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

메인으로

    구독신청 독자의견

    보고서 도서관 과월호 e-알리미

    INSTAGRAM BLOG FACEBOOK YOUTUBE

    사유의 서재

    죽음의 의미를 묻는 당신에게
    「중국사상과 죽음 이데올로기」 연세대학교 정진배 명예교수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쉽게 마주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삶의 끝이라 생각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삶과 죽음의 관계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봐왔는데요. 『중국사상과 죽음 이데올로기』는 유교·도가·불교의 사유를 따라 죽음을 들여다보며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이번 사유의 서재에서는 정진배 교수와 함께 죽음을 바라보는 중국사상의 독특한 시선과 그 안에 담긴 사유의 논리를 살펴봅니다.

    인물탐구

    정진배 교수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동아시아학과에서 중국 현대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학(스토니브룩) 비교문학과 조교수를 지냈으며, 1994년 귀국하여 현재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현대문학과 현대성 이데올로기』, 『탈현대와 동양적 사유논리』, 『장자, 순간 속 영원』, 『중국 현대문학 신론』 등이 있고, 역서로는 『옥시덴탈리즘』, 『주역 계사전』 등이 있다.

    한 권의 철학을 옮긴다는 것

    • 정진배 교수님 반갑습니다. 한국연구재단 웹진 독자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근무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틈틈이 독서와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 정진배입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모닝커피의 향을 떠올리며 잠기운의 유혹을 뿌리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환절기라 그런지 부쩍 잠이 많아졌네요. 최근에는 학술 도서보다는 일반 독자들과 조금 더 가까이 호흡할 수 있는 좋은 교양서를 집필하는 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 ‘죽음’이라는 묵직한 화두를 책의 전면에 내세우셨습니다. 『중국사상과 죽음 이데올로기』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죽음’이라는 주제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하셨나요? 오랫동안 중국문학과 동아시아 사상을 연구하면서 언젠가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가 인문학적 글쓰기의 주제로 성립할 수 있는지를 탐구해 보고 싶었습니다. 모든 생명 현상은 죽음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을 삶과 동떨어진 낯선 대상처럼 타자화하여 바라보곤 하죠. 다만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논의를 신비주의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하나의 매개로 가져오게 됐습니다. 인간은 ‘나무 자체를 생각하는 것(to think tree)’은 불가능하지만, ‘나무에 관해 생각하는 것(to think about a tree)’은 가능합니다. 이 책 역시 죽음 자체를 규명하기보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문제가 중국문화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져 왔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 본 저서는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지원사업을 통해 출간되었는데요. 그 여정이 궁금합니다.

      저술출판지원사업은 공모를 통해 접수된 연구계획서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검토한 뒤 최종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는 자신이 오랫동안 품어온 관심과 문제의식을 하나의 연구 주제로 구체화하는 동시에, 그것이 인문학의 보편적인 주제와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죠. 저 역시 이러한 시간을 거치며 『중국사상과 죽음 이데올로기』에 담고자 한 사유의 결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사업에 선정된 이후에는 정해진 기간 안에 연구를 완성해 한 권의 책으로 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뒤따랐습니다. 저는 삶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가 생명이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3년이라는 한정된 집필 기간은 연구자로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연구에 몰두하고, 끝까지 책을 완성해 나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재단의 지원이 단순한 연구비 지원을 넘어 연구자로서 하나의 결과물을 책임 있게 완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기회였던 셈이죠. 앞으로도 이러한 지원이 연구자들의 다양한 문제의식을 학술적 성과로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 국내의 유능한 후학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해당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죽음으로 삶을 바라보다

    • 『중국사상과 죽음 이데올로기』는 방대한 중국사상 가운데 유교·도가·불교와 이를 대표하는 경전을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한 권의 책 안에서 ‘중국사상’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전체적인 범위와 구성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우선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중국사상이라는 방대한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였습니다. 중국사상 전체를 한 권에 담기에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기 때문에 이를 유교·도가·불교로 한정하고, 책의 주제와 연결되면서도 세 사상의 핵심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경전을 선별했죠. 이어 『중용』, 『장자』, 『원각경』을 선택했고, 세 경전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책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텍스트 분석에서는 ‘죽음’이라는 화두를 직접적으로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각 사유의 틀 속에서 죽음이라는 주제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는데요. 이를테면 가을 밤하늘에 밝은 보름달이 떠 있고, 서로 다른 모양의 세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두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하나지만, 그릇과 물의 형태에 따라 비치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나겠지요.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해 책은 총 4부로 구성했습니다. 1부에서는 『중용』을 통해 유교의 세계관을, 2부에서는 『장자』를 중심으로 도가의 세계관을, 3부에서는 『원각경』을 통해 불교의 세계관을 차례로 다루었죠. 이어 4부에서는 ‘죽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확장해, 서구의 이데올로기 담론과 동서양의 사유를 연결해 보았습니다.

