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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기술이 이끄는
퀀텀점프의 시대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양자기술단 이순칠 단장

양자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생존기술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주무장관 직속으로 전담부서를 설치한 정부는 현재 투자 제도화를 위한 법령 제정과 동시에 조 단위의 대규모 육성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1천 명의 ‘양자 스페셜리스트’ 확보를 목표로 전문대학원 설립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연구재단 역시 국책연구본부 산하에 양자기술단을 신설하고 관련 연구개발 사업의 전략 수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이순칠 초대 양자기술단장은 한 발 앞서 패권경쟁에 뛰어든 선진국들보다 늦었지만 빠른 추격에 강한 우리나라 고유의 역량을 감안할 때 여전히 주도권 확보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전망합니다.

“늦었지만 아직 열린 결말”

이순칠 양자기술단장은 대한민국 양자기술 연구의 선구자이자 최고 권위자로 손꼽힙니다. 1987년부터 KAIST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최초로 3큐빗 양자컴퓨터 개발에 성공했고, 높은 학문적 난이도로 후진 양성이 쉽지 않은 교육 환경 속에서도 현재 관련 학계와 산업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을 길러냈습니다. 여러 권의 저서와 강연들로 대중적 이해와 관심을 높이며 양자기술 연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도 힘써 왔습니다.

먼저 양자기술단 초대 단장에 부임하신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양자기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시점에 관련 국가 R&D 과제들을 책임지는 조직을 이끌게 되니 중압감이 큽니다. 꽤 오래 전부터 양자기술 선점을 위해 각축전을 벌여온 미국, 중국, EU,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관련 지식과 기술 수준이 많이 뒤처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국가적 차원의 논의들이 활발해지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이런 관심과 열기가 효율적인 추격과 도전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관련 사업 기획과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양자기술에 대한 지원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단장님이 느끼시는 변화의 양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최근 3년 간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급격한 신장세에서 그 변화의 진폭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9년까지 기초연구 수준에 머물던 관련 예산이 2020년 이후 거의 4배가 늘어났습니다. 양자기술이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로 본격 육성되기 시작한 올해는 양자컴퓨팅과 양자통신, 양자센서 등의 연구에 총 984억 원이 투입될 예정입니다. 비단 정부와 과학기술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으로도 양자기술에 대한 관심이 옮겨붙고 있습니다. 대중적 관심의 척도라 할 수 있는 관련 서적과 영상의 폭발적인 증가세가 이를 말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해 9월 부임하신 이후 신설조직을 이끌어 오시느라 무척 바쁜 시간을 보내셨을 듯합니다.

계속해서 새롭게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전공인 컴퓨팅뿐만 아니라 상식으로만 알고 있던 암호통신과 센서 등 양자기술 플랫폼 전반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습니다. 기초연구만 해오던 사람이라 국책 연구개발 사업의 기획과 관리도 생경한 분야였습니다. 여러 회의와 문서를 통해 전임자께서 마련해두신 기틀을 확인하는 한편 동향분석, 수요조사, 과제기획, 전략수립, 예산확보, 과제 선정과 평가로 이어지는 사업 추진 과정의 이해에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양자기술단 사업담당자와 담당부처 사무관께서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춰 오신 분들이고 관련 지식과 절차에도 정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양자기술의 조용한 파장

자연계의 이해와 응용은 인류의 문명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끄는 힘의 원천입니다. 그간 잘 모르고 있었을 뿐 원자라는 미시세계를 파고드는 양자기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 왔습니다. 현대인의 하루 일과 대부분과 함께하는 스마트폰, 텔레비전, 노트북, 조명을 비롯해, MRI, 유전자검사, 레이저, 원격통신, 나노소재까지 21세기 거의 모든 첨단 문명의 바탕에 양자기술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양자기술단이 주관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들을 소개해주세요.

