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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思惟)의 서재

감정의 움직임을 읽고 싶은 당신께
「감정의 역사」
동아대학교 김학이 교수

한 권의 책에 담긴 무한한 세계와 가능성. 활자 속 유영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일상에 전환점이 되곤 하는데요. 사유(思惟)의 서재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으로 탄생한 우수학술저서 한 권과 저자 인터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질문거리를 곁들여 전합니다. 책 너머의 저자, 저자 너머의 빛나는 사유가 담긴 서재에 들어오세요!

역사는 흔히 딱딱한 연표와 거대한 사건들의 기록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시대를 뒤흔든 결정적 순간마다 사람들을 움직였던 뜨거운 ‘감정’이 있었는데요. 김학이 교수는 저서 「감정의 역사 – 루터의 신성한 공포에서 나치의 차분한 열광까지」를 통해 독일 근현대의 다양한 역사적 장면을 따라가며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소개합니다. 이번 사유(思惟)의 서재에서는 시대를 흔든 감정의 힘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김학이 동아대학교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독일 보훔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나치즘과 동성애―독일의 동성애 담론과 문화」(2013)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윌리엄 레디의 「감정의 항해―감정 이론, 감정사, 프랑스혁명」(2016), 마르틴 브로샤트의 「히틀러국가―나치 정치혁명의 이념과 현실」(2011) 등이 있다.

#01 책을 쓰다 감정의 역사를 탐구하다

  • 김학이 교수님 반갑습니다! 웹진 독자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반갑습니다. 동아대학교 교수 김학이입니다. 서양사 공부를 시작한 지 어느덧 43년째를 맞이했네요. 1983년 대학원 진학 이후 줄곧 이 길을 걸어왔지만, 우리와 다른 서양 문화는 늘 새롭게 다가오는데요. 전 세계 학자들이 매년 쏟아내는 방대한 연구 성과를 뒤쫓으며, 그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마음으로 서양사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 「감정의 역사 – 루터의 신성한 공포에서 나치의 차분한 열광까지」는 시대에 따른 독일 사회의 감정 변화를 다룬 책입니다. 일반적인 사건 중심의 역사학 대신 ‘감정’에 주목하신 계기가 있나요? 2000년대 들어 서양에서는 ‘감정사’ 연구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적 흐름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제가 꽤 감성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이 주제가 마음 깊이 와닿더군요. 여담이지만, 제 MBTI가 공감 능력이 뛰어난 ‘F(감정형)’이기도 합니다.(웃음) 저와 같은 보편적인 한국인이 감정의 역사에 매료되었다면, 다른 분들도 시대를 관통하는 타인의 마음과 정서에 충분히 공감해 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 본 저서는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지원사업을 통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업 지원 배경과 출간까지의 여정이 궁금합니다.
    단언컨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선 연구자로서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잡을 수 있는 소중한 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감정사’라는 주제가 워낙 방대하고 까다롭다 보니, 지원사업이라는 기분 좋은 의무가 아니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주제를 잡고 집필하는 데에만 무려 8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는데요. 일반적인 연구보다 훨씬 많은 공력이 들어간 만큼, 본 저서 출간이 더욱 뜻깊고 감사하게 다가옵니다.
  • 집필하실 때 ‘자아문서’를 사료로 활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검토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인물이나 장면이 있었나요? 또한 이 기록들이 감정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독자분께서 제2장 <30년 전쟁의 고통과 감정의 해방>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사실 저 역시 가장 몰입하여 집필한 부분인데요. 농촌 수공업자와 용병 그리고 궁정대신이라는 세 인물이 보여주는 감정 표현이 서로 다른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요. 여러분들께서도 주의 깊게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자아문서’는 감정의 역사를 집필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습니다. 기존 서양사 연구에서 전제되어 온 몇 가지 중요한 테제들이 저의 자아문서 분석으로 부인되거든요. 이 부분이 가장 보람되었습니다.

#02 책을 읽다 역사를 움직인 감정의 순간들

  • 「감정의 역사 – 루터의 신성한 공포에서 나치의 차분한 열광까지」는 종교개혁 시기부터 나치 시대까지 방대한 시간을 다룹니다. 각 장을 아우르는 독일 감정사의 핵심적인 변화 흐름을 짚어주세요. 17~18세기 전환기와 1960년대에 대해 얘기해야겠네요.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감정은 주로 종교라는 외적 장치로 통제되었습니다. 그러다 ‘30년 전쟁’ 중에 무너지고, 비로소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17세기 후반부터는 새로운 감정 문화가 등장하며 감정을 재차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통제의 수단이 ‘인간 스스로의 내면’으로 옮겨왔다는 것입니다. 18세기 후반 심리학의 등장은 그 연장선에 있죠. 근대는 감정의 해방이 아니라 자발적인 통제와 함께 대두했던 겁니다. 이 통제된 감정이 재차 해방된 때는 무려 1960년대에 이르러서입니다. ‘68운동’이 선봉에 섰지요. 다만, 해방된 감정조차 ‘부드러움’이라는 표준적인 감정에 의해 규제됩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문제는 이 표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현대인이 화학공장에서 생산된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이 책을 통해 내 안의 감정이 과연 온전한 나의 것인지 스스로 질문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정의 역사」 목차