      1부부터 4부까지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중용』의 세계관 『장자』의 세계관 『원각경』의 세계관 죽음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죽음
    • 기존에는 유교·도가·불교의 생사관이 각각의 영역에서 주로 연구됐다면, 교수님께서는 세 사상을 ‘죽음’이라는 하나의 화두 아래 함께 살펴보셨습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우리 몸에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쉽게 말해 눈·귀·코·혀·몸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이 오관(五官)은 각각 따로 작용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작용합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동시에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요.

      유교, 도가, 불교는 인간이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돕는 심오한 사유 체계입니다. 다시 오관의 비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눈’이라는 하나의 감각기관은 귀나 혀와의 비교를 통해 그 특징이 선명해집니다. 즉, ‘여럿(多)’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를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오관의 인식은 결국 ‘마음’의 작용으로 귀결됩니다. 바로 ‘하나(一)’의 영역입니다. 본 저서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하나가 곧 여럿이고, 여럿이 곧 하나’라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요체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 『중용』, 『장자』, 『원각경』을 따라가던 책의 후반부에는 서양의 사상가인 미하일 바흐친과 판타지 소설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등장합니다. 다소 뜻밖의 조합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데올로기는 특정한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대상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과 의미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대상을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던 우리의 인식 자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 대상에는 어떠한 의미도 부여될 수 없고, 인식작용 역시 종식되죠.

      책의 후반부에 미하일 바흐친의 이야기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가져온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흐친은 문학이론을 통해, 루이스 캐럴은 판타지 소설을 통해 의미의 해체를 시도했습니다. 이는 ‘죽음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의 죽음’으로 치환되는 과정과 궤를 같이합니다.

    • 책의 부제가 ‘나는 존재하는가’입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나’의 존재를 묻는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죽음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나’는 과연 무엇일까요? 불교의 연기설에 따르면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 속에서 성립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느끼는 소금의 ‘짠맛’은 소금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혀와 소금이 만나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경험됩니다. 죽음 역시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죽음은 대자적(對自的) 관점에서만 성립하는 인간 고유의 경험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나’는 과연 무엇일까요? 엄밀한 의미에서 ‘나’ 역시 ‘나라는 생각’, 즉 하나의 관념일 뿐입니다. 죽음이 사유의 결과이듯 ‘나’ 또한 우리의 사유 속에서 성립하는 관념인 것이지요. 죽음 자체 속에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삶이 만들어낸 ‘죽음이라는 유령’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해당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오늘을 다시 사유하다

    • ‘죽음’, ‘이데올로기’, 유불도 사상까지 다루는 책인 만큼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책을 펼치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독서 방법이 있다면요?

      중국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자서전적 산문인 「오류선생전」에서 자신의 독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억지로 깊이 파고들려 하지 않았고, 글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만나면 기뻐하며 밥 먹는 것도 잊었다(好讀書, 不求甚解. 每有會意, 便欣然忘食).”

      독자분들도 모든 내용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이해하려 애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유독 마음이 머무는 구절이 있다면 그 페이지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그리고 충분히 생각해 본 뒤 다시 다음 구절로 넘어가면 됩니다. 의미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그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딱 한 문장에만 밑줄을 그어 선물할 수 있다면 어떤 문장을 고르고 싶으신가요? 이 책을 집필하면서 많은 언어적 수사와 개념을 동원했지만, 그 무수한 말로도 끝내 담아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침묵’입니다. 그래서 특정한 한 문장을 고르기보다는, 책 곳곳에 남아 있는 침묵의 흔적을 독자들께 건네고 싶습니다. 책을 읽어가며 말과 말 사이에 자리한 그 고요함을 발견하고, 잠시 머물러 음미해 주셨으면 합니다.
      해당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중국사상과 죽음 이데올로기』를 펼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미완성입니다. 저는 지금도 새로운 책을 집필하고 있죠. 살아 있다는 것은 무언가 하고자 하는 바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그 모든 행위의 목적지는 인간에게 동일하게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깊이 사유해 보면,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삶은 훨씬 편안해집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주역』에서는 ‘생사(生死)’라는 말을 뒤집어 ‘사생(死生)’이라 칭합니다. 인생이란 그저 덧없이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본질을 깨닫는 그 자리에서 비로소 진정한 생명이 시작된다는 뜻인데요. 독자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죽음’이라는 화두를 천천히 사유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유의 시간이 우리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