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

메인으로

구독신청 독자의견

스토리R

생명이 스스로를 지키는 법
세포 재생의 비밀을 밝히다
서울대학교 노성훈 교수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상처가 아물고, 손상된 조직이 다시 제 모습을 되찾는 일. 우리는 이를 너무도 당연한 생명의 법칙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그 당연함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분자들이 질서를 이루며 치열하게 생명을 지켜내고 있는데요. 생명은 어떻게 오랜 시간 건강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7월호 스토리R에서는 그 답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며 생명과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노성훈 교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 선정하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상금 1천만 원을 수여하는 상

Chapter 01 인물탐구

노성훈 1975년 소속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주요학력
  • 2010.08. ~ 2015.04.
    미국 배일러 의과대학 분자생물학/생화학 박사
  • 2001.03. ~ 2003.02.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석사
  • 1994.03. ~ 2001.02.
    경북대학교 미생물학과 학사

Chapter 02 생명을 움직이는 새로운 질문

상처가 아물고, 손상된 조직이 회복되는 일. 우리 몸은 평생 세포를 만들고, 유지하고, 다시 재생하며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렇다면 세포는 어떻게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고, 손상된 부분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특히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물질 이동과 세포 분열을 담당하는 세포골격은 이러한 과정의 핵심 기반입니다. 노성훈 교수는 오랫동안 이 질문을 붙들었고, 물음표를 확장해 마침내 연구의 출발점에 닿았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첫 번째 초저온전자현미경을 구축한 지도교수 및 동료 연구원들과 노성훈 교수(사진 오른쪽)

그간 일반적인 생명과학 이론은 단백질이 만들어져 올바른 모양으로 접히면 기능을 갖게 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노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요. 세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분자들이 정확한 시점과 장소에서 기능해야 하는데, 단순히 단백질의 모양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죠. 그러면서 엉뚱하고도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생명체가 기능성 분자를 만들기까지 관리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죠. “생명은 어떻게 기능을 가진 분자를 만들고 유지하는가가 제 연구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세포는 단순히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가진 상태까지 관리합니다. 저는 그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주목한 대상은 바로 세포골격. 세포골격은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물질을 운반하며, 세포 분열과 이동까지 담당하는 세포 속 '뼈대'인데요. 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 구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노성훈 교수는 세포골격을 구성하는 핵심 단백질인 ‘튜불린’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리되는지를 추적하며, 생명체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를 밝혀내기 시작했습니다.

Chapter 03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지키는 힘

사람의 몸에서 뼈가 몸을 지탱하듯, 세포골격은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물질을 운반하며 세포의 이동과 분열을 돕는 중요한 구조인데요. 하지만 세포골격도 시간이 지나면 손상되고, 새로운 단백질로 끊임없이 교체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포는 어떻게 자신의 뼈대를 항상 건강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요? 노성훈 교수 연구팀은 그 해답을 '샤페론 조절인자'에서 찾았습니다. 샤페론 조절인자는 세포골격의 핵심 단백질인 튜불린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정상적인 단백질은 조립해 세포골격을 만들고, 손상되거나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은 다시 분해해 재활용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공장에서 불량품을 골라내고 정상 제품만 출고하는 품질관리 시스템처럼 말이죠.

  • 샤페론 조절인자 세포골격의 핵심 단백질인 튜불린을 관리하는 샤페론 단백질.
    여러 샤페론 단백질이 하나의 초대형 복합체를 형성해 정상적인 튜불린만을 선별해 조립하고,
    손상되거나 잘못 조립된 튜불린은 다시 분해해 재활용한다.
세포의 뼈대를 재생하는 ‘샤페론 조절인자’의 원리 규명

나아가 연구팀은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활용해 이 과정이 실제 세포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원자 수준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종류의 샤페론이 하나의 초대형 복합체를 이루어 튜불린을 선별하고 조립하며, 필요에 따라 다시 분해해 재활용하는 '양방향 품질관리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습니다. “비유하자면 움직이는 자동차 엔진을 분해하지 않고 작동 중인 상태에서 내부 부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한 것과 비슷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정지된 구조를 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순간에 존재하는 중간 단계들을 포착하여 하나의 분자 영화를 복원한 데 의미가 있죠.”

