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의 멋진 신세계
: IT 포비아의 극복

한양대학교 사학과 강진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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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의 멋진 신세계 : IT 포비아의 극복 한양대학교 사학과 강진아 교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1932년작 소설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소설이지만, 안타깝게도 딸아이는 너무 싫어했다. 칙칙하다나. 나는 그 책에서 나오는 식량 부족과 그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제발’이라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가상현실과 성(性)의 해방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자연 상태에서의 짝짓기와 가족, 출산을 지고의 선(善)으로 보는 것은 1932년의 기준이 아닌가.

인문학자들은 쉽게 “자연적인 것”에 왠지 모를 가산점을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근현대사를 전공하는 필자는 전근대에 그다지 향수가 없다.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인문학자들은 “비판 정신”을 지식인의 필수 장착 아이템으로 생각하니까,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무조건 “Right Now”에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것 같다. 사실, 비판정신이야말로 더 나은 뭔가를 상상하는 힘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여전한 근대의 시간을 뾰족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것은 꼭 필요하겠다. 하지만 “팩트 체크”를 세뇌가 될 정도로 교육받은 실증사학의 후예로서는 전근대의 인간이 근대의 인간보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풍요롭다고 보이지 않는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21세기 자본주의 체제 하의 착취 받는 노동자로 살지, 17세기 중국의 소작농을 살고 싶지 않다.

이 칼럼이 “인문학 산책”이니만큼 비슷한 이야기를 인문학자, 원체험으로서 역사학자 입장에서 연구라는 분야에서 풀어보겠다. 8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했을 때 마침내 워드 프로세스를 누르고 286컴퓨터라는 PC(나 혼자 가지는 컴퓨터!)가 손닿을 수 있는 꿈이 되었다. DOS 체제 하에서 명령어를 타이핑하는 대신에 윈도우가 등장한 것도 그 즈음이다. 286은 386으로, 다시 486에서 팬티엄으로 이름을 바꾸더니 그 시리즈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석사 때에 1930년대 중국 제당업 연구로 논문 준비를 하다가,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전전(戰前) 일본 외무성의 해외영사관 보고서(일본외무성문서)가 있다는 첩보를 듣고 찾아갔다. 너덜너덜한 목록집의 제목만 보고 마이크로필름을 하나하나 뒤졌다. 오랜 시간 필름을 보면 이상하게 속이 뒤집혀서, 힘들게 중국 광저우 일본영사관 보고를 열독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2000년대에는 런던 큐가든(Kew Garden) 소재의 영국공문서관(National Archives)에 자주 다녔다. 제국 경영의 스케일이 달라선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아시아 상황은 일본 외무성 보고는 뺨칠 정도로 영국 영사관 보고가 상세했다. 2000년 밀레니엄 넘어갈 때까지도 촬영 금지, 노트북 반입 금지, 손으로 베껴 쓰기였던 공문서관이 촬영도 노트북 반입도 가능하게 되었다. 작업 속도가 달라졌다. 2010년대부터 런던대학 소아스(SOAS) 특별장서실에 들락날락거렸다. 근대 아시아 개항장 네트워크를 타고 승승장구했던 영국 해외자본을 연구하다가, 그 중 한 회사인 Swire Paper의 문서들을 보려고 그곳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게 된 것이다. 특별장서실은 촬영에 제한이 있었으나 노트북 반입이 가능했다. 촬영은 기실 대조를 위해 소장하는 용도였고, 죽 열람하면서 중요한 사료와 기록은 원문 그대로 노트북에 타이핑했다. 연례로 방문하던 중에, 텍스트 스캐너(Text Scanner)라는 앱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앱으로 사료를 촬영해서 텍스트로 만든다. 타이핑 시간이 현격히 줄었다. 비싼 연구비를 투자하면서도 방학 중에 해외에서 자료 수집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2주이다. 투자대비 효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 매년 열람과 정리한 파일 박스 처리 숫자가 쑥쑥 오른다. 인문학자는 IT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중국근현대사와 경제사를 전공으로 하지만 근대 경제는 지구적으로 움직인다. 중국사학자라도 봐야하는 사료와 논문은 다종 언어의 세계이다. 중국어 외에도 일본어, 영어는 기본으로 연구자 입장에서는 다다익선이다. 게다가 한국학 연구가 아니다보니 한국어로 발표한 저작은 독자층이 심하게 제한된다. 중국어, 일본어로 논문을 발표하는 것은 그래도 한자권이라 쉽다. 유학도 안 한 처지로 영어로 글쓰기는 진심 버겁다. 쑥스럽지만 결론만 말하면, 논문도 여러 편, 공저도 한 편, 나만의 책도 한 권 영어로 낼 수 있었는데, 만약 감사 인사를 전할 무대가 마련된다면, 양심상 그 영광은 “구글 번역기, 파파고 번역기, 바이두 번역기, 그리고 Grammary”에 돌리겠다고 고해성사해야 한다. 나태한 인문학자는 IT를 사랑한다!

요즘 한참 ChatGPT 화제가 뜨겁다. 질문자와 대화도 하고 답이 없는 추상적 질문에도 나름의 생각을 개진하는 인공지능이다. 자연을 좋아하는 인문학자들은 AI가 뺏을 일자리, 위기를 더 많이 말하는 것 같다. 여전히 나태한 인문학자인 필자는 하지만 위키피디아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떠올렸다.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인, 마치 정답인 양 정답이 아닌 무작위한 집단 지성의 생산물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다. 하지만 정보의 부정확함이나 기술의 편향성 등 여전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쉽게 접근 가능한 정보 풀의 비약적 확대는 역사학자로서 필자에게는 축복이었다. ChatGPT, 요즘 거의 매일 로그인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하게 답변을 얻어내는 방법을 시험하고 있다. 나태한 인문학자는 아마 ChatGPT도 사랑할 것이다. 인문학의 중심은 “인간”이니, 나를 위해 사귄 IT는 인문학을 해치지 않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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