 말만 듣고 울 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어린 아이를 잘 인도하고 해방하여서 조금 자유스럽게 천진 그대로 지키게 하는 것이 자녀교육의 가장 필요할 바이다.

- 천도교소년회 방정환 씨 좌담, 『조선일보』, 1923.1.4. -

아기의 울음이 ‘말(언어)’인 줄도 모르고 울고 보챈다고 때리고 학대하는 부모가 있다면 얼마나 무지한 행동이 되겠는가. 그러기에 방정환은 ‘아기의 말이 무슨 말인 줄 알아내기’에 마음을 써야 한다고 쓰고 있다. 자녀 교육에서도 방정환은 ‘어린 아이를 잘 인도하고 해방하여서 조금 자유스럽게 천진 그대로 지키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할 바라고 역설하고 있다.

어린이 인문학의 눈부신 부활을 꿈꾸며

오늘날 우리의 자녀관은 늘 어떻게 가르칠까, 어떻게 성공시킬까 하는 출세와 경쟁 지향의 프레임 속에 갇혀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어린 하느님 ‘어린이’를 찾고 배워 보자. 어린이의 말, 어린이의 노는 모습을 통해 인류가 잃어버린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자.

백년 전 소파 방정환 선생이 텃밭을 일군 어린이 인문학이 다시금 눈부시게 부활하여 꽃피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장정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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