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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思惟)의 서재

130년 전, 그날을 다시 묻는 당신께
「조선인들의 청일전쟁」
서강대학교 조재곤 교수

한 권의 책에 담긴 무한한 세계와 가능성. 활자 속 유영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일상에 전환점이 되곤 하는데요. 사유(思惟)의 서재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으로 탄생한 우수학술저서 한 권과 저자 인터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질문거리를 곁들여 전합니다. 책 너머의 저자, 저자 너머의 빛나는 사유가 담긴 서재에 들어오세요!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동북아 3국의 운명을 가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청일전쟁’. 이 사건으로 청나라는 치욕을 얻었고 일본은 군사적 제국주의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양국의 틈에 휩쓸린 조선은 피로 물든 전장(戰場)이 되었죠. 조재곤 교수는 이 전쟁을 ‘청과 일본의 전투’라는 프레임 너머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속에서 살아가던 조선인은 어떤 자리에 있었고, 무엇을 겪었는지에 대한 사유는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전쟁과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방대한 자료와 정밀한 분석을 통해 복원해낸 그때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조재곤 서강대학교 교수

국민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동국대학교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한국 근대 경제와 정치·사회 변화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01 책을 쓰다 다시 보는 청일전쟁

  • 조재곤 교수님 반갑습니다! 웹진 독자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십니까.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는 조재곤입니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큰 활약을 하였던 소상인조직인 보부상 관련 연구를 시작으로 경제사 외에 한국 근대 정치사와 사회사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본과 국가권력’이라는 주제로 객주 상회사에서 상무회의소‧상무사‧상업회의소‧상공회의소‧상공경제회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 상공업기구의 활동상을 입체적으로 살피고 식민지적 재편 과정 분석을 통해 근대자본가의 역할 파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전쟁과 휴머니즘」 출간 배경에는 저술출판지원사업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출간까지의 여정이 궁금합니다.
    이 책은 2018년 한국연구재단 저술출판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3년간의 지원을 받아 내놓을 수 있었던 결과물입니다. 저술출판지원사업은 규모에 비해 지원자가 많아 선정되기 어렵기로 유명한데요. 저는 운 좋게 채택되어 기회를 얻었고, 다년간 국내외에서 수집해 두었던 방대한 자료를 분석 정리해 한권의 책으로 완성할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료의 양과 연구의 규모가 컸던 탓에 당초 계획보다 1년 정도 더 소요되긴 했지만, 노력의 결과인지 작년에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는 영광도 있었습니다.
  • 130여 년 전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됨에도 당시 총을 몇 자루 쥐었는지까지 상세히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살펴본 사료와 분석량이 어마어마했을 것 같아요.
    한‧중‧일 삼국에서 자료를 찾는 일은 매우 지난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군부와 외교 당국의 공문서부터 참전 병사와 전쟁 기획자들이 남긴 문집·일기·메모, 주요 신문 기사, 종군기자들의 기록까지 폭넓게 조사하였고, 중국에서는 청일전쟁 관련 각종 기록 문서집과 베이징 당안관 자료, 지휘관들의 일기, 이홍장·원세개전집·옹동화문집 등을 살폈죠. 한국 자료로는 주요 연대기와 공문서 외에도 최근 주목된 문집과 일기 자료, 인부와 물자동원을 보여주는 규장각 소장 고문서 등을 활용했습니다. 이처럼 방대한 1차 사료들을 정리하고, 교차 분석하는 작업은 긴 시간과 고된 반복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일본 자료의 경우 서지사항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제목에만 의지한 채 각 현 단위 도서관을 찾아가 직접 확인해야 했고 여러 차례 헛걸음을 하기도 했답니다. 중국 자료와 연구 서적은 대학 시절 학원과 중문과 전공과목 수업을 들으면서 공부했던 중국어 독해 실력이 있어 이해와 검토가 가능했던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네요. 자료를 찾는 데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 지난한 과정 하나하나가 결국 조선인들이 실제로 겪은 전쟁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께서는 청일전쟁을 ‘조선인들이 겪은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셨는데요.
    이러한 시각을 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에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는다’라고 서술한 바 있습니다. 이 말처럼 청일전쟁이라는 국제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인은 전쟁 수행을 위한 공간과 인력·물자를 제공하는 동원과 협력의 대상으로서 일부만 알려져 있고, 그들의 경험과 목소리는 거의 지워졌습니다. 그간 청일전쟁에 대한 연구가 주로 청국과 일본의 전투 과정, 일본 자본주의의 발달사 또는 국제정치학적 동맹 관계 등에 대한 이해에 치중된 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실상은 참담했습니다. 조선인은 일본과 청, 그리고 이들에게 좌우되던 조선 정부로부터 삼중 착취를 겪어야 했지요. 그래서 저는 청일전쟁을 단순한 국가 간 전쟁이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경험한 전쟁’으로 다시 바라보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전쟁과 휴머니즘」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02 책을 읽다 다시 읽는 그 시대 이야기

