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D 포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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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및 나노과학기술학과 원병묵 교수

‘공룡은 왜 거대할까?’, ‘공룡도 노화를 겪을까?’. 6,500만 년 전 멸종한 공룡에게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 최근 이러한 고생물학계 난제 해결에 힘을 실어줄 통계 분석법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분석법을 개발한 연구자는 고생물학자가 아닌 공학자. 공룡 생명주기를 수학모델로 분석해 통계학적 증거를 최초로 제시한 성균관대 원병묵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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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과 조류의 생존전략 유사성을 입증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연구인가요?

    공룡과 조류의 생물학적 유사성은 이미 고생물학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공룡이 왜 그토록 거대한 몸집을 가졌으며 생존 전략은 어떠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생물의 생존 전략과 노화 패턴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생명표’ 라는 통계 데이터가 필요한데요. 생명표는 연령에 따라 생존확률 또는 생존율을 정리한 통계표를 의미합니다. 생존율과 사망률은 수학적으로 연결한 생존 곡선은 많은 개체로부터 통계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얻어지는 통계적 데이터입니다. 이 생존 곡선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가장 잘 들어맞는 수식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생존 곡선을 수식화하면 생명표에 숨어있는 생존 전략과 노화 패턴의 원리도 이해할 수 있고 향후 추이도 분석할 수 있으며 종간 분석 등 다양한 분석을 할 수 있죠. 티라노사우루스 과에 속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일명 ‘티렉스’), 알베르토사우루스, 고르고사우루스의 생존 곡선은 2006년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플로리다 주립대 그레고리 에릭슨 교수팀의 연구 결과를 활용했습니다. 이 선행 연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연구가 가능했어요. 앞서 고생물학자들은 공룡의 화석 뼈의 단면적에서 미세조직을 분석해 나이테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발굴된 티라노사우루스의 표본을 모두 조사해 인간의 생명표와 닮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생명표를 최초로 발표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제가 만든 생존 곡선 수학 모델로 분석했습니다. 어떤 생물이든 믿을만한 생명표 데이터가 있으면 생존 전략과 노화 패턴의 연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수학적 모델을 이용한 통계적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최상위 포식자였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생존 곡선을 분석, 티라노사우루스의 생존 전략과 노화 패턴이 파충류나 포유류와 달리 몸집이 큰 현생 조류와 매우 유사하다는 통계적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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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연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1997년 입사한 한 대기업 연구소에 다닐 때 제품의 성능을 유지하면서 제조 단가를 낮추는 것이 저의 과제였습니다. 제품의 성능을 유지한다는 것은 제품의 수명과 관련되어 있어서 제품의 수명을 예측 평가하는 방법이 필요했었죠. 이때 제품의 생존 곡선을 정확하게 표현한 수학 모형을 개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정된 늘어진 지수함수’를 발견했고, 2004년에 이것을 인간의 수명 패턴, 즉 생존 곡선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결과가 꽤 만족스러워 논문으로 발표하려고 했으나 처음에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이후 2005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박사학위 과정으로 진학했습니다. 박사과정에서 처음 접한 연구 주제로 발광소자의 수명을 이해하는데 이 모델을 적용해 함수를 이루는 지수가 기존의 상수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동안 인간의 수명과 노화 해석에 이 모델을 적용해 최근까지 관련 논문을 4편 발표했습니다.

이번 연구 성과가 고생물학 분야에 큰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앞으로 추가로 진행되어야 할 연구는 무엇인가요?

    고생물학의 많은 난제들은 화석 표본과 분석 데이터 부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도 티라노사우루스의 생존 곡선에 활용된 데이터가 충분한 통계적 결론을 내릴 만큼 풍족하지 않다는 약간의 우려가 있어, 앞으로 수많은 표본과 분석 데이터를 추가 분석해 이번 연구 결과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 연구 분야의 세계적 연구 흐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새로운 수학 모델을 다양한 생물종에 적용해 생존 전략과 노화 패턴을 이해하는데 활용할 생각입니다. 특히 이를 확대하여 인간의 노화 과정을 이해하거나, 초고령 인구의 추이를 분석하는데 열쇠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암환자, 암세포 등 특수하고 중요한 실험군의 생존 전략을 이해하는 데에도 활용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연구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신 이유가 있나요?

