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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인문학의 향기와 상상력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 정해조 교수
(전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장)

한국을 대표하는 생선은 무엇일까요? 예, 맞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고등어’입니다.
그런데 바다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이라고 물었을 때, 1위는 ‘돌아와요 부산항’ 혹은 ‘목포의 눈물’ 중에 하나일 것 같았는데, ‘여수밤바다’를 가장 많이 선택하였습니다.
이는 2017년 한국갤럽과 함께 부경대 대학인문역량사업단에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부경해양지수 조사를 한 결과 중 일부입니다. 해양인문학적 관점에서 ‘한국인에게 바다는 무엇인가?’에 대한 최초의 해양종합지수 조사였습니다. 바다가 지니는 의미를 지역‧세대‧개인의 경험에 따라 파악해 이를 해양인문학, 해양교육, 해양문화산업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바다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는 정도인 친숙지수, 바다 먹거리 인식을 나타내는 먹거리지수, 바다가 우리 문화에 가지는 영향력에 관한 해양문화지수, 안보지수, 환경지수, 안전지수, 경제지수, 교육지수, 정책지수 등 다양한 측면에서 대인면접을 통해 파악한 소중한 자료였습니다.

여러분은 ‘바다’ 라는 단어를 대하였을 때, 어떤 느낌 혹은 생각이 드시는지요? 친근감, 휴식, 두려움, 재난사고 등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른 연상이 될 것 같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바다’라는 대상은 풍랑 등으로 희생된 선원과 어부들에 대한 기억, 평안한 뱃길을 기원하는 풍어제 등 친근하기 보다 두려움을 더 많이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인간으로서 근본적인 질문과 해답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할 때, 해양인문학은 해양, 즉, 바다를 접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하며, 바다라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해양인문학을 소개할 때, 함민복 시인의 ‘섬’ 이라는 시를 읽어드립니다.

섬을둘러싼 바다의 모습을 그리면서 울타리라는 단어에서 공간의 닫힘과 동시에 열린 구조를 이끌어내는 상상력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바다가 울타리 역할을 하는 듯 닫힌 공간의 인상을 주지만, 이내 가장 낮은 울타리를 넘어 모든 방향을 나아갈 수 있는 길이 펼쳐지는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요.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적인 능력은 어떤 대상에서도 시작될 수 있으며, 그 한계는 무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해양인문학은 Marine Humanities 라고 영어로 표현하는데, 존 길리스(John R. Gillis) 는 Blue Hunamities 라고 하면서, “푸른 인문학의 출현은 근대 서구문화와 바다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뒤늦은 인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19세기 이전, 바다에 대한 태도는 미적(美的)이라기보다는 실용적이었고, 바다에 나가는 탐험가들조차도 바다보다는 육지에 주목했고, 바다를 단지 다음 육지에 도달하기 위한 빠른 통로 정도로 보았으며, 바다에 관한 발견이라기보다 바다에 의한 발견이었다가, 바다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바다가 근대성을 꿈꾸는 장소로 변경되었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렇다. 우리는 먼저 스스로 바다가 되어야 한다. 더러워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라고 하면서, 초인(超人:Übermensch) 개념을 설명합니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바다를 탐험의 대상, 진취적인 기상,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 그러면서 모든 것을 포용하며 품고 있는 드넓은 마음 등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해양인식은 우선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풍어제를 통해 어민들의 풍어와 어로의 안전을 비는 제의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공도정책이라 하여 섬을 비우게 하였고, 쇄국정책으로 인해 진취적인 바다 진출보다는 내치에 치중하다보니 바다(해양)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살리지 못한 것같습니다. 이렇게 해양문화가 형성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이르러 해양문화, 해양산업, 해양과학 등의 발전으로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역사를 고대로부터 거슬러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 지중해의 해상무역과 해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도시국가가 지중해 지역을 장악하였습니다. 이후 바다를 지배한 바이킹 세력이 유럽 각 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들은 바다를 통해 베니스를 르네상스 시대에 유럽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대항해 시대에는 스페인의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여, 오늘날 초강대국인 미국을 건국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포르투갈의 탐험대들은 인도항로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러다 해양패권이 영국과 네덜란드로 넘어가면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식민지를 확보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펼쳐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원유와 같은 원자재와 세계인이 사용하는 완제품들을 바닷길로 운송하고 있으며, 항공모함을 위시한 해군력이 세계를 지배하는 군사력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서양의 해양에 대한 인식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담에서부터 <로빈슨크루소>, <모비딕>, <노인과 바다>, <해저2만리> 등과 같이 이어온 해양문학 속에서, 해양과 함께 펼쳐지는 진취적인 기상을 서양인들의 마음에 자연스레 심게 된 것인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해양문학상 작품공모를 한지 25회째를 지나고 있고, 시, 시조, 소설, 희곡, 동시, 동화, 수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해양을 코드로 해석한 우리의 역사를 기술한 『한국해양사』, 해양사 연구와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해양사연구방법』도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에는 ‘해양교육 및 해양문화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습니다. ‘해양에 대한 국민의 인식개선 및 인재양성에 기여하고 해양문화를 창달하여 국가의 해양역량 강화와 사회발전 및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 하려는 정책추진의 법적 근거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의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에서 새로운 해양인문학의 향기가 세계로 퍼져 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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