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호 포커스 人

“세계무대에서 빛나는
과학한류를 꿈꾼다”

한국연구재단 김영동 책임전문위원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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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구재단은 지난 2010년부터 지원사업의 전문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해 해당 학문 분야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학술 및 연구 과제 신청서를 심사하는 위원을 선발하고 관리하는 전문위원(PM, Program Manager)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2012년에는 전문위원 그룹을 대표하는 ‘책임전문위원’ 제도를 도입해 PM제도의 고도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책임전문위원(CRB, Chief Review Board)은 연구실적 상위 20% 이내, 국가연구과제 및 학술단체장 수행 여부, 수상경력 등의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선임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한국인 최초로 물리학 국제기구인 국제순수·응용물리학연맹(IUPAP) 반도체물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된 김영동 교수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IUPAP 첫 한국인 위원장

물리학자인 김영동 책임전문위원은 반도체분광학과 응집물리학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2006년 국가지정연구실(NRL), 2009년부터는 한국연구재단 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WCU) 사업을 이끌며 나노구조체의 비파괴분석법을 개발해왔습니다. 빛을 이용해 3차원 나노구조체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Q 최근 반도체물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신 IUPAP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IUPAP(International Union of Pure and Applied Physics)는 물리학의 국제협력과 과학 발전을 목적으로 1922년 설립된 국제기구입니다. 전 세계 물리학의 발전과 물리학자들의 자유로운 교류 및 연구협력을 촉진하는 한편 인류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응용 분야 지원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요. 조직으로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집행위원회가 있고 산하에 입자물리, 통계물리, 응집물리, 자성물리, 저온물리, 생물물리 등의 전문분과위원회와 워킹그룹을 두고 있습니다.

제가 위원장을 맡게 된 반도체물리위원회는 전 세계 14명의 반도체물리학자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반도체물리학의 발전과 학자 간 교류를 돕고, 2년마다 세계 각지를 돌며 열리는 국제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젊은 반도체물리학자를 선발해 수상하고, 여성 물리학자를 발굴하는 등의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쁜 일은 IUPAP 응집물리위원회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물리학회 현 회장이신 서울대 노태원 교수님(IBS 단장)이 선임되셨고 동시에 부회장단에도 합류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간 제가 IUPAP 한국대표로서 해온 역할에 대해 큰 보람을 느끼는 한 해가 됐습니다.

Q 위원님께서 국제기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국물리학회에서 응용물리분과장, 국제학술대회 조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던 중에 2014년부터 IUPAP 한국대표의 역할을 이어받게 됐습니다. 물리학자는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는 존재라 여겼던 만큼 국내라는 한계를 넘어 세계의 물리학계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큰 보람이자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 첫 총회에 참석을 하게 됐는데 제가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크게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처음이라 긴장한 탓에 일찍 총회장에 도착해 빈 회의장을 둘러보는 데 태극기가 가장 뒷자리에 놓여 있더군요. 괜히 자존심이 상해서 아무도 모르게 슬쩍 중간 자리로 옮겨 놨어요. 그런데 막상 총회가 시작되고부터는 내내 식은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회의 진행요원들이 각국의 대표단 인원수를 고려해 좌석을 배치한 것이었는데 제가 그걸 몰랐던 거예요. 한 나라에서 4~5명씩 파견된 선진국 대표단 사이에 저만 혼자 앉아 있으니 회의장의 모든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 불모의 땅에 도전하듯 국제기구 활동을 시작하며 우리나라가 그간 과학외교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도 절감하게 됐습니다.

Q 우리나라가 IUPAP에 가입한 것은 언제인가요?

우리나라는 1969년에 회원국이 됐습니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국제기구 활동을 시작한 것인데 정작 사소한 의전절차도 모를 만큼 무관심했던 것이지요. 첫 총회 참석에서 또 다른 충격을 받았던 것은 유럽과 미국 물리학계 사이에서 제대로 외교사절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 대표단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물리학회도 이제 70여 년의 역사를 지난 국내 최정상의 학회인 만큼 국내에서의 인정뿐만 아니라 국제화 전략까지 고민해야 할 때라 여겨졌지요.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물리학회에 과학외교와 관련한 IUPAP 소위원회 설치를 강력히 주장하게 됐습니다.

“공직이자 봉사자란 마음가짐으로”

김영동 책임전문위원은 IUPAP에서 만난 노벨상위원회 위원장과의 대화를 전하며 한국 과학계의 국제화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역설하고 있습니다. BTS와 영화 기생충이 빌보드, 오스카 상 등의 궁극적인 영예에 도달하기까지 이미 앞서 많은 수상 전적이 있었던 것처럼, 노벨상 역시 모든 세계적인 권위의 상을 다 받고 마지막에 받는 상이라는 인식입니다.