    초등학교 때 과학동아를 보며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선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공대를 다니면서는 삶의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지 못했었죠. 그러나 교수님들의 멋진 강의에 매료되어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군 입대 대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학문의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물리학을 좋아하고 공학과의 접점에서 많은 유익한 연구를 해왔습니다.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은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응용이 쉬워지죠. 이번 연구도 공학자가 수학과 통계학을 활용해 고생물학 연구를 했다는 겉보기와는 달리 제가 늘 사용하는 물리기반 연구 방식을 약간 응용한 것입니다. 이런 점이 과학자의 매력입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면 다른 분야에 확대 적용할 수 있고 자신의 발견과 발명이 다른 분야에서 어떻게 유익하게 활용되는지 지켜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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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24시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연구실에서 교수님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연구는 장거리 달리기와 같습니다. 컨디션을 조절하며 전체 코스와 부분 구간 코스의 균형이 잘 맞춰야 할 필요가 있지요. 가정과 학교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은 행복한 과학자이자 여유 있는 교육자로서 중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침을 조금 일찍 시작합니다. 그리고 낮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집중해서 일하고 저녁식사 전에 퇴근을 하면 이후에는 일을 쉽니다.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며 특히 밤에는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충분한 휴식이 있어야 창의적인 연구와 교육이 가능하다고 믿기에 의도적으로 그런 생활 패턴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함께 연구를 진행한 연구원 및 팀원들에게 교수님은 어떤 스승인가요?

    연구팀 학생들을 동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생들은 제가 엄한 스승이라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물어 봤더니 “학생들이 어렵고 복잡한 연구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한 잣대를 잡아주시고, 팀원들과 많은 토론과 미팅을 통해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고 개개인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합니다. 저는 학생들이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 찾아내고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발굴해 내서 어떤 주어진 과제도 해결할 수 있는 창의적이며 도전적인 월드 클래스의 인재가 되길 희망합니다.

연구자로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자연을 깊이 보기 위해선 현미경이 필요하죠. 저는 현미경을 이용하여 자연을 바라봅니다. 특히 연성물질과 나노물질을 광학현미경과 엑스선현미경으로 연구합니다. 연성물질은 콜로이드, 유체, 젤, 하이드로젤, 유리, 액정, 유기분자, 고분자, 점성, 자기조립, 젖음성 등 우리 주변에서 흔하지만 아직 연구가 활발하지 않은 새로운 융합 학문 분야입니다. 저는 이 분야의 개척자로서 앞으로도 기초와 응용에서 융합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싶습니다.

원병묵 교수

1997년 성균관대학교 금속공학과 학사 과정을 마친 후 1999년까지 포항공과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LG전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2008년까지 포항공과대학교 신소재공학과 박사 과정을 밟았다.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 연성물질물리연구실 박사후연구원과 포항공과대학교 연구조교수를 거쳐 2013년부터 현재까지 성균관대학교 신소재공학부 및 나노과학기술학과 조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연성물질물리, 엑스선현미경, 생물노화다.

거대 공룡의 생존전략, 그 비밀을 밝히다

공룡이 타조, 매와 같이 몸집이 큰 조류와 비슷한 노화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 입증됐다. 성균관대 원병묵 교수는 인간의 생명표를 해석하는 수학 모델 ‘수정된 늘어진 지수 함수(Modified Stretched Exponential)’로 티라노사우르스의 생명표를 비교분석해 공룡과 조류의 유사성을 입증했다고 지난 1월 22일 밝혔다.
분석 결과 유아기, 청소년기, 성인기로 구성되는 생애주기 중 공룡은 청소년기가 매우 길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티라노사우르스 렉스(티렉스)의 수명은 28년 정도로 알려졌는데, 그 중 유아기가 2년, 청소년기는 18년까지로 분석됐다. 또 새끼를 낳고 기르는 종족보존의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생존하며 자연스럽게 노화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원 교수는 공룡의 생존 전략과 노화 패턴이 타조나 매처럼 몸집이 큰 조류에 가깝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공룡과 조류의 유사성을 해부학적 증거 외에 통계학적 증거로 최초 입증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연구결과는 22일 오후 5시 세계적인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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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티라노사우루스의 생존율 곡선. 에릭슨 교수의 2006년 사이언스 논문에서 제안한 공룡의 생명표를 바탕으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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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티라노사우루스의 생존율 분석
알베르토사우루스의 생존율 추이는 고릴라, 호랑이, 악어, 18세기 인간과 매우 다르며, 타조, 매 등의 몸집이 큰 새와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