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여성리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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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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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 단일 생활권으로 묶이며 전염병 역시 시시각각 세계화하고 있다. 가까운 아시아는 물론 저 멀리 아프리카와 중동 발 뉴스도 며칠 지나지 않아 곧 우리의 현실이 되곤 한다. 지난 몇 년 새 우리나라는 신종플루, 에볼라 같은 전염병 소식에 마음을 졸였다. 최근에도 역시 자카바이러스라는 신종 바이러스 출몰로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중이다.

하지만 일상화된 판데믹(전염병 대유행) 공포는 때때로 전에 없던 희망을 새로 발견하게도 한다. 지난 해 온 나라를 발칵 뒤집었던 메르스 사태가 그런 경우다. 초기 부실대응 논란에도 불구하고 곧 이어진 의료진의 눈물겨운 자기 헌신은 혼란에 빠진 국민이 평정심을 되찾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안명옥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첫 확진판정에서 종식선언에 이르는 100여 일 간의 전투 현장에서 의료진과 함께 최전선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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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쪽잠…누워도 잠들지 못했던 국가비상사태

“사무실 한쪽 간이침대에서 두 시간 남짓 쪽잠을 청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눈을 감고 있어도 머릿속에서는 메르스 생각이 내내 빙빙 돌았으니까요. 백척간두의 위기 앞에서 이순신 장군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정이입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전쟁 같은 극한의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때가 많아요. 인간의 정신력이라는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메르스 사태 당시 국립중앙의료원은 전국 곳곳에서 사투를 벌이던 거점의료기관들의 최후 보루 같은 곳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뚫리면 원내의 모든 의료진이 격리돼야 하고, 그렇게 되면 메르스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수 밖에 없었다.

2014년 12월 제3대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 취임한 지 5개월 만에 닥친 메르스 사태. 이제 막 업무에 시동을 건 신임 원장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현실이기도 했을 터다. 하지만 안 원장은 그 고난의 시간이 마치 오랫동안 준비돼온 운명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안 원장이 취임할 당시는 마침 국제적으로 에볼라가 유행하고 있던 시기.

취임 일성으로 공공보건의료의 중심이자 대표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의 ‘강한 사명감’과 ‘원칙에 충실한 실용주의 정신’을 강조했던 그는 첫날 에볼라 대비상황부터 점검했다. 이어 의료진에게 개인보호구 착탈의를 반복적으로 훈련시키고, 일반직원에게도 심폐소생술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는 등 언제 닥칠지 모르는 미연의 사태에 대비해 차근차근 대응태세를 갖춰가던 중이었다.

1979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안 원장은 미국 UCLA 대학원에서 예방의학을 공부하며 해외의 선진적인 공공의료정책을 접했다. 이때 4500만 명의 일반시민이 가입해 활동할 정도로 잘 조직된 미국의 지역커뮤니티 위기대응단 (Community Emergency Response Team, CERT)에 큰 인상을 받은 그는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이 참여하는 자원봉사 체계를 만들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한국에 돌아와 산부인과 의사로 첫 걸음을 뗀 그는 차병원과 보건복지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국회의원까지 역임하며 국내 보건정책 전반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보건정책은 단지 의료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부터 문학까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요소를 함께 섭렵해야 하지요. 젊은 시절부터 공부해온 이런 여러 분야의 지식과 경험의 융합이 결국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대표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장 역할을 맡는데 큰 자산이 되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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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안심응급실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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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탄자니아의료진방문

과학기술인이자, 여성이었기에 가능했던 일들...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에 만화광이기도 했던 그의 왕성한 관심사는 어른이 된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여성이 지닌 특유의 모성 즉 뭇 생명을 보살피는 ‘살림’의 정신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도록 하는 일에 큰 열정을 쏟아 부었다. 본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걸스카우트 연맹 이사,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이사장 등을 마다하지 않고 여성의 가치를 다룬 책 『아테나 독트린』을 번역하거나 국내외의 어린 소녀들을 위한 학습만화 『루나 레나의 비밀편지』를 시리즈로 꾸준히 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는 제가 과학기술인으로, 그리고 동시에 여성으로서 살아온 일생을 100퍼센트 쏟아 부은 결정체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결점도 없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간 배워 온 과학의 법칙을 충실히 따라 행했고, 또 많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여성의 삶을 경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여겨집니다.”

메르스 사태 기간 내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국립중앙의료원, 특히 75%에 이르는 여성 의료진과 직원들은 그가 하늘이 내린 사명처럼 받아 안았던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인터뷰 내내 묵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나면서부터 신앙을 가진 저에게는 ‘공동선(共同善)’이란 인생의 화두가 늘 따라다닙니다. 인생의 성취라는 건 좋은 의지로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하는 것, 더불어 그것을 혼자가 아닌 공동으로 함께 이뤄가는 것이라 믿고 있지요. 메르스 사태, 그리고 그때 보여준 동료 의료진들의 무한한 헌신은 그런 소명 의식을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깨닫게 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첫 확진환자 발생부터 종식선언, 그리고 이후의 후속 업무까지 100여 일 가깝게 이어진 메르스 사태 기간 동안 국내 의료진과 관계자들이 얻은 지혜와 교훈은 지난 2월 국립중앙의료원이 펴낸 『메르스 비상대응 백서』와 2.2 버전까지 끊임없이 보완된 『실무대응지침』에 오롯이 담겼다. 왕조실록에 버금갈 만큼 분초 단위로 메르스 사태의 모든 순간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복기한 전무후무한 국가 기록물들이다. 안 원장은 이 기록물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공공의료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거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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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1. 비상대응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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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2. 실무대응지침

한편 올해로 설립 58주년을 맞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은 안명옥 원장과 함께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준비 중이다. ‘보편적 형제애에 기반을 둔 사랑의 실현’을 목표로 ▲민간영역이 수행하기 힘든 재난·응급·외상·호스피스 등의 필수 공공의료서비스 확대 ▲공공보건의료 네트워크 구축 ▲지역사회 보건의료사업 강화 ▲통일 보건의료 준비 등 10대 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