Q 한국연구재단도 연구와 교육의 국제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좀 더 힘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재단 역시 과제 지원사업뿐만 아니라 국제협력본부를 통해 다양한 국제협력사업 기획과 국가 간 과학기술 협력 의제 발굴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이제 정부 차원에서도 국내의 우수한 연구력이 국제적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전담부서 신설 등으로 과학외교의 정책적 뒷받침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리학분야만이 아니라 수학(IMU), 화학(IUPAC), 생물학(IUBS)등 대부분의 기초과학분야에는 세계적 연합이 있습니다. 제가 아직 타 분야에서의 한국과학자들의 활동까지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나, 분명히 다 잘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선진각국들은 과학외교를 담당하는 정부기구를 두고 필요한 예산과 인력을 시스템으로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학회나 개인의 역량에 의지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그래서 UN이나 OECD 같은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일과 동일하게, 이제 과학계의 국제기구 활동에도 다른 선진국들처럼 국가 차원의 기구가 꾸려지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시기에 충분히 이르렀다고 봅니다. 국제학술 연구계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향력과 학술지, 학술대회, 시상 등에서 한국학자들의 역할을 제고함으로써, 세계 수준으로 평가되는 우리나라의 개별 과학자들이 제대로 국제적 인정을 받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Q 재단 책임전문위원에 선임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2년 전에 처음 선임 소식을 들었습니다. 임기가 2년인데 올해 다시 연임이 결정되면서 CRB 역할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교내 보직의 임기를 다하게 돼 정말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책임전문위원의 일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닙니다만, 책임전문위원도 당연히 전문분야의 발전을 도와야 하는 공직의 일종이라 봉사자의 자세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CRB로 활동하시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아무래도 처음 선임 소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물리분야에 뛰어난 선후배 학자분들이 많이 있는데, 과연 제가 이 자리를 맡을 자격이 있나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요, 저의 연구과제를 지원해주던 한국연구재단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은퇴 전에 이렇게 봉사하는 기회도 좋겠다고 생각을 바꾸고 맡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기억은, 물리 분야 내에서도 또 세부전문분야가 있기에 RB들 사이에서 연구비를 조율해야 하는 일들이 자주 있게 되는데, 우리 RB분들이 자신의 분야만을 고집하지 않고 전체를 위해 선뜻 양보해주심에 감동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 역시 연구자로 자리를 잡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연구재단 과제의 지원을 받았고 그 덕분에 저의 전문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이만큼이나마 인정받는 자리에 와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연구를 시작했던 때보다 지금의 우리나라 과학자분들의 수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그런 만큼 국내의 기초과학자들이 계속해서 제대로 평가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을 수가 없고 가능한 한 많은 분들이 연구재단의 혜택을 누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기초연구, 왕도는 없다

학술·연구단체 등의 추천과 심사를 통해 선임된 기초연구본부 자연과학단의 전문위원 수는 2021년 6월 현재 72명. 이 가운데 책임전문위원은 4명입니다. 이들은 학문분야별 세부 전문가인 전문위원 그룹을 대표해 소관 영역의 연구과제 심사자 추천, 심사·평가과정 모니터링과 결과에 대한 검토 및 의견제시 등을 통해 학문단장의 업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Q CRB 활동 중 어렵다고 느껴지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기초연구는 오랜 시간의 투자와 관심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또 어떤 기술이 미래에 인류에게 어떠한 도움이 될지 당대에는 좀처럼 연구수요와 기술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지요. 가령 1920년대 아인슈타인의 중력 연구가 미진했다면 오늘날 인공위성과 GPS의 활용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MIT 로버트 랭어 교수가 수십 년 전부터 연구해온 mRNA 백신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이만큼의 빛을 보지 못했을 테고요. 따라서 다양한 연구자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를 주관한다는 게 얼마나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인가 늘 고민하게 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선택과 집중이 없다면 연구자들의 수준을 높이는 데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초과학 투자에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한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담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소규모라도 꾸준히 다양한 연구를 지원하는 게 중요하지요. 사실 기초과학은 기초과학이라는 본연의 정의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기초학문의 성과는 단기간에 인류의 생활에 편의를 가져다주는 응용성에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응용과학의 든든하고 넓은 토대를 받쳐줄 기초과학에는 인간의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해 나가는 그런 순수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Q 기초연구 지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부분은?

책임전문위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 연구자로서 말씀드리자면, 한국연구재단의 활동에서 현재로서는 딱히 개선점을 찾기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나라살림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기초연구 투자는 계속해서 꾸준히 확대되고 있고 내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기초연구사업 학문별 지원체계예산처럼 지원체계의 쇄신 움직임 역시 활발합니다. 최근에는 박사후연구원 같은 젊은 과학자들이 5년간 생활에 대한 걱정 없이 본인이 원하는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세종과학펠로우십’이 본격화되는 것을 보면서 기초연구자 육성에 대한 연구재단의 관심과 의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강조 드리고 싶은 일은, 감사하게도 현 정부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잘 확대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차기 정부도 이러한 기조를 이어가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제 10년이 되어온 PM 제도와 RB의 세부분야 분류방식을 분석하고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재단은 연구자들에게 더 만족스러운 연구비 지원과 더불어 수월성 진작이라는 목적을 지속하기 위해 더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방식으로 개편을 시도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듯 학문에 왕도는 없다는 말처럼 계속해서 개선과 발전이 필요하다는 신념 아래 많은 전문위원들, 그리고 연구재단과 함께 보다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늘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런 전 방위적인 노력을 통해 우리나라 기초과학이 세계무대에서 우뚝 설 그날을 기다리며 저 역시 책임전문위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About the Interviewee 김영동 책임전문위원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주립대(Urbana-Champaig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 이과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2014년부터 IUPAP 한국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1년 11월 IUPAP 반도체물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됐다. 미래선도 혁신한국인 선정(2010), 한국진공학회 성원에드워드 학술상(2012)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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