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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 & Peak

“끓이지 않고 원유 걸러요!”
정유 공정에 새 길을 제시하다
한국과학기술원 고동연 교수

베일에 싸여 있던 비밀을 가장 먼저 풀어냈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합니다. 세상에 없던 미래기술을 개발했을 때도 마찬가지일텐데요. NRF웹진 Pick&Peak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엄선한 우수 연구성과를 연구자의 입을 통해 들어봅니다.

과학계는 오랜 기간 통념처럼 여겨지던 이론과 기술을 뒤집으며 발전해왔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구가 평면처럼 네모났다고 믿은 인류에게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처럼 말이죠.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석유 역시 10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유를 350℃ 이상의 고온으로 펄펄 끓여 생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여겨져 왔는데요. 최근 이런 정유 공정의 상식을 뒤엎은 연구자가 있습니다.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은 줄이면서 상온에서도 원유를 걸러내는 ‘차세대 분리막 기술’을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동연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NRF’s Pick 고동연 교수가 걸어온 길

고동연 교수 1985년생

  • 소속

    • 한국과학기술원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 학력 및 경력

    • 2017.08. ~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조교수, 부교수(현)
    • 2014.04. ~ 2017.07.
      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박사후연구원
    • 2013.03. ~ 2014.03.
      KAIST 응용과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
    • 2007.03. ~ 2013.02.
      KAIST 생명화학공학 박사(석박통합)
    • 2003.03. ~ 2007.02.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 학사

Peak Time 연구성과 몰아보기

  • 논문명 Crude Oil Fractionation by Means of Mesoporous Polyacrylonitrile Membranes
  • 저널명 네이처(Nature)
  • 키워드 Polyacrylonitrile membrane(폴리아크릴로니트릴 분리막),
    Crude oil fractionation(원유 분별),
    Self-limiting pore constriction(자기제한적 기공 수축),
    Energy-efficient petroleum refining(에너지 절감형 정유 공정)
  • 연구 저자
    • 고동연 교수(교신저자/KAIST)
    • 라이언 라이블리 교수(교신저자/美조지아공대)
    • 최지훈 박사(제1저자/KAIST)
    • 서혁준 박사(제1저자/KAIST)
    • 이민용 박사과정생(KAIST)
    • 신웅철 연구원(HD현대오일뱅크)
    • 최재민 석사과정생(KAIST)
    • 최건우 박사(KAIST)
    • 장민준 박사과정생(KAIST)
    • 임성갑 교수(KAIST)
    • 이재우 교수(교신저자/KAIST)
  • 연구의 필요성
    • 글로벌 원유 정제에 사용되는 상압·감압 증류 공정은 연간 1,100 TWh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1억 6천만 톤 이상의 CO2를 배출하는 등 탄소집약도가 높아, 에너지·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안적 분리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 분리막을 활용한 원유 정제는 기존 증류 공정의 에너지·탄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유망한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으나, 기존에 시도된 고분자 분리막 소재*를 활용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 그간 고분자 분리막 소재를 활용한 연구는 얇은 선택층(selective layer)의 화학적 특성에만 집중해 왔으나, 그 역할과 성능이 체계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분리막 구조-성능 간 근본적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다.

* N-Aryl linked spirocyclic polymer, Polytrizaole, Polyamide 등

  • 연구성과 요약
    • 본 연구는 100년 이상 유지되어 온 증류 기반 정유 패러다임에 도전하여, 별도의 선택층 코팅 없이 기존에 지지체로만 쓰이던 값싼 다공성 고분자 막만으로 원유와 같은 초복잡 혼합물의 분자 수준 정제가 가능함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 기존 정유 설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분리막 모듈만 추가하는 방식으로 즉시 적용(드롭인) 가능하며,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 전체에 확대 적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약 1,000만 톤 규모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원유 분별 외에도 나프타·방향족 분리, 폐플라스틱 재활용, 배터리 소재·의약품 생산 공정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의 응용이 가능하며, 국산 분자 정유 플랫폼 기술로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Deep Talk 연구자 인터뷰

