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

메인으로

구독신청 독자의견

뉴-페이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과학자 서울대학교 백민경 교수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한 소설책. 빳빳한 양장 표지를 지나 첫 페이지를 넘기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우리를 반깁니다. 세상을 바꿔갈 연구성과 이야기도 마찬가지인데요. NRF웹진 뉴-페이스에서는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로 떠오르는 과학자, 이제 막 새 이야기를 그려갈 신진 연구자를 만나 연구성과와 일상 이모저모를 들여다봅니다.

‘천재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찍이 화학 전공에 흥미를 느꼈던 백민경 교수는 학창시절의 본인을 ‘원리가 이해될 때까지 물음표를 던지고 교재와 자료를 찾아가며 파고드는 학생’이었다고 말하는데요. 그런 집요함 덕분이었을까요. 오늘날 그는 AI 기술로 베일에 싸여있던 단백질의 숨은 비밀을 풀어내는데 성공합니다. 꾸준한 관심과 애정, 노력이 한데 모여 결실을 맺은 셈. NRF웹진 8월호 뉴-페이스에서는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자, 백민경 교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만나봅니다.

#Prologue 오! 나의 연구이야기

  •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계산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는 백민경입니다. 학부와 석·박사 통합과정은 서울대 화학부에서 마쳤고, 이후 미국 워싱턴대학교 베이커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단백질 구조 예측과 설계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지금은 인공지능(AI)과 물리·화학적 통찰을 결합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와 상호작용을 예측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치료 목적의 단백질을 설계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와 연구실이 지향하는 목표는 간단합니다. “복잡한 생명현상을 계산으로 이해하고, 필요한 분자는 설계로 만든다.” 출발이 화학 전공이다 보니, 생명현상을 물리화학적으로 이해한 뒤 이를 계산 모델의 가정과 제약으로 녹여내는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모델의 성능만이 아니라 왜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려는 태도가 장기적으로 더 큰 예측력을 준다고 믿습니다.
  • 최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아스파이어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한국인 과학자로는 2015년 국종성 서울대학교 교수님 이후 약 10년 만의 쾌거인데요. 소감 한 말씀.
    감사한 상입니다. 개인의 수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동안 함께 연구해온 수많은 동료 연구자들과 학생, 그리고 제게 많은 영감을 준 선행 연구자분들이 함께 만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AI와 생명과학의 융합이 신약개발과 바이오 산업의 실제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무대에서 공유할 기회였고, 앞으로도 열린 협업과 과감한 시도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 지난해에는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의 핵심논문 1저자로서,
    과학계의 큰 주목을 받으셨는데요.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지 짧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단백질의 구조와 상호작용을 예측하고, 나아가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단백질은 생명 현상의 핵심을 이루는 분자로, 질병의 원인과 치료제 개발 모두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희 연구팀은 AI가 단백질의 3차원 구조와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예측하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백신이나 치료용 단백질과 같은 새로운 분자를 설계해 감염병, 암, 희귀질환 등 다양한 보건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 AI 기술을 접목해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인 ‘로제타폴드(RoseTTAFold)’ 연구 개발에 참여하셨습니다. 선례가 많지 않아 연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는 원래 화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처음 AI를 연구에 접목하려고 했을 때 막막함이 컸습니다. 당시 AI는 챗봇, 이미지 분류기처럼 전혀 다른 문제 영역에서 주로 쓰였고 그 방법을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에 어떻게 연결할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AI만 공부하기보다, 두 분야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차분히 비교하며 유사점과 차이점을 하나씩 짚었습니다. 어떤 신경망 구조가 단백질의 서열(1D)–레지듀 사이의 상호작용(2D)–좌표(3D) 정보를 함께 다루기에 적합한지, 진화정보(MSA)나 물리화학적 제약을 모델이 어떻게 다루도록 할지, 작은 프로토타입 모델로 다양한 시도를 하며 검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명확했습니다. 융합연구는 두 분야를 나란히 놓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문법을 이해해 실제로 연결하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낯선 개념을 얕게 차용하기보다, 그 개념이 나온 배경과 한계를 깊이 이해하면 창의적인 수정이 가능해지고, 결국 새로운 연구 방향이 열립니다. 로제타폴드의 개발 과정은 그런 배움을 체계화한 시간이었습니다.
  • 교수님께서는 4단계 BK21 사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등 한국연구재단을 통한 여러 정부 지원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원이 실제 연구 성과 창출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대학원생 시절, 4단계 BK21 사업의 장학금 지원 덕분에 생활과 연구를 병행하는 부담이 줄어 장기간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지원을 바탕으로 해외 학회에 참가해 세계적인 연구 동향을 직접 접하고, 다양한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교수가 된 이후에는 신진연구자지원사업(우수신진)이 연구실 초기 세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개인기초연구 사업이어서, 제 관심과 전문성에 맞는 연구를 자유롭게 제안하고 추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덕분에 실험 인프라를 구축하고, 첫 연구 인력을 확보하며, 새로운 연구 주제를 빠르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부 지원은 신진 연구자들이 자율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도전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줍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지원이 더 확대되어, 더 많은 연구자들이 초기 연구 단계에서 안정적인 환경 속에 역량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연구자로서, 다음 행보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단백질의 구조와 상호작용을 더욱 정밀하게 예측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함으로써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보건 문제(신약 개발, 백신 설계, 희귀질환 치료 등)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나아가 단백질 수준의 이해를 분자, 세포, 조직, 그리고 개체 수준까지 확장해,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버추얼 시스템(Virtual System)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러한 통합적 이해를 바탕으로, 질병의 원인 규명부터 맞춤형 치료 전략 제시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Journey 연구자로 서기까지