초저온전자현미경 연구 인프라와 공동활용 체계 구축

기존에는 세포골격을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는 단순한 구조물로 이해했다면, 이번 연구는 세포골격이 끊임없이 조립·분해·재활용되는 '분자 정비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는 생명체가 단순히 단백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까지 관리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연구입니다. 연구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노성훈 교수는 국내에 초저온 전자현미경 연구 기반이 부족했던 시기부터 연구 플랫폼을 직접 구축하며 구조생물학 연구의 토대를 다져왔습니다. 그 기반 위에서 단백질 접힘 연구(Cell), 다이서의 3차원 구조 연구(Nature), 그리고 이번 세포골격 재생 원리 규명(Science)까지 세계적 성과를 잇달아 발표하며 국내 구조생물학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Chapter 04 좋은 연구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노성훈 교수는 학사와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다른 환경에서 보냈고, 민간기업에서도 경험을 쌓았습니다. 서로 다른 연구 문화 속에서 얻은 공통된 깨달음은 하나. 좋은 연구는 뛰어난 장비나 한 사람의 아이디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연구실에서도 그는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앞서가는 연구자도 필요하지만, 주변 이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더 큰 연구를 만든다고 믿는데요. 학생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며 질문을 만들어가는 연구실을 꿈꾸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캠퍼스에서 연구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는 노성훈 교수

연구 과정을 돌이켜보며 그가 꺼낸 단어 중 하나는 '의심'이었습니다. 기존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의 생각을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이 새로운 발견의 시작이라는 것인데요. 실제로 이번 연구 역시 ‘단백질은 만들어지기만 하면 기능한다’라는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연구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생각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연구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력하고 경험을 쌓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국내 연구 인프라를 하나씩 구축하며 세계 최초의 연구 성과를 만들어낸 노성훈 교수. 그가 밝혀낸 것은 세포 속 분자 정비 시스템만이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질문을 다시 바라보고, 더 나은 답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연구의 가치 역시 증명해 보였는데요. 생명의 근본 원리를 향한 그의 다음 질문이 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지 기대됩니다.

속닥속닥! 못 다한 이야기 연구자 TMI

  •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함께 연구를 수행해 온 학생들과 연구원들, 연구를 지원해 주신 많은 동료 연구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상은 개인 성과라기보다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생물학적 질문에 대해 연구실 구성원이 함께 도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통해 세포의 뼈대를 만들고 관리하는 분자 수준의 작동 원리를 규명할 수 있었고, 세계 최초로 그 과정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생명 현상의 근본 원리를 밝히고, 노화와 질병을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겠습니다.
  • 이번 연구 성과가 향후 노화 연구나, 암 연구에 어떤 실마리를 줄 수 있을까요? 노화는 단순히 세포나 조직이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 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고 유지하는 능력이 점차 저하되는 과정입니다. 세포골격은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물질을 운반하며 세포 분열과 조직 재생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암, 신경퇴행성 질환, 근육 질환 등 다양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는 튜불린이 만들어지고 품질 관리되는 과정을 규명해 세포가 기능을 가진 단백질을 어떻게 유지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했습니다. 앞으로 노화 과정에서 어떤 품질관리 체계가 무너지는지, 암세포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손상된 조직의 재생 능력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 단백질 항상성, 분자구조 집합체, 세포골격, 노화와 질병의 원리를 연구해 오셨는데요.
    교수님 연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생명은 어떻게 기능을 가진 분자를 만들고 유지하는가’입니다. 세포 안에는 수많은 단백질이 존재하지만, 단백질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바로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모양을 갖추고, 필요한 곳에 배치되고, 손상되면 다시 수리되거나 교체되어야 비로소 생명 활동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이러한 과정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단백질의 접힘, 세포골격의 형성, 분자 조절인자의 작동, 그리고 노화와 질병의 발생 과정도 결국 세포가 기능성 분자를 만들고 유지하는 능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저는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분자 조립과 품질관리의 원리’를 연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생명체가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하고 재생하는지 이해하고, 나아가 노화와 질병의 근본 원인을 밝히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연구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생명체가 어떻게 분자를 만들고, 이를 통해 살아있는 시스템을 유지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인공지능과 첨단 이미징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아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생명 현상을 탐험하는 연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 과학자와 공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선배과학자로서 조언과 격려 한마디. 과학은 정답을 습득하는 학문이 아니라, 세상에 없던 질문을 던지고 새 가능성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저는 과학자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탐험하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다만 멋진 일이 반드시 즐겁거나 쉬운 일인 것은 아니죠. 과학의 매력은 오히려 어렵고 힘들며, 아무도 답을 모르는 문제에 도전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도 많고 불확실성도 크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발견의 기쁨도 큽니다. 여러분의 작은 도전과 질문 하나가 언젠가는 세상을 바꾸는 발견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