  • 교수님,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에서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 고동연입니다. 복잡한 혼합물에서 필요한 분자만 적은 에너지로 골라내어 화학 산업과 탄소관리 공정을 더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분리막 기반의 원유 전처리 기술,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기술은 물론, 자율 운전 공정 연구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명화학공학 전공을 지도하고 계십니다.
    해당 분야가 낯선 NRF 웹진 독자들을 위해 교수님께서 관심 있게 다루고 계신 연구 분야에 대해 짧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생명화학공학은 분자 수준에서 발견한 과학적 원리를 사람들이 사용하는 제품과 대규모 산업 공정으로 연결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분리’를 연구합니다. 커피 필터가 커피 가루와 물을 나누듯, 분리막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크기나 모양 및 성질 차이를 이용해 필요한 성분만 통과시키는 정교한 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희 연구실에서는 원유와 유기용매의 분리, 혼합기체의 정제, 공기 중 이산화탄소 직접포집을 위한 분리막과 흡착 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모듈과 공정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최적화 기술을 결합해 환경과 운전조건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죠. ‘분리’는 소비자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제품의 순도와 가격은 물론 산업의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원유 및 유기용매의 ‘분리 기술’을 연구하는 고동연 교수 연구실
  • 상온에서 원유를 걸러내는 차세대 분리막 기술을 개발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성과 소개에 앞서 그간의 정유 공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짧게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원유는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매우 가벼운 탄화수소부터 끈적하고 무거운 성분까지, 수많은 분자가 섞인 액체입니다. 현대 정유공정은 꾸준히 발전해 왔지만, 100년 넘게 중심 원리로 사용된 것은 끓는점 차이를 이용한 증류였는데요. 원유에서 물과 염분을 제거한 뒤 350℃ 이상으로 가열해 높은 증류탑으로 보내면, 끓는점이 낮은 성분은 위쪽으로 올라가 응축되고 무거운 성분은 아래쪽에 남으면서 나프타, 등유, 경유, 잔사유 등의 유분으로 나뉩니다. 이후 분해·정제 공정을 거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연료나 소재의 원재료가 되죠. 증류는 대량의 원유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다만 원유 전체를 가열하고 일부를 기화한 뒤 다시 식혀야 하므로 많은 열에너지와 냉각수가 필요한데요. 이번 분리막은 증류를 한 번에 대체하려는 기술이라기보다, 증류 전단에서 가벼운 성분을 상온/가압 조건으로 먼저 나누어 증류탑이 감당해야 할 열부하를 덜어주는 하이브리드 기술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증류탑은 전국의 모든 택배를 한 물류센터에서 분류하는 것과 같습니다. 분리막은 물류센터 앞에서 가벼운 물량과 무거운 물량을 미리 나눠, 핵심 설비가 처리해야 할 부담을 줄이는 사전분류 장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 차세대 분리막 기술 연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바닷물 담수화가 좋은 선례였습니다. 예전에는 바닷물을 끓여 담수를 얻었지만 지금은 역삼투막과 같이 분리막을 거르는 방식이 표준이 됐고, 에너지 소비를 몇 분의 일로 줄였는데요. “물에서 일어난 패러다임 전환이 왜 탄화수소에서는 안 될까”가 저의 오랜 질문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자일렌 이성질체 같은 유기 액체를 막으로 상온에서 분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출발점이었고, 그 고민이 10년의 세월을 지나 이번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다만 원유는 물과 차원이 다른 상대입니다. 기존 고분자 분리막은 원유에 닿으면 녹거나 부풀고, 끈적한 중질 성분에 금세 오염되곤 하죠. 즉 이를 견디는, 결함 없는 선택층을 넓은 면적에 입히는 코팅 기술이 필요한데요, 이것이 수십 년간 산업계가 풀지 못한 난제였습니다. 저희는 이 난제를 정면으로 푸는 대신, 문제 자체를 다시 정의해 보기로 했습니다.