    • 1장 근대 초 의학의
      신성한 공포
    • 2장 30년전쟁의 고통과
      감정의 해방
    • 3장 경건주의 목사들의
      형제애와 분노
    • 4장 세계 기업 지멘스의
      감정
    • 5장 일상의 나치즘,
      그래서 역사란 무엇인가
    • 6장 나치 독일의
      ‘노동의 기쁨’
    • 7장 나치 독일의
      ‘독서의 기쁨’
    • 8장 서독인들의 공포와
      새로운 감정 레짐
  • 보통 역사 속에서 감정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혁명과 같은 격동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이번 책을 통해 주목하신 지점도 그러한 부분인가요?
    역사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혁명은 감정에 의해 시작되고 끝이 났습니다. 대개 분노로 시작되었다가 좌절 혹은 공포로 끝을 맺곤 했죠. 사실 이 책에서는 오히려 평화로운 시대, 그러니까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정 안에 사회계급이 내포되어 있고 또 작동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연구해 보니 감정은 언어와 대단히 밀접히 연결되어 있더군요. 아마 여러분도 자세히 생각하고 들어보면, 언어가 그러니까 담론이 계급적이고 권력적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 오늘날 한국 사회를 가장 강하게 움직이고 있는 감정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이 책이 발간된 2023년만 해도 저는 ‘공감’과 ‘혐오’를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꼽았습니다. 그것이 약자와의 연대인가, 아니면 약자 배제를 통한 지배인가의 의미를 갖는다고 판단했거든요. 2026년, 오늘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핵심적인 감정은 ‘분노’인 것 같습니다. 분노는 참 묘한 감정입니다. 언제나 ‘정의’와 연관되며, 그 정의는 늘 사회적 문제와 직결되죠. 그래서 서양사에서도 분노는 오랫동안 금지되거나 제한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도구화되었다가 재차 억제되었지만, 어느 순간 그 고삐가 완전히 풀려버린 듯합니다. 어쩌면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가속화되면서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분노라는 감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아를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 책의 에필로그에서 오늘날을 ‘감정의 시대’라고 정의하셨습니다.
    감정의 역사를 연구한 관점에서 보실 때 현대 사회만이 갖는 감정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현대 정신의학에서 다루는 질환 목록을 살펴보면 그 답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울 장애, 불안 장애, 공황 장애, 분노조절 장애, 강박 장애, 충돌조절 장애 등 대부분이 감정과 직결된 질환들입니다. 이러한 목록은 정신의학이 전문 의학으로 올라서는 1920년대 이래 끊임없이 강화되고 세분화되어 왔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약물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판단했을 때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정신의학은 그 현상을 개별화시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뇌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뇌과학의 영역 너머에, 문명과 사회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03 책을 건네다 감정의 역사로 배우는 오늘

  • 역사학뿐 아니라 정치, 사회, 심리 등 다양한 분야의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힐 책입니다. 책을 출간하시면서 어떤 독자를 만나고 싶으셨나요? 감정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궁금한 분들, 그리고 역사학을 진지하게 대하는 독자들 모두요. 특히 대학원 과정에 있는 인문사회과학 학생들, 그중에서도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대학원생들이 읽었으면 했습니다. 책을 통해 감정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 연구란 또한 무엇인가 묻고 답하고자 했거든요.
  •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밑줄을 그어 선물할 수 있다면, 어떤 문장을 고르고 싶으신가요? 그 문장에 담긴 의미와 이유도 함께 들려주세요. “역사학의 원래적 기능은 과거의 고유성을 통하여 현재를 상대화하는 데 있다. 감정의 역사는 나의 감정을 상대화한다. 상대화의 다른 말이 성찰이다. 성찰이란 거리를 두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감정의 역사는 현재 나의 감정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해준다. 그리고 그 감정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게 해준다. 이를 통해 나의 사회성을 깨닫고 나의 자아실현을 재차 성찰하게 해준다. 자아는 실현하는 것이되, 성찰되는 것이다. 역사학만큼 성찰을 자극하는 학문은 없다.” 결론 부분에 마지막 여덟 문장입니다. 독자들께서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자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역사학이 주는 성찰의 힘을 경험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골랐습니다.
  • 본 저서를 통해 독자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감정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영역이, 사실은 사회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는 것이 저의 핵심 주장입니다. 저는 독자들께서 자신의 감정이 ‘본래부터 내재된 본질’이라고 확신하기에 앞서, 그 감정이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한 번쯤 냉철하게 살펴보기를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나 부정적인 감정이 과연 그 대상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의 견고한 지배 질서나 불합리한 구조가 만들어낸 산물인지를 성찰해 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