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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의 스핀에서 발견한
에너지 효율의 비밀
서강대학교 정명화 교수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양자역학은 대부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를 다룹니다. 극저온 환경에서만 모습을 드러내기에 일상 속에서 확인하기란 쉽지 않죠. 양자역학 시대가 열린 지 한 세기가 흐른 현재, 서강대학교 정명화 교수는 전자의 스핀 현상에서 양자역학적인 힘을 찾아내 상온에서도 강력한 전류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고, 실험을 통해 그 결과를 입증했는데요. 양자기술이 실제 응용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한 정 교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 선정하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상금 1천만 원을 수여하는 상

Chapter 01 인물탐구

정명화1972년생 소속 서강대학교 주요학력
  • 1997.10. ~ 2000.09.
    일본 히로시마(Hiroshima)대학교 물성물리학과 박사
  • 1995.03. ~ 1997.02.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석사
  • 1991.03. ~ 1995.02.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Chapter 02 운명처럼 만난 물리학

정명화 교수가 물리학을 처음 접한 건 대학교 전공 수업시간. 학창시절에는 명문대학교 진학만을 목표로 학업에 열중했던 터라 물리학의 낯선 개념과 공식들이 버겁게 느껴졌다죠. 하지만 배움을 이어갈수록 물리학을 대하는 그녀의 마음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세상의 원리를 단순하게 풀어내고,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를 탐험하는 물리학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죠. 그렇게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호기심을 추적하던 정 교수는 자연스럽게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대학 3학년, 일본 UVSOR 가속기에서 실험을 진행하는 정명화 교수

“사실 처음부터 과학자를 꿈꿨던 건 아니에요. 원래는 다른 장래희망이 있었고, 물리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도 매우 우연이었죠. 처음 맞은 전공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성적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점점 물리가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 무렵부터 누군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물리학자라고 답했던 것 같아요.” 현재 정 교수는 물질이 지닌 물리적 성질을 탐구하는 ‘물성물리학’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물질 속 아주 작은 입자인 전자의 ‘전하’와 ‘스핀’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데요. 쉽게 측정할 수 있는 전하와 달리 스핀은 전자가 회전하며 생기는 일종의 작은 자석과 같아 직접 관측이 어렵기에, 여러 실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스핀 상태를 유추하며 숨겨진 과학현상을 탐구해가고 있습니다.

스퍼터 장비로 ‘철(Fe)-로듐(Rh)’ 자성 박막을 제작하는 모습

Chapter 03 위대한 발견,
‘상온 양자역학 스핀 펌핑’

전자기기의 대부분은 전류, 즉 전자의 이동으로 작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자는 물질 속 원자들과 충돌하며 열을 발생시키고, 이는 곧 전자기기의 에너지 효율 감소로 이어지죠.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자의 스핀 에너지를 전달하는 ‘스핀 전류’와 스핀 전류를 생성하는 ‘스핀 펌핑’ 연구가 활발한데요. 정명화 교수는 고전역학적 스핀 펌핑이 지닌 한계를 넘어, 스핀의 양자역학적 특성을 정밀하게 활용한 새로운 스핀 생성 방법을 제시해 세계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존의 스핀 펌핑은 자성 물질 내부의 스핀이 팽이처럼 도는 세차운동*에 의해 발생합니다. 스핀의 크기는 변하지 않고 방향만 바뀌면서 스핀 전류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죠. 반면 이번에 저희가 고안한 방법은 스핀의 방향을 고정한 상태에서 크기 자체가 변할 때 스핀 전류가 발생합니다. 마치 자석의 세기가 갑자기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는 스핀이 특정 방향만을 가지려는 양자역학적 특성 때문인데요. 이 과정에서 스핀의 각운동량 법칙에 따라 상대적으로 큰 스핀 전류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양자역학적 스핀 펌핑’이라고 부릅니다.”

* 세차운동 : 회전하는 팽이처럼 물체의 회전축이 원형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현상

스핀 펌핑 개략도

  • 고전역학적 방식 자성체 내부 스핀의 세차 운동,
    즉 스핀의 크기는 고정되어 있고 방향이 바뀜에 의해
    비자성체로 스핀 전류가 생성되는 방식
  • 양자역학적 방식 자성체 내부 스핀의 크기 변화,
    즉 스핀의 방향은 고정되어 있고 크기가 바뀜에 의해
    비자성체로 스핀 전류가 생성되는 방식

