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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르뒤크의 『건축 강의』와 19세기 프랑스의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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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의 방해로 불발된 강연, 책으로 탄생

1857년, 비올레르뒤크(Eugène Emmanuel Viollet-le-Duc, 1814-1879)는 보나파르트 가(街)에 위치한 에콜 데 보자르 바로 옆 건물에 아틀리에를 열었다. 서양 건축을 주제로 하는 대중 강연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의 적대자들, 이를테면 관학적 고전주의 전통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주류 건축가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비올레르뒤크가 에콜 데 보자르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득권과 구태를 줄곧 비판해 온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 강의 계획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도발로 비쳤을 것이다. 반대파의 방해로 강연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고, 불발된 강연을 대신해 훗날 총 2권, 20강으로 구성된 『건축 강의』Entretiens sur l'architecture tombe 1·2(Paris: 1863-72)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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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비판한 건축가의 화두

강연을 처음 마련한 시기를 기점으로 잡는다면 『건축 강의』의 집필 기간은 대략 15년에 이른다. 이 기간에 비올레르뒤크는 또 다른 주저인 『11~16세기 프랑스 건축 이론 사전』Dictionnaire raisonné de l'architecture frnaçaise de XIe au XVIe siècle (1854-1868)을 집필했을 뿐 아니라, 1840년 이래로 활발하게 참여해 온 유수의 고딕 성당 복원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입되었고,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건축 강의』 전반에 걸쳐 뚜렷하게 드러나는 어떤 문제의식이 건축가이자 건축 복원가, 건축 이론가이기도 했던 저자의 일관된 화두였음을 방증한다. 그것은 정체되고 부패한 보자르의 건축 미학, 즉 고전주의의 허구성과 시대착오, 비실용성에 대한 고발, 그리고 이들의 건축 이념만큼이나 퇴행적인 실무 관행 비판이다.

고딕 건축, 합리적 건축의 본보기

이를 위해 비올레르뒤크는 『건축 강의』의 상당 부분을 서양 건축사 기술에 할애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의 조건과 실례를 제시한다. 이때 그가 제시하는 첫 번째 기준은 합리성이다. 그에게 합리적 건축이란 외관이 구조에 상응하고, 구조는 사용하는 재료의 속성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이상적인 본보기로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이 제시된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합리성은 각 건축이 수행되는 시대와 지역의 지정학적 특성은 물론, 당대의 기술력이 제공하는 도구와 재료의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여 이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관점을 중시하므로, 그리스 건축이 아무리 완벽해도 이를 시대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완전히 성격이 다른 환경에서 답습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러한 포석 위에서 저자는 당대에 더욱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역사적 전범으로 고딕 건축을 제시한다. 그는 프랑스의 고딕 건축이야말로 그리스 건축에 필적할만한 합리성을 지니며, 오히려 공학적으로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나간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고딕 건축의 이상은 19세기의 환경 속에 더욱 완전하게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합리주의 이면에 숨은 엘리트들의 초상

고딕 건축에 대한 이런 평가는 이 책의 기조라 할 합리주의 외에도 당시 프랑스 건축계, 나아가 문화예술계의 복합적인 맥락 위에서 시도된 것이다. 우선은 서구 열강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불붙고 있던 민족주의적 요구가 프랑스의 경우 고딕 복고 운동으로 나타나던 정황을 살펴볼 수 있다. 에밀 졸라를 기수로 하고 있던 이 운동에서 비올레르뒤크는 고딕 성당의 시대를 초월한 탁월성을 역설하며 전면에 서 있던 인물이다. 여기에 당시 프랑스 문화예술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보자르 학파가 고수한 고전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중첩되어 저자의 입장은 더욱 강화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합리주의적 관점에서 그가 고전의 기계적 재현을 언어도단으로 여기기도 했거니와, 그 이전에 보자르의 고전주의가 원형으로 삼고 있는 것이 그리스 고전이 아닌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절충주의 양식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일견 합리적 추론을 밟아가는 듯한 저자의 뒤편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은 이 대목, 즉 그가 자신의 건축적 이상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민족주의, 나아가 인종론을 꺼내 들기 시작하는 지점에서이다. 기존 체제의 부조리함과 기득권 세력의 타락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합리주의 정신의 이면에 이런 그림자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후대인들이 바라보는 거의 모든 과거의 탁월한 엘리트들의 초상이라 하겠다. 물론 그것은 그 자체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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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르뒤크라는 인물을 회고적으로 조망할 때 그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역시 거대한 산업적 변화를 겪고 있던 19세기 대도시의 공간에 부합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건축을 예비하고자 했던 선견지명일 것이다. 그는 당시에 아직 새로운 재료였던 철재를 보다 적극적으로 건축에 도입해야 함을 역설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건축가들이, 그리고 고딕 성당의 건축가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한 것처럼, 철이라는 재료의 속성을 건축물의 기본 골조는 물론 외관에까지 두루 반영하도록 설계할 것을 주장했다. 이후 대도시 건축의 전개 양상은 이러한 요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정유경

정유경은 성신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서양미술사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천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에 출강했으며, 저서와 역서로 질 들뢰즈, 『경험주의와 주체성』 (난장: 2012) (공역), 『문명의 역사와 철학 2』 (길: 2015) (공저),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과 사건』 (갈무리: 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