  • 이번 연구성과,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연구는 계획보다는 관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선택층을 입히기 위해 지지체로 쓰던 값싼 다공성 고분자(PAN) 막에 원유를 흘려보냈는데, 아무 코팅도 하지 않은 이 막이,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가벼운 성분만 통과시키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에는 흔한 ‘막 오염’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런데 데이터를 들여다볼수록 이상했습니다. 오염이라면 통로가 계속 막혀 결국 못 쓰게 돼야 하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더 좁아지지 않고 안정적인 분리 성능을 유지하는 거예요. 원유 속 무겁고 끈적한 분자들이 기공 벽에 달라붙으며 통로를 2나노미터 이하로 좁히는데, 좁은 공간에 갇힌 물질은 성질이 달라져 일정 크기 이하에서는 더 이상 쌓이지 않고 멈춘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막힘이 아니라, 원유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분리 통로를 빚어낸 것입니다. 저희는 이 ‘자기제한적 기공 수축’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국내외 공동연구팀과 분석 및 검증을 거듭했습니다. 이후 실제 원유로 상온 가압 조건에서 연속 운전을 진행해 28일 동안 성능이 유지됨을 확인했고 선택층이 없는 만큼, 흐름 저항이 작아 기존 분리막 대비 약 23배 높은 투과 성능이 높다는 사실을 도출했는데요. 공정 분석을 통해 증류 전 가벼운 성분을 미리 걸러낼 경우 에너지를 31.6%, 이산화탄소 배출을 37.6% 줄일 수 있다는 결과도 함께 얻어내는 쾌거를 이뤘죠.
    선택층 없이 원유를 거르는 상온 분리막 공정 모식도
    상온 PAN 분리막의 원유 정제 성능(경질 유분 농축과 28일 장기 운전 안정성 측정 결과)
  • 연구를 수행하시면서 여러 난제에 부딪힌 경우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저희 스스로 상식과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선택층이 없는 지지체가 원유를 분리한다’는 것은 교과서에 반하는 주장이라, 우연이나 실험 오류가 아님을 보이기 위해 조건을 바꿔가며 같은 실험을 수없이 반복했죠. 이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막힘’과 ‘분리 기능’을 구분하는 일이었는데요. 보통 막에 무거운 성분이 쌓이면, 성능을 떨어뜨리는 파울링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축적이 일정 수준에서 안정화되면서 오히려 분자 수준의 통로를 형성했습니다. 검고 불투명하며 수많은 성분으로 이루어진 원유 안에서 어떤 분자가 막의 어느 위치에 자리 잡는지 추적하는 일은 블랙박스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두 번째 장애물은 연구가 실제 원유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흔히 논문에 쓰는 모델 혼합물과 달리 진짜 원유는 수천 종의 분자가 섞여 있어 무엇이 얼마나 통과했는지 분석하는 것 자체가 난제였습니다. 나아가 나노미터 크기 기공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었는데요. 저희는 처음 세운 가설에 결과를 맞추기보다 측정 오차, 시료 채취, 물질수지(mass blance), 막의 팽윤과 기공 변화 등 가능한 원인을 하나씩 점검했습니다. 동일한 결과가 반복되는지 확인하고, 서로 다른 분석법과 대조 실험이 같은 결론을 가리키는지도 살펴봤어요. 퍼즐을 맞추듯 메커니즘을 재구성해야 했죠. 돌이켜 보면, 버리기 쉬운 ‘이상한 데이터’를 붙잡고 늘어진 끈기가 이 연구를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개인기초연구,
    선도연구센터(ERC) 사업의 도움을 받아 추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연구 수행 간 실질적으로 기억에 남거나 체감되는 부분이 있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새로운 원리를 탐색하는 연구는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과 활용 범위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즉, Top-Down 형태의 달성 목표가 존재하는 과제로는 시도조차 못해볼 주제입니다. 개인기초연구, 특히 우수신진연구 지원은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위험도가 높은 아이디어를 꾸준히 시험하고 반복 검증할 수 있는 시간과 연속성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4년간 보이지 않는 기공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깊이 탐색하지 못하고 하나의 케이스 스터디로 연구가 끝났을 겁니다. 기초연구사업의 역할은 장비와 재료를 구입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충분히 실험하고 실패에서 배울 수 있도록 ‘사람과 시간’을 지켜주는 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도연구센터(ERC) 사업을 통해서는 분석 인프라와 공동연구 네트워크의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분리막 연구는 소재, 분석, 공정이 모두 맞물려야 하는 분야인데, 센터를 통한 정기적인 교류가 저희 팀 혼자서는 닿기 어려운 시야를 열어 주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고동연 교수 연구실
  • 차세대 분리막 기술, 우리 삶에 어떤 편의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하시나요? 기술이 상용화되더라도 일반 국민이 분리막 자체를 직접 보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대신 연료와 플라스틱, 섬유, 윤활유 등 여러 제품을 만드는 정유-석유화학 공정의 에너지와 탄소 부담을 줄이는 ‘보이지 않는 편의’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정제에 드는 에너지가 줄면, 연료는 물론 플라스틱, 섬유처럼 원유에서 출발하는 수많은 생활 소재의 원가 안정에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금 더 길게 보면 ‘끓이지 않고 거른다’는 원리는 원유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열분해유의 정제, 배터리 생산에 쓰이는 용매의 회수, 의약품 정제처럼 지금도 열에 의존하는 공정들로 연구가 확장될 수 있고, 이는 화학산업 전체의 에너지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기대합니다.
