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0월, 494명의 연구자는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듬해 1월 국회는 이 청원에 대한 회답으로 연구자 주도의 창의적·자율적 기초연구 지원을 늘리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의견서를 채택하고 정부에 전달했다. 그리고 2017년 5월 출범한 현 정부는 기초연구 지원 예산을 2배 확대하고, 연구자의 자율성 보장을 국정과제로 명시했다. 현장 연구자의 의견이 다듬어지고 살이 붙은 과정을 거쳐 국가 운영을 위한 과제로 채택된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흐른 2020년 현재, 기초연구의 모습은 어떠할까? 2017년 1조 2천 697억 원이었던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올해 2조 278억 원으로 확대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2조 원을 돌파한 것이다.
이 추세라면 오는 2022년까지 국정과제의 목표치 2조 5,200억 원을 무난히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산 확대에 발맞추어 기초연구사업의 지원 과제 수도 2015년 1만 1천 832개에서 2019년 2만 3천 104개로 2배 가까이 확대되었다. 또한 연구자가 생애 전주기 동안 끊임없이 연구할 수 있도록 수월성과 안정성이라는 2개의 축으로 개인 연구 지원 체계를 개편했다. 성공·실패라는 단편적인 개념을 폐지하고 연구 과정을 존중하는 평가 체계로 전환했다.
기초연구 발전을 위한 물적·제도적 기반은 마련된 셈이다. 이러한 지원 노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우수한 연구 성과 창출과 연구 인력 양성이라는 열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구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특히 기초연구사업은 연구자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아이디어 지원을 목적으로 하기에 연구자 참여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물적·제도적 기반이 우수한 기초연구를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연구자의 적극적인 노력은 충분조건이다. 이러한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졌을 때 우리나라 기초연구는 새로운 질적 도약을 이루고 건강한 기초연구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
여기에 기초연구사업은 올해부터 분야별 지원 체계로의 단계적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분야별 지원 체계란 해당 분야의 연구자가 중심이 되어 수립한 중장기 분야별 발전전략과 포트폴리오에 따라 분야별로 배정된 예산 규모 내에서 세부사업별 지원 규모와 지원 기준 등을 해당 분야의 특성과 환경을 고려해 설정하고, 최종적으로는 분야별로 특화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기초연구사업은 분야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사업이 운영되고 있어 분야마다 다른 연구 수요, 연구비 규모, 지원 방식 등을 충분히 고려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관련 예산이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도 연구자의 체감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재 분야별 지원체제의 시범 적용 분야로 수학을 지정해 운영 중이다. 이에 대한 반응은 해당 분야 연구자의 약 90% 정도가 만족감을 표시할 정도로 긍정적이다. 또한 내년 이후 분야별 지원 체계의 단계별 확대를 위해 물리학, 화학, 지구과학, 기초 및 응용의학, 기초 및 분자생명 등 5개 분야의 기획과제를 진행 중이다. 기획과제를 통해 분야별 공감대가 형성된 발전전략과 포트폴리오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 연구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요구된다. 결국, 연구자들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기초연구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분야별 지원체계의 성공적인 정착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평가 역시 연구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기초연구사업의 경우 선정 평가, 중간평가, 최종평가 등 모든 평가가 해당 분야 동료 연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전문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연구자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평가 요청을 받은 연구자의 평가참여율은 여전히 저조하다. 일부 패널의 경우 30% 정도에 그칠 정도로 참여율이 낮다.
이러한 낮은 참여율은 결국 평가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평가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우수한 연구자가 적극적으로 평가에 참여해 우수한 과제를 선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연구자 간 평가 결과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도록 성실한 평가 의견을 작성하는 선진적인 평가문화 조성이 시급하다.
- “기초연구사업은 연구자의 물과 산소입니다.”
- “기초연구사업은 연구자의 생명줄 입니다.”
- “기초연구사업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입니다.”
- “기초연구사업은 연구자를 키우는 토양이고 모든 우수한 연구의 시작입니다.”
기초연구본부에서 운영하는 기초연구사업 정책 블로그 ‘기초공감’에서 연구자들이 기초연구사업에 대해 정의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모두 기초연구사업을 연구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물, 산소, 토양 등이 필요하듯, 연구자에게 기초연구사업은 기초연구자가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환경이자 기본 요소인 것이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기초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정부와 연구지원 기관의 정책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기초연구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연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초연구 생태계를 만들고, 그 생태계 속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갈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인의식을 기반으로 연구자 스스로 적극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갈 때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기초연구 생태계 조성이 가능하다. 도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우수한 기초연구 성과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태계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