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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연구지원 외교의 중심’GRC 톺아보기
한국연구재단 국제협력기획실 강동섭 실장

약어풀이 먼저 하고 시작하려 한다. GRC는 세계연구지원기관장회의(Global Research Council)의 줄임말이다. 각국의 대표 연구지원기관의 수장들이 모여 연구지원 현안을 숙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국제협력 플랫폼이다. 미국립과학재단(NSF) 총재였던 Subra Suresh 박사의 제안으로 2012년 설립된 이후 현재까지 총 79개국 92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GRC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연구지원의 영역에서도 지역주의(regionalism)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유럽연구지원기관장회의(EUROHORCs)와 한중일연구지원기관장회의(A-HORCs) 등 지역 단위의 협의체가 전부였다. 말하자면 각 지역의 정치 및 경제공동체에 종속되는 체제였다.

이에 반해 GRC는 지역을 넘어 전세계를 아우르는 연구지원의 초국가적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최초의 시도이자 실험이었다. 아직까지 영국, 독일, 중국 등 몇몇 국가들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국제 정치 및 경제 질서가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라고 볼 수는 없다. 기관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참여하지 않는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때에 따라서는 일종의 글로벌 표준(Statement of principles)을 함께 만들어 이를 이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GRC 기관들의 일반적인 참여 의도이자 태도라 할 수 있다. 참여국에 대한 국제법상의 어떠한 구속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GRC의 존재와 역할이 유명무실해 질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GRC는 연구지원에 관한 범지구적 담론공동체로 기능하면서 그러한 우려를 씻어내고 있다. 즉, GRC는 많은 연구지원기관들이 안고 있는 연구지원의 다양한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논의할 수 있도록 장을 제공하고 서로의 지혜와 경험을 공유 하면서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스스로 상설사무국과 회비 없이 운영되는 자발적 성격의 기구임을 밝히고 있는 GRC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이사회(Governing Board)를 두고 있다. 이사는 미주 3명, 아시아태평양 3명, 유럽 3명, 중동/북아프리카 1명, 남아프리카(사하라 이남) 2명(총 12명)으로 구성된다. 이사 임기는 3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이사회의 주요 역할은 GRC 총회 및 지역회의 개최국을 결정하고, 총회에서 논의할 주제를 결정하는 것이다. GRC는 이사회를 지원하기 위한 조직으로 실무협의회(ESG)를 두고 있다. ESG 위원은 미주 3명, 아시아태평양 2명, 유럽 3명, 중동/북아프리카 1명, 남아프리카 2명(총 11명)으로 구성된다. 위원 임기는 5년이며 연임은 불가하다. 기타 GRC 조직으로는 총회 의제를 개발하고 지역회의를 개최·조정하는 국제운영위원회(International Steering Committe), 총회 주제를 이사회에 추천하는 프로그램위원회(Program Committee), 젠더, 책임 있는 연구평가(Responsible Research Assessment) 등과 같은 특정 주제에 대해 장기적으로 연구하는 주제별 워킹그룹 등이 있다.

GRC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총회(Annual Meeting)는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한 2020년을 제외하고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열렸다. GRC 총회 프로세스는 해당 총회가 열리기 2년 전 ESG가 회원국들로부터 희망 주제를 접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회원기관들이 제안한 주제들을 참고하여 프로그램위원회에서 이사회에 주제를 추천하면 이사회가 주제를 확정한다. 확정된 주제에 대해 해당 총회 개최 1년 전 5개 지역(미주, 아시아태평양, 유럽, 중동/북아프리카, 남아프리카)별로 회의(Regional Meeting)를 열어 논의한다. 이어 국제운영위원회를 열어 지역회의 결과를 검토하고 ESG가 이를 종합하여 총회 의제와 프로그램을 작성한다. 확정된 총회의 일정과 프로그램에 따라 회원국 총회에 참여하게 되고 총회는 기조강연, 특별강연, 의제별 패널 토론 등으로 진행된다. GRC는 의제 및 토론 내용을 종합하여 선언문을 발표하고, 참여국들과 이를 공유하는 것으로 총회를 마무리한다. 올 5월말에 파나마에서 열리는 2022년 GRC 총회를 예로 들면, 2020년에 확정된 두 가지 의제 즉, 신속대응연구(Rapid Result Research)에 대한 연구윤리 적용 방안과 과학기술인력개발(S&T workforce development)에 대해 전년도(2021년) 지역별 회의(재단은 아시아태평양 지역회의에 참가)를 개최하였으며, 총회를 두 달 여 앞둔 현재 개최국 및 ESG 등이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주요 참석자들의 역할 등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 총회 기간 동안 각 의제별로 다양한 사례들이 제시되고, 이를 토대로 한 선언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총회 의제와 관련해 GRC는 논의의 초점을 던진 상태다. 먼저 신속대응연구에 대한 연구윤리 적용 방안과 관련해 코로나19 대응과 같이 신속하게 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연구의 경우 긴급하다는 이유로 과제 평가과정이나 연구자들의 연구수행 과정에 연구윤리와 진실성의 기준을 느슨하게 혹은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가에, 그리고 과학기술인력개발과 관련해서는 한 국가의 과학기술인력을 개발하는데 연구지원기관의 역할은 무엇이고, 그 과정에 걸림돌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재단도 이와 관련된 사례들을 찾아 정리하면서 총회 참석을 준비하고 있다.

재단은 2013년 총회 이후 역대 GRC 총회에 빠짐없이 참여했고, 2013년 아시아태평양 지역회의 및 2018년 총회(러시아 RFBR과 공동 개최)를 개최한 바 있다. 그간 재단 이사장은 주어진 상황과 GRC 요청에 따라 개회사, 사례 발표, 토론, 세션 평가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동시에 주요국 연구지원기관장들과 별도의 회담을 갖는 등 GRC 총회를 연구지원 외교무대로 활용해 왔다.

GRC는 그동안 과제평가, 오픈엑세스, 연구지원의 사회적 영향력, 여성과학자의 지위, 과학외교, 대중의 연구 참여 등 연구지원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어왔다. 모두 참여기관들의 연구지원 정책, 프로세스, 현안 등과 관련돼 있는 것들이다. 결국 의제별 논의 결과에 대해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참여기관의 의지에 달려있다. GRC는 이러한 지속적인 활약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정치적·법적 힘을 가지고 있지 않는 GRC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GRC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예를 들면 GRC가 총회에서 발표하는 각 의제별 선언문이 각국 연구지원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를 감안한다면 GRC 설계자들이 꿈꾼 미래가 펼쳐질 수 있을지 아직은 물음표를 거둘 수 없는 상황이다. 머지않아 국제사회의 집단지성으로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GRC가 최근 거의 모든 회의의 말미에 GRC 발전방안을 논의 주제로 올리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국가나 지역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던 GRC가 이제 글로벌 연구지원 외교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참여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GRC 참여기관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앞으로 재단이 보다 더 적극적인 GRC 참여와 활용을 통해 국제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동시에 우리의 연구지원 역량도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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