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다시 보기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이승주 교수

이전호 목록보기 다음호

세계화 다시 보기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이승주 교수

세계화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유무역, 지구적 가치사슬의 형성, 금융 규제의 완화, 노동자의 이동성 증대 등이 동시다발적 진행은 “세계는 평평하다”는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의 주장을 현실로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지구적 차원의 경제통합은 지속적으로 범위를 확장하며, 국가 간 장벽을 거의 해체할 것 같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진행되었던 세계화가 일거에 붕괴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는 의례적인 기우로 치부되었다. 여기에 20세기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짜여진 국가 간 네트워크와 불안 요소를 파악할 수 있는 감시와 정찰 능력을 가진 국제 제도가 세계화의 붕괴를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더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였을 뿐 변화의 에너지는 수면 아래에서 응축되고 있었다. 변화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와 민주주의 사이의 긴장이었다. 전후 세계질서는 세계화와 국내정책의 자율성 사이의 균형을 기반으로 한 ‘착근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라는 이념적 토대 위에 성립하였다. 그러나 ‘밑바닥으로 경주’가 계속되면서 축적된 불평등과 분열의 에너지는 둘 사이의 균형을 단번에 허물었다. 초세계화로 인해 진행된 심층 통합은 국내적으로 소득 불평등을 확대하였고, 이는 사회적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졌다. 연쇄 반응의 끝은 민주주의의 위기였다. 세계화로 촉발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체제로서 민주주의의 역량이 의심받기 시작하였다. 책임 소재를 간단하게 외부로 돌리는 대중주의(populism)는 매력적이고도 손쉬운 대안이었다. 신생 민주주의에서나 발생하는 문제로 치부되었던 민주주의의 퇴행 가능성이 민주주의의 본산에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트럼프주의(Trumpism)와 브렉시트(Brexit)는 세계화에 대한 도전의 상징으로 부상하였다.

21세기 ‘세계화의 역설’(paradox of globalization)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질서의 변화 압력으로 다가왔다. 세계화에 대한 과거의 도전은 개도국과 수정주의 국가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들은 기존 세계질서가 개도국에게 불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으니, 개도국에 좀 더 많은 기회와 지원을 제공하기를 촉구하였다.

이러한 요구가 커다란 도전 요인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은 포섭과 배제를 통해 기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데 언제나 성공하였다. 21세기 세계화에 대한 도전은 기존 세계질서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미국과 서구 선진국들이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차별적이고 더욱 위협적이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의 허점을 오용 또는 악용하는 국가들 때문에, 기존의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내부로부터 도전에 직면한 세계질서는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미중 전략 경쟁과 코로나19의 확산은 세계화를 토대를 흔들어 세계질서를 혼돈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초불확실성(hyper-uncertainty)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미래의 패권을 놓고 겨루는 미중 경쟁은 자국 우선주의의 확산을 초래하였고, 코로나19는 효율성 중심의 패러다임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기후변화, 자연재해, 팬데믹과 같은 초국적 도전의 연이은 발생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지정학적 영향력의 증대는 불확실성의 블랙홀이 되었다. 이는 전통적인 강대국들이 주축이 되어 국제협력을 주도하던 과거의 모델이 효능을 상실하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였다.
이제 세계화의 새로운 방향을 함께 모색할 때이다. 기존의 초세계화가 아니라면 폐쇄와 보호주의에 호소하는 탈세계화(de-globalization) 역시 대안이 되기 어렵다. 2023년 1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이 개최한 다보스 포럼(Davos Forum)이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Cooperation in a Fragmented World)을 주제로 선정한 것은 도전의 실체를 직시한 결과였다. 다보스 포럼은 위기의 원인을 ‘상호의존된 지구적 도전’(interdependent global challenges)으로 진단하였다. 세계가 직면한 도전이 고도의 상호의존과 관련이 있으며,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협력을 촉진하는 리더십의 회복’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과거와 같이 일부 강대국이 주도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국가 및 비국가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집단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외적 차원의 경제통합과 국내적 차원의 민주주의의 사이의 건강한 균형에 기반한 새로운 질서를 탐색하여야 한다. 어쩌면 재세계화(re-globalization)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심층 통합이 초래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문제를 축소하고, 국가 간 갈등을 완화하여 세계화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때, 비로소 재세계화가 가능할 것이다.

한국연구재단 정보
  • 대전청사 (34113) 대전광역시 유성구 가정로 201
  • TEL 042-869-6114
  • FAX 042-869-6777
  • 서울청사 (06792)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25
  • TEL 02-3460-5500
  • 간행물 심의번호20141223-2-17

한국연구재단 웹진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23 NRF all rights reserved.

홍보실
  • TEL 042-869-6117
  • 팩스 042-861-8831

웹진에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나 의견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