우리 기술단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양자기술의 미래인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양자센서 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디지털 컴퓨터는 정보의 기본단위인 비트가 0과 1 중 어느 하나를 취합니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양자 현상의 하나인 중첩의 성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0과 1의 양쪽값을 동시에 취하는 큐비트가 정보의 기본단위입니다. 따라서 병렬처리로 인한 연산 능력이 현재의 슈퍼컴퓨터를 압도하게 되면서 나노기술과의 선순환을 통해 소재, 신약, 에너지, 우주, AI 등의 분야에서 그간 인류가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큰 활약을 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중첩이란 성질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양자얽힘이란 양자현상까지 이용하는 수준으로 연구가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양자컴퓨터가 인류 문명의 새로운 퀀텀점프를 이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양자컴퓨터 개발에 대한 기대감 내지 우려가 가장 큰 분야 중 하나는 안보 분야입니다. 고전적인 암호 기술은 소인수분해가 기반입니다.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로는 자릿수에 따라 계산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소인수분해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소인수분해를 쉽게 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는데 이는 곧 현존하는 암호체계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양자컴퓨터를 통한 기존 암호체계의 무력화를 막을 방법도 양자기술에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양자암호통신입니다. 양자기술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불확정성을 이용하면 제3자가 훔쳐보는 순간 양자 상태가 달라져 정보의 내용도 변해버리기 때문에 도청과 감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집니다.

원자의 진동과 양자물성 등을 이용하는 양자센서는 과학기술의 기본인 측정 분야의 혁신을 견인하게 될 것입니다. 수십 억 년이 흘러도 오차율이 1초 이내인 양자 시계, 전투기와 잠수함 등의 스텔스 목표물을 탐지하는 양자 레이더, 물체 뒤의 물체를 감지하는 기술, 자기장과 중력의 미세한 측정까지 기존 센서와 비교 불가능한 수준의 민감도와 정확성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성큼 다가온 대도약의 시대

우리나라의 관련 연구개발 역량은 어떤 수준인가요?

양자컴퓨터 분야는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온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의 반짝 관심 이후 약 10여 년 간 침체기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당연히 해외에서는 관련 기술 협력을 꺼릴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정도의 간극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아쉬운 상황인 만큼 재단에서도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앞서가는 국제적인 연구실과의 공동연구를 독려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양자통신과 센서 분야는 양자컴퓨터보다 한결 나은 상황입니다. 기술성숙도가 세계 수준에서 그리 멀지 않은 80~90%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재단이 추진 중인 양자기술 육성과 인재양성의 방향성을 말씀해 주세요.

기본적인 전략은 공격적인 인프라와 인재확보입니다. 50큐비트 초전도 양자컴퓨터 구축과 같은 대규모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핵심기술 개발과 석·박사 전문가 양성을 연계하려는 것도 그런 선택과 집중 전략의 일환입니다. 인재를 키우는 데 있어서는 학부에서 시작하기에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한 만큼 인접 학문의 연구자 중 관심 있는 이들을 양자기술 분야로 유도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양자기술 특유의 높은 학문적 진입장벽을 고려해 직접적인 진입 대신 융합을 활성화하는 방향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웹진 독자와 연구 현장의 연구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퀀텀점프(Quantum jump)라는 양자기술 용어가 있습니다. 원자에 에너지를 가하면 낮은 궤도에서 핵 주위를 돌던 전자가 높은 궤도로 도약하면서 마치 계단을 오르듯 에너지 준위가 불연속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입니다. 순간이동처럼 보이는 이런 갑작스런 점프의 개념을 경제학이나 증권가에서는 비약적인 혁신과 기업실적의 호전을 설명하는 단어로도 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인류문명의 두 번째 퀀텀점프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시대의 연장선이 아니라 그 이상의 상상하지 못한 혁명적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이를 아는 사람에게는 큰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인 만큼 어렵더라도 양자기술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실 필요가 있습니다.

동료 연구자들에게는 몸을 돌봐가며 연구하시라는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양자기술 분야가 아직 협소한 탓에 대부분 지인이자 후배들인 까닭에 평소 얼마나 고단하게 연구를 이어가시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와 연구재단 구성원들은 갑자기 늘어난 재원이 연구 현장에 공연한 혼란을 야기하지 않고 양자기술 선순환 생태계 구축이란 원래의 목표에 맞게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여러분께서 생각하시는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나눠주신다면 더욱 공정하고 효율적인 연구비 배분과 관리에 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About the Interviewee
이순칠 양자기술단장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고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물리학회 응집물질물리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89년 미국의학과학 학회가 수여하는 실비아 소킨 그린필드상을 수상했으며 물리학도와 일반인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물리학>, <양자컴퓨터-21세기 과학혁명>, <퀀텀의 세계>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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