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 현장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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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단장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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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14일 오전 5시 51분(현지 시각) 미국 루이지애나주 리빙스턴과 워싱턴주 핸포드에 설치된 레이저간섭계중력파검출기(라이고, LIGO)에서 중력파가 검출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100년 동안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중력파의 첫 검출이었다. 미국과학재단(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과 라이고과학협력단(LSC, LIGO Scientific Collaboration)은 지난 달 2월 11일 중력파 검출 사실을 공식 발표하며 또 다른 과학의 발견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런 역사적인 발표를 누구보다 벅찬 감격으로 지켜보던 국내 연구진들이 있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단장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이 그 주인공이다. KGWG(Korean Gravitational Wave Group)는 서울대, 한양대, 부산대, 인제대, 연세대 등 5개 대학과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 2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교수와 연구원, 대학원생, 컴퓨터 전문가로 이루어진 연구 컨소시엄이다.

이형목 KGWG 단장은 “중력파를 검출하는 라이고 프로젝트에서 한국 연구진들이 맡은 주요 역할은 라이고 분석에 필수적인 중력파형 모델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모듈 제공, 중성자별 충돌에 대한 정보 제공, 중력파 검출기 운전 과정에서 검출기 특성 변화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일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 이 단장은 “무엇보다 블랙홀의 충돌 현상을 실제 발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블랙홀은 아주 추상적인 정보만 있었는데 이제는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얘기할 수 있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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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중력파연구의 출발, KGWG

KGWG는 지난 2002년 공식 출범했다. 이론물리학자와 천체물리학자들이 만든 컨소시엄으로 국내 중력파 연구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전까지 개별적으로 중력파를 연구하거나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자는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중력파를 연구하는 단체나 컨소시엄은 국내에 없었다.

KGWG는 2003년부터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KISTI, 일본 유가와이론물리연구소(YITP) 등의 지원을 받아 매년 중력파와 일반상대성이론과 관련된 여름학교를 개설해 중력파 연구진 육성에 매진했다. 중력파 연구의 저변 확대에 주력하던 KGWG에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이 단장은 라이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라이고과학협력단(LSC)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이렇게 기억했다.

“2008년 당시 실제 중력파 검출 연구를 수행하던 연구자를 초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그분이 저의 연구실에 찾아와 ‘여러분 수준이면 (라이고 프로젝트 참여가) 가능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라이고과학협력단(LSC) 정례회의에 참가해 프리젠테이션을 할 기회를 얻고, 이듬해인 2009년 라이고과학협력단(LSC)과 연구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게 됐습니다. 국내 연구진이 라이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이죠.”

라이고과학협력단(LSC)은 미국을 비롯한 14개국 대학과 연구기관에 소속된 1,000여 명이 연구자들로 구성된 연구그룹이다. 전 세계 90여 개 대학과 연구기관이 검출기 관련 핵심 기술 개발과 데이터 분석 등 라이고를 활용한 중력파 연구를 수행한다. LSC는 미국에 건설된 두 대의 라이고와 영국과 독일이 공동으로 구축한 ‘지오(GEO) 600’ 등 3대의 검출기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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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WG가 매년 개최하고 있는 한·일 공동워크숍 

정부 지원을 통해 국제연구 수행

KGWG가 라이고과학협력단(LSC)에 참여해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국제 공동연구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부터이다.

2011년 교육부·한국연구재단의 ‘글로벌연구 네트워크 지원사업(GRN)에 선정되면서 3년 동안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KSWG은 이 사업의 지원을 통해 대학원생을 비롯한 연구진을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 위스콘신-밀워키 주립대, 노스웨스턴 대학에 장기적으로 파견할 수 있게 됐다.

이 단장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기 전까지는 사실 국제 공동연구 참여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력을 장기적으로 파견해야 하는데 개별 연구자나 기관의 예산으로는 지원할 수가 없었다”라면서 “GRN 사업에 선정되고 안정적인 지원을 받게 되면서 연구자들을 파견할 수 있었고, 이들이 중력파 데이터 분석과 검출기 특성 연구를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은 KGWG의 연구진들은 중력파 검출에 필요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최초로 중력파를 검출한 라이고의 관측에 사용된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와 기기 모니터링에 직접 이바지했다.

실제 KISTI 대용량과학실험데이터허브센터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연구지원을 받아 라이고의 실험 데이터를 저장·분석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데이터 분석을 지원했다.

중력파 연구의 매력에 빠지다.

출발은 늦었지만, KGWG 연구진들은 한국의 중력파 연구 수준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국제협력 강화와 후속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라이고 뿐 아니라 일본의 카그라(KAGRA) 중력파 검출기 개발과 활용에도 깊숙이 참여했다. 2015년 11월 열린 카그라 준공식에 초청받아 이 단장 등이 참석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국제적인 중력파 연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유럽우주기구(ESA)는 우주에서 다른 진동수의 중력파를 찾는 리사(LISA)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런데 목표가 2037년이다. 너무 멀다. KGWG 연구진들은 라이고와 리사 프로젝트 사이에 비어 있는 주파수 대역을 통해 블랙홀의 중력파를 찾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이 단장은 ‘작지만 오리지널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동시에 지속적인 연구와 지원도 주문했다. 라이고 프로젝트는 무려 40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번 중력파 검출은 기초연구가 어떻게 수행되고, 왜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중력파 연구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여러 의미 있는 과학적 결과물을 설명할 수 있지만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어요. 사람들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나요? 연구는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멀고 힘든 길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올라야 할 목표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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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라이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와 중력파 검출
라이고는 세계 최대의 중력파 검출기. 간섭계 원리를 이용하여 중력파의 신호를 검출하는 장비로, 미국 워싱턴주와 루이지애나주에 두 대가 있다. ‘ㄱ’ 모양으로 한쪽 팔의 길이가 4km에 달한다. 중앙에서 발사한 레이저는 90도 각도의 양방향 끝까지 갔다가 반사되어 돌아온다. 이렇게 돌아온 두 개의 레이저 빔을 합성하면 간섭 현상이 생기고, 이를 이용해 두 팔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어떻게 변했는지 측정하는 방식으로 중력파를 검출한다.
이번 중력파 검출에 전 세계 과학계는 발견의 기쁨을 함께 하고 있다. 중력파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나온 지 100년 동안 이론으로만 존재했다. 실제 검증을 하지 못해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수수께끼’로 불렸다.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넓히는 획기적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물론 우주의 탄생 비밀에도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역사적 발견이라는 것이 과학계의 평가다. 이런 역사적 연구에 국내 연구진이 함께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