  •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전쟁과 휴머니즘」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이 책은 일본군의 조선 출병과 경복궁 점령에서 시작해 본격적인 전투 시작인 풍도해전, 성환전투의 결과와 피해상, 한반도에서 가장 큰 전투인 평양전투의 실상과 지역 상황 등을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건이 함의하는 역사상, 인식의 방향과 파급효과를 중심으로 청일전쟁 기간 조선에서 일어난 전투의 단계별 변화상을 우리 시각으로 살피는 데 목적을 두었죠. 내용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1부에서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을 다시 검토하며, 이 사건이 조선 내부와 주변국에 어떤 반향을 낳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통해 청국군의 동향과 일본군 출동의 배경, 그리고 일본의 ‘보호국’ 구상이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2부에서는 청일전쟁의 본격적 시작점이 된 풍도해전과 성환전투를 중심으로 전쟁의 양상을 조명했습니다. 동원 시스템과 군용수표 발행 계획, 일본의 선전 전략, 전쟁을 전하는 언론의 역할과 윤리까지 당시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함께 다룬 것이 특징이죠.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전투였던 평양전투의 실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전투 직전 청‧일군의 움직임과 전투의 전개, 평양·평안도의 전쟁 피해, 일본군의 북진을 뒷받침한 물자·노동력 동원 과정까지 살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1부 은폐와 진실일본군의 왕궁 점령과
      ‘보호국’ 구상
    • 2부 야만의 전쟁과 휴머니즘풍도해전·성환전투
    • 3부 반성 없는 역사의 반복평양전투와 평안도의 현실
  • 집필하신 내용 중, 가장 많은 시간과 고민을 들인 챕터는 어느 부분인가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당시, 조선 수비병에게 ‘전투 중지’를 지시했다는 고종의 전교(傳敎)가 사실상 날조되었을 가능성을 밝힌 대목을 꼽고 싶습니다. 일본군이 고종의 소재를 파악하기도 전에 전교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문이 시작되었죠. 기존 통설로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할 때 나약한 조선군이 소규모 전투에서 일방적으로 패하고 도주했다는 서술이 주류였는데요. 당시의 기록과 정황을 하나하나 대조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경복궁 점령 관련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왕궁 점령의 세부 계획은 참모차장의 기획 아래 참모본부 출신 군부 엘리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 담을 넘어온 일본군의 불법적인 왕궁 점령 시 조선군과 5차례의 교전이 있었는데 이때 조선군의 발포는 정당방위 차원이었다.
    • 왕궁 수비병의 해산은 ‘패주’가 아닌 날조된 국왕의 ‘전교’를 그대로 믿고 명령을 수행한 것이었다.
    이처럼 기존 이해와 크게 어긋나는 진실을 복원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 확인하고 대조하여 재구성해야 했기에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 전체적으로 매우 절제된 문체와 학문적 균형이 돋보이지만, 조선 민중이 피해를 본 내용들을 읽다 보면 뜨겁고 먹먹한 감정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교수님께서도 집필 중 한국인으로서의 감정이 흔들린 순간이 있으셨나요? 평양전투 이틀 전인 1894년 9월 13일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일본군 부대는 청국군과 국지전에서 패한 사실에 분위기가 격앙된 상태였는데요. 그들은 통역 조선인을 청국군과 내통했다며 취조한 뒤 병사들을 집합시켜 군도로 처단했습니다. 당시 평양전투에 참가한 보병 오장 사카키바라 스미타로(榊原隅太郞)가 남긴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총검은 ‘꾹’ 하고 통역의 명치 부근의 앞가슴을 찔렀다. ‘음!’하고 말하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그는 급격하게 넘어졌다. 피가 세차게 흘러나와 부근을 붉게 물들였다. 맑고 깨끗한 출진의 혈제(血祭)라고 말하며 이를 보고 있던 일동은 기뻐했다.” 저는 이를 보고, 피가 솟구치고 처절하게 죽어가는 상황을 기쁨의 언어로 적어낸 표현법에 충격을 금치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군 내부에 도덕 불감증과 생명 경시가 만연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지요. 이방인에 대한 폭력과 살인은 그들에게 하나의 ‘축제’였을 뿐이었습니다. 비슷한 내용이 더 있습니다. 한 일본 병사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최근 전투로 매사 소심한 소생이 한층 대담하게 되어 한두 사람을 목 베어 죽이는 것이 마치 평일에 이[虱]를 잡는 것 같은 마음”이라고 적었으며, 동학농민군 진압차 조선에 파견된 일본군 후비 보병 19대대는 여러 차례 동학농민군을 불에 태워 죽이는 ‘소살(燒殺)’을 감행하기도 했죠. 이렇듯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폭력이 청일전쟁에서 반복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몇 달 후 뤼순대학살로 이어지는 비극의 전조였다는 점에서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역사를 읽는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보시나요? 19세기 말 조선을 압박하던 외압 세력이 중국·일본·러시아였다면,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주요 변수는 미국과 일본·중국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과거와 달리 분단된 상태에 놓여 있지요.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19세기 말의 위기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고종은 국가적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채 동학농민군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범하고 천한 자가 귀한 신분을 방해해서 청·일이 들어왔다”라는 인식이었죠. 그렇게 사회 통합에 실패한 조선은 결국 대한제국을 거쳐 20세기 초반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아는 일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문제와 국제 정세를 함께 바라보는 혜안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그 당시와는 달리 신분사회는 아니지만 사회적 분열이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시대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행동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역사는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지는 않지만, 놀라울 만큼 비슷한 형태로 다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03 책을 건네다 과거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할 때