  • 교수님의 연구 이야기를 듣다보니 사뭇 학창시절이 궁금해집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단순히 외우기보다는 개념과 원리를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학생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해될 때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묻거나, 교재와 자료를 찾아가며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파고들었죠. 학부 시절에는 교양 과목보다 전공 과목에 더 흥미를 느꼈고, 공부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에도 열정을 쏟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오케스트라 동아리인 SNUPO에서 10회 연속 무대에 섰고, 두 번이나 수석을 맡기도 했습니다. 음악 활동 자체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단과대 친구들을 만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진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화학과라는 전공 안에서만 지냈다면 접하기 어려웠을 공대, 인문대, 음대 등 여러 분야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시야가 확장되었고, 이후 인공지능처럼 새로운 분야를 배울 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전공의 친구들이 있어 편하게 질문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거든요. 대학원 시절에는 한마디로 연구실에 성실하게 출근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실험실 생활에 몰입하면서도, 항상 ‘왜’ 라는 질문을 놓지 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 대학원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구활동을 이어가셨는데요.
    당시 해당 대학과 연구실을 선택하신 계기나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 연구실이 우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단순히 계산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라, 실험 연구까지 병행하는 랩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덕분에 계산을 통해 도출한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직접 검증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죠.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는 100명이 넘는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모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화학, 생물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여러 분야의 지식과 방법을 융합해 새로운 연구를 시도해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치기 마련입니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휴식과 충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고 또 쉼을 보내시는지요. 연구를 하다 보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잠시 내려놓고 산책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머리를 식히곤 합니다. 짧게라도 일상 속에서 다른 활동을 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죠. 또 저는 꾸준히 오케스트라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은 연구와 전혀 다른 몰입의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연구 외의 활동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연구 성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Epilogue 실험실을 넘어 교단으로

  • 지난 2022년, 모교에서 교육자로 첫 발을 내디디셨습니다.
    전공으로 지도하고 계신 ‘계산생물학’에 대해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계산생물학은 말 그대로 컴퓨터를 활용한 계산과 분석을 통해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분야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단백질과 같은 생체분자의 3차원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지를 컴퓨터로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위를 넓혀 보면, 암 환자의 유전체를 분석해 공통된 변이를 찾거나, 건강한 사람의 유전체와 비교해 차이를 밝히는 것 역시 계산생물학에 포함됩니다. 즉, 컴퓨터를 이용해 생명 현상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는 모든 연구가 계산생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많은 학생들이 연구주제 정하는 일을 어려워하곤 하는데요.
    교수님께서는 평소 어떻게, 어디서 인사이트를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특별히 거창한 비법이 있다기보다, 두 가지를 기준으로 연구 주제를 정하는 편입니다. 첫째는 ‘왜?’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주제인지입니다. 단순히 결과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원리와 이유를 깊이 파고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주제여야 합니다. 둘째는 제가 재밌다고 느끼는 주제인지입니다. 연구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라,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는 주제여야 끝까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 기준을 만족하는 주제라면, 그게 어떤 분야이든 도전해보는 편입니다.
  •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동료·후배 연구자들이나,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계산생물학과 AI 기반 생명과학은 지금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께는, 폭넓게 배우고 다양한 분야와 연결되는 경험을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생물학, 화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 여러 전공이 만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이 탄생하는 만큼, 다른 분야의 언어와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큰 힘이 됩니다. 또 연구를 하다 보면 어려움과 실패가 당연히 따라오는데, 그 과정에서 호기심과 재미를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꾸준히 몰입하다 보면, 언젠가 그 경험들이 연결되어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거라 믿습니다.
About the Interviewee

백민경 교수 (1990년생)

  • 소속

    •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조교수
    • 서울대학교 계산구조 및 시스템생물학 연구실
  • 학력 및 경력

    • 2019.05. ~ 2022.07. 미국 워싱턴대학교 박사후연구원
    • 2018.09. ~ 2019.03. 서울대학교 화학분자공학사업단 연수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