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R
생명이 스스로를 지키는 법세포 재생의 비밀을 밝히다 서울대학교 노성훈 교수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상처가 아물고, 손상된 조직이 다시 제 모습을 되찾는 일. 우리는 이를 너무도 당연한 생명의 법칙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하지만 그 당연함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분자들이 질서를 이루며 치열하게 생명을 지켜내고 있는데요. 생명은 어떻게 오랜 시간 건강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7월호 스토리R에서는 그 답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며 생명과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노성훈 교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 선정하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상금 1천만 원을 수여하는 상
상처가 아물고, 손상된 조직이 회복되는 일. 우리 몸은 평생 세포를 만들고, 유지하고, 다시 재생하며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렇다면 세포는 어떻게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고, 손상된 부분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특히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물질 이동과 세포 분열을 담당하는 세포골격은 이러한 과정의 핵심 기반입니다. 노성훈 교수는 오랫동안 이 질문을 붙들었고, 물음표를 확장해 마침내 연구의 출발점에 닿았습니다.
그간 일반적인 생명과학 이론은 단백질이 만들어져 올바른 모양으로 접히면 기능을 갖게 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노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요. 세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분자들이 정확한 시점과 장소에서 기능해야 하는데, 단순히 단백질의 모양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죠. 그러면서 엉뚱하고도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생명체가 기능성 분자를 만들기까지 관리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죠. “생명은 어떻게 기능을 가진 분자를 만들고 유지하는가가 제 연구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세포는 단순히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가진 상태까지 관리합니다. 저는 그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주목한 대상은 바로 세포골격. 세포골격은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물질을 운반하며, 세포 분열과 이동까지 담당하는 세포 속 '뼈대'인데요. 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 구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노성훈 교수는 세포골격을 구성하는 핵심 단백질인 ‘튜불린’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리되는지를 추적하며, 생명체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를 밝혀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뼈가 몸을 지탱하듯, 세포골격은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고 물질을 운반하며 세포의 이동과 분열을 돕는 중요한 구조인데요. 하지만 세포골격도 시간이 지나면 손상되고, 새로운 단백질로 끊임없이 교체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포는 어떻게 자신의 뼈대를 항상 건강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요? 노성훈 교수 연구팀은 그 해답을 '샤페론 조절인자'에서 찾았습니다. 샤페론 조절인자는 세포골격의 핵심 단백질인 튜불린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고, 정상적인 단백질은 조립해 세포골격을 만들고, 손상되거나 잘못 만들어진 단백질은 다시 분해해 재활용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공장에서 불량품을 골라내고 정상 제품만 출고하는 품질관리 시스템처럼 말이죠.
나아가 연구팀은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활용해 이 과정이 실제 세포 안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원자 수준으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종류의 샤페론이 하나의 초대형 복합체를 이루어 튜불린을 선별하고 조립하며, 필요에 따라 다시 분해해 재활용하는 '양방향 품질관리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습니다. “비유하자면 움직이는 자동차 엔진을 분해하지 않고 작동 중인 상태에서 내부 부품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한 것과 비슷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정지된 구조를 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순간에 존재하는 중간 단계들을 포착하여 하나의 분자 영화를 복원한 데 의미가 있죠.”
기존에는 세포골격을 세포의 형태를 유지하는 단순한 구조물로 이해했다면, 이번 연구는 세포골격이 끊임없이 조립·분해·재활용되는 '분자 정비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는 생명체가 단순히 단백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까지 관리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연구입니다. 연구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노성훈 교수는 국내에 초저온 전자현미경 연구 기반이 부족했던 시기부터 연구 플랫폼을 직접 구축하며 구조생물학 연구의 토대를 다져왔습니다. 그 기반 위에서 단백질 접힘 연구(Cell), 다이서의 3차원 구조 연구(Nature), 그리고 이번 세포골격 재생 원리 규명(Science)까지 세계적 성과를 잇달아 발표하며 국내 구조생물학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노성훈 교수는 학사와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다른 환경에서 보냈고, 민간기업에서도 경험을 쌓았습니다. 서로 다른 연구 문화 속에서 얻은 공통된 깨달음은 하나. 좋은 연구는 뛰어난 장비나 한 사람의 아이디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연구실에서도 그는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앞서가는 연구자도 필요하지만, 주변 이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더 큰 연구를 만든다고 믿는데요. 학생들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며 질문을 만들어가는 연구실을 꿈꾸고 있습니다.
연구 과정을 돌이켜보며 그가 꺼낸 단어 중 하나는 '의심'이었습니다. 기존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의 생각을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이 새로운 발견의 시작이라는 것인데요. 실제로 이번 연구 역시 ‘단백질은 만들어지기만 하면 기능한다’라는 익숙한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연구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생각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연구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력하고 경험을 쌓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국내 연구 인프라를 하나씩 구축하며 세계 최초의 연구 성과를 만들어낸 노성훈 교수. 그가 밝혀낸 것은 세포 속 분자 정비 시스템만이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질문을 다시 바라보고, 더 나은 답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연구의 가치 역시 증명해 보였는데요. 생명의 근본 원리를 향한 그의 다음 질문이 또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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