정 교수는 ‘양자역학적 스핀 펌핑’의 가능성을 실험으로 입증하기 위해 ‘철(Fe)-로듐(Rh)’이라는 특수 자성 박막을 제작했습니다. 이 물질은 온도 변화에 따라 자기적 성질이 급격히 바뀌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요. 연구팀은 철(Fe)-로듐(Rh) 물질이 저온 상태에서 고온 상태로 변하는 짧은 순간, 생성된 스핀 전류가 인접한 비자성 물질인 백금(Pt)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온도가 급격히 변하는 순간 상온에서 생성되는 스핀 전류

“놀라웠던 점은 양자역학적 방법을 통해 기존보다 10배 이상 큰 스핀 전류를 생성했다는 사실이에요. 게다가 양자역학적 현상은 일반적으로 극저온 환경에서만 관측되는데, 저희는 이걸 상온에서 구현해냈죠. 상온에서도 효율이 좋은 스핀 전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세계 최초로 입증한 셈입니다.” 이번 연구성과는 2025년 1월 세계적 권위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게재되며 그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는데요. 스핀트로닉스 기술의 진보는 물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저전력 소자 개발의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차세대 양자소자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Chapter 04 연구실 안팎에서 빛나는 존재감

정명화 교수는 늘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전진합니다. 최신 논문을 찾아 읽고, 다른 분야 전문가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시야와 견문을 넓혀가죠. 학문적 호기심과 친화력을 두루 갖춘 덕분에 ‘물리학계의 인싸’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이런 그의 성격은 자연스럽게 국내외 학술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는데요. 한국물리학회와 한국자기학회에서 학술이사로 활약하고, 국제 학술 단체에서도 전 세계 연구자들과 어깨를 맞대며 지식을 나누고 있습니다.

국제학회에서 포스터를 발표하는 모습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는 후학 양성에도 힘쓰며 연구실 안팎에서 연구의 기쁨과 도전의 의미를 나누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 교수의 모습은 제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고 있는데요. 그녀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호기심과 끈기를 강조합니다. 과학은 곧 궁금한 것을 파고드는 과정이자,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행운이 넝쿨째 굴러오는 법은 없어요. 세상에는 수많은 기회가 존재하지만,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말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속닥속닥! 못 다한 이야기 연구자 TMI

  • 2025년 8월의 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과학기술인상을 받게 돼 정말 영광이고, 동시에 큰 책임감도 느끼고 있어요. 이 상은 혼자만의 성과라기보다는 함께 연구해 온 동료들, 열심히 따라와 준 학생들 그리고 늘 곁에서 응원해 준 가족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세상의 궁금증을 풀어가고 과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계속 힘쓰겠습니다.
  • 여름방학, 어떻게 시간 보내셨나요? 근황을 전해주세요. 여름방학은 밀린 연구를 정리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학기 중에는 워낙 바쁘다 보니 논문 쓰는 걸 자꾸 미루게 되는데, 방학 동안 차근차근 정리하는 데 시간을 썼던 것 같아요. 또 국내외 학회에 참석해 다른 연구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다음 학기부터는 연구년에 들어가요. 그간 연구년에는 해외에 머물며 바쁘게 연구활동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국내에 머물면서 색다른 연구를 시도해보려 합니다. 요즘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이 빠르잖아요. 제 연구 분야에 AI를 어떻게 접목해볼 수 있을지 공부하고, 실제로 적용해보려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 연구자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보람을 느꼈던 기억을 꼽아 본다면? 학생들이 오랜 노력 끝에 예상치 못한 실험 결과를 얻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때의 짜릿함은 정말 잊을 수가 없죠. 그리고 제 학생들이 학문적으로 크게 도약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 단계 성장하면서 본인 연구에 자신감을 얻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뿌듯합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한 제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을 볼 때도 큰 행복을 느껴요. 이들의 성장에 내가 한 일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구나 싶은 순간들이죠.
  • 과학자로서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연구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기초연구야말로 진정한 혁신을 위한 밑거름이라 믿고 있습니다. 제가 연구하는 자성 현상이나 스핀의 양자적 특성에 대한 이해는 당장 제품을 만드는 데 직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근원적인 지식들이 축적되어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기술의 씨앗이 되고, 결국에는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만한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계속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물론 제 연구가 그저 학문적인 만족에만 머무는 것은 원치 않아요. 새로운 지식과 원리들이 언젠가는 저전력 반도체, 혁신적인 메모리, 혹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기술로 발전해서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 미래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미래 과학자를 꿈꾸는 여러분, 언제나 호기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야든 ‘왜 그럴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에 있는 지식 외에도 주변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노력을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한 번에 성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요. 실패하더라고 계속 도전하는 마음과 행동이 필요하죠. 동료들과 서로 도우며 배우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함께 고민한다면 좋은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