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R
빛을 따라 열린 새로운 세계,나노 광학의 가능성을 밝히다 이화여자대학교 김동하 교수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빛은 파동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에너지를 가진 알갱이다.” 아인슈타인의 광양자설은 인류가 빛에 대해 품어왔던 물음표를 단번에 바꿉니다. 그가 세상에 탄생한 날은 3월 14일로, 대중들도 그의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죠.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은 치열한 연구를 통해 저마다의 증명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3월호 스토리R에서는 빛을 따라가 비로소 빛나는 성과를 개척한 열정적인 과학자를 만납니다. 빛의 성질을 나노 단위에서 정밀 제어하는 원천 기술을 통해 광학 및 나노기술 분야의 새로운 페이지를 연 김동하 교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 선정하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상금 1천만 원을 수여하는 상
학문의 세계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도 깊죠. 그 안에서 어떤 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기도 합니다. 김동하 교수는 학위 과정에서 고분자공학을 전공, 박사후연구원 시절 나노기술을 접했는데요. 이후 산업체에 재직하는 기간 동안 메모리소자 개발 연구에 몰두, 대학에 자리 잡은 후 김 교수가 선택한 연구 영역은 ‘융복합 나노소재 연구’. 고심 끝에 주력하기로 한 연구 분야에서 그가 찾고자 한 것은 사회와 학계가 절실히 요구하던 분야, 그리고 연구 결과의 가치가 상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슈를 발굴하는 것이었죠.
그가 주목한 것은 빛의 회전성을 제어하여 물질의 성질을 바꾸는 키랄성. 자연에서 역시 이런 성질이 빈번히 나타나며, 약이나 생체물질에서는 분자의 방향성이 어느 쪽이냐에 따라 효과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는데요. 널리 알려진 진통제 ‘이부프로펜’이 특정 방향의 분자에서만 약효가 발휘되는 것처럼 말이죠. 특히 빛의 방향 정보를 다룰 수 있는 키랄 광학소재는 3D 디스플레이, 정보보안, 바이오이미징 등 첨단 광학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왼손과 오른손처럼 어떤 물체나 분자가 거울에 비춘 듯
모양이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은 성질.
단순한 형태가 아닌 물질의 성질과 기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
학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키랄 광학소재. 하지만 기존 고분자 키랄 조립 방식은 구조가 변형되기 쉬운 동적 미셀* 특성으로,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한데요. 여기에 가시광 영역 중 적색 원편광을 안정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죠. 김동하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허들을 뛰어넘어 차세대 고분자 키랄 광학소재를 개발했습니다.
* 미셀(Micelle) : 친수성(물에 잘 녹는 성질)과 소수성(친수성의 반대) 단위가 핵-껍질 구조를 갖춘 구형의 화합물
먼저 연구팀은 단분자 미셀을 형성하는 별 모양 블록 공중합체*를 조립 단위체로 도입했는데요. 이를 통해 외부 자극에도 구조적 안전성을 유지하는 키랄 초분자 시스템을 개발하기에 이르죠. 특히 R/S-만델산과 고분자 사슬 간의 다중 수소결합을 유도함으로써, 키랄 정보가 분자 수준에서 거시적 구조까지 정밀하게 전달·증폭되도록 설계했습니다. 특히 이번 연구는 오랜 기간 공동연구를 수행해 온 연구진과의 협업을 통해 일군 성과라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하는데요. 2013년, 즈췬 린 교수 연구진은 별 모양의 양친성 블록 공중합체를 합성해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10년이 지난 2022년,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연구진이 별 모양 공중합체에 키랄성 분자를 도입했습니다. 이를 집짓기 블록처럼 활용해 구조체를 만들면 되겠다는 중요한 힌트를 얻었다고 하죠.
* 블록 공중합체 : 두 종류 이상의 고분자가 하나의 분자 내에 사슬의 한쪽 끝을 매개로 연결된 고분자
김 교수 연구팀의 새로운 접근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작한 플랫폼에 다양한 비키랄 발광체를 도입해 적색을 포함한 가시광 전 영역에서 고효율 풀컬러 원편광(Circularly Polarized Light, CPL) 발광을 구현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조립체는 기존 고분자 기술 대비 가장 높은 발광 효율을 달성, 반복적인 가열·냉각 순환 후에도 성능 저하가 없는 광학적 안전성을 입증했다고 해요. 풀컬러, 고효율, 다기능성 CPL 소재는 3D 디스플레이, 광자회로, 보안이나 위변조 방지 기술 등 차세대 광학 소자 분야의 핵심 소재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술적으로 적색은 발광체가 분자 간 응집으로 발광이 약해져, 강한 원편광과 높은 효율을 동시에 달성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서 그간 구현이 어려웠던 적색 CPL 영역에서 높은 성능을 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원편광 소재를 ‘풀컬러’까지 확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어려워하는 난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이번 연구. 지난 2025년 8월 세계적으로 학술적 의의를 인정받는데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되는 쾌거를 이룩합니다. 미시적인 분자의 키랄성 정보가 어떻게 거시적인 초분자 구조로 전달되고, 증폭되는지에 대한 원천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을 인정받은 셈이죠.
겉보기에 닮았지만 실제로는 다른 키랄성. 김 교수도 여느 연구자와 달라 보이지 않지만, 들여다보면 그의 연구 곁에는 늘 사람이 함께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그는 연구자로서 경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만난 국내외 학자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하고 있거든요. 연구 성과를 독점하려는 마음은 뒤로 하고, 아낌없이 공유하면서 굳건한 신뢰를 쌓아서일까요. 지금까지 국내외 85명에 달하는 연구자와 공동교신저자로 논문을 함께 게재했다고 합니다.
새 학기를 맞이해 생동감이 넘치는 캠퍼스 안, 김 교수 또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학생들을 마주하고 있는데요. 수년간 맡아온 ‘고분자화학’ 수업을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하는가 하면, 이화여대 포에틱스연구실(POETICS Laboratory)과 함께 기초과학연구소의 책임자로서도 역할을 다하고 있죠. 신진 연구자에게 강조하고 싶은 자세를 묻는 말에 그는 ‘늘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고 핑계를 대지 말자’라고 전했는데요. 앞으로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올 가능성이 많은 그들이 정정당당하게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본인이 선택한 기관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성과를 하나둘 쌓아 올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성과가 인정받기를 바라는 만큼 다른 연구자의 성취를 인정하고 정정당당하게 선의의 경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트로피를 혼자 차지하기보다 언제나 동료들과 함께 나눠온 김동하 교수. 공동연구자와 쌓아온 협력, 그리고 제자들의 성장은 그의 연구 여정에서 가장 큰 보람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나눔과 상생’이라는 연구 철학으로 이어져 또 다른 과학적 도전을 이끌고 있는데요. 앞으로 그가 펼쳐 보일 새로운 미래 과학의 가능성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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