  • 이번 연구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게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는데요.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10년 넘게 붙잡아 온 질문에 중간 답안을 제출한 기분입니다. 네이처에 저희 이야기가 실린 것은 물론 기쁜 일입니다만, 무엇보다 예상과 다른 결과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오랜 시간 검증해 준 학생들, 그리고 각자의 전문성을 보태주신 공동연구자(이재우 교수님, Ryan Lively 교수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100년 넘게 정유공정의 중심이었던 증류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 연구가 국제적으로 의미를 인정받았다는 점도 매우 뜻깊습니다. 다만 논문 게재는 결승선이라기보다, 더 많은 연구자에게 이 성과의 검증과 실제 공정으로의 확장을 요청하는 출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유는 그 자체로 중요한 물질인 동시에 수많은 화학제품의 출발 원료이기도 합니다. 이번 연구를 계기로 원유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중간체와 화합물까지 분리막으로 정제하고, 화학산업 전반의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새로운 연구들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 연구자로서 앞으로의 목표와 계획이 궁금합니다. 가까운 목표는 이번 기술을 실제 공정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져가는 것입니다. 대면적 모듈 제작과 장기 운전 기술을 확보해 실증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서로 다른 실제 원유를 대상으로 더 긴 연속 운전을 수행하고, 막의 세정과 교체, 대면적 모듈 제작, 파일럿 운전조건을 검증할 예정입니다. 또한 분리막을 기존 상압-감압증류와 어느 위치에서 결합해야 전체 공정의 에너지, 비용, 탄소 배출을 가장 크게 줄일 수 있는지 국내 산업계와 함께 구체화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분리 대상의 확장입니다. 원유에서 확인한 원리를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바이오/의약 원료 같은 다른 난제 혼합물에도 적용해 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자율실험실을 통해 분리 소재 개발의 속도 자체를 높이는 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희 연구실의 가장 최근 목표는 모든 대학원생이 자신만의 ‘self-driving bench’를 구축하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self-driving bench란 실험을 자동화하는 장비에 그치지 않고,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다음 실험을 제안하고 연구자는 자신의 직관과 판단으로 연구 방향을 결정하는 환경을 뜻합니다.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역량과 연구자만이 지닌 호기심과 직관을 결합해, 학생들이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데 머물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아가는 진정한 독립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교수님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후학들에게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 연료, 의약품, 반도체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것은 ‘나누는’ 공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때문에 ‘분리 기술’ 분야의 작은 진전은 특정 제품을 넘어 산업 전체의 에너지와 생산 방식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제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문헌을 읽고, 새로운 소재와 가설을 제안하며, 실험조건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을 하나의 빠른 순환으로 연결합니다. 연구자가 수개월 또는 수년 동안 반복하던 탐색을 크게 압축하면서, 과학은 우리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속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공지능이 연구자의 호기심과 직관을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대담한 질문에 도전할 수 있도록 연구자의 역량을 증폭시키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더라도 산업과 사회의 뿌리를 바꿀 수 있는 긴 호흡의 질문을 품고, 동시에 새로운 도구를 두려움 없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후학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여러분이 던지는 좋은 질문에 인공지능의 속도가 더해질 때,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과학적 발견과 산업의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