  •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전쟁과 휴머니즘」을 권하고픈 독자층은 누구인가요? 일본인 독자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청일전쟁은 한‧중‧일 삼국의 운명을 가른 중대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이 전쟁을 조선을 청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한 정당한 전쟁이라고 보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청일전쟁 기간 일본군 지휘관부터 병사, 종군기자, 전쟁에 동원된 일용 인부들까지 ‘문명과 야만’의 잣대로 조선인을 멸시하였고 배외적인 충군애국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가해자였지만, 동시에 광적인 군국주의와 천황제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일본 사회가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인 독자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뉴라이트 역사관만을 믿거나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입장이라면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일본이 얼마나 취약한 근거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일본이 지금까지 감추고자 했던 제국주의의 민낯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딱 한 문장에만 밑줄을 그어 선물할 수 있다면 어떤 문장일까요?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싼 전투 과정에서 호전적 애국주의(Jingoism)와 야만적 행위로 점철된 일본‧청국과는 달리 아산을 비롯한 내포 일대의 지방관과 주민들은 인본주의(Humanism)를 보였다. 당시 조선인들은 풍도해전에서 익사 직전에 있거나 표류하던 청국군 생존자를 구해 음식과 옷을 제공하는 ‘유원지의(柔遠之義)’를 실천했습니다. 또한 왕궁이 일본 군에게 점령된 상황에서도 성환전투에서 숨진 청국군과 일본군 모두에게 예를 갖춰 장례를 치렀죠. 이러한 인간적 배려와 품위는 전쟁에 참여한 일본군과 청국군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모습으로, 청일전쟁 속 조선 사회가 보여준 고귀한 가치라 생각합니다.
  •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전쟁과 휴머니즘」을 통해 독자들이 꼭 얻어갔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조선인들은 전쟁 기간 동안 폭력으로 강요된 통제와 동원이라는 차별적인 현실에 놓였지만, 타자를 대할 때 열린 태도(open arms)를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동 시기 활동했던 농민군 역시 동학이 지향한 ‘유무상자(有無相資)’와 ‘빈궁상휼(貧窮相恤)’을 기꺼이 실현하고 있었죠. 아울러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무장포고문」의 첫 문장이나, “나라가 환란에 처하면 백성도 근심해야 한다”라고 적은 나주 접주 유광화의 편지는 그런 가치가 결코 추상적 구호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힘없는 자들의 포용은 같은 시기 전투력을 상실한 패잔 농민군과 청국군 잔류자를 수색·살해·집단 처형하던 일본군의 잔혹함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책 부제를 ‘전쟁과 휴머니즘’이라 정한 이유이기도 한데요. 저는 독자들이 청일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켜낸 조선 민중의 모습을 오래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