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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함과 말랑함 사이,
두 얼굴의 신개념 주사바늘 탄생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정재웅 교수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일상 속 도구와 현상을 비틀어 생각하며,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 있어 인류의 삶은 한층 나아지고 있죠. 정재웅 교수의 발상 역시 그 연장선에서 탄생했는데요. 그는 ‘주사바늘은 딱딱하다’는 문장에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남기며,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신개념 주사바늘을 개발 했습니다. 따뜻한 상상력이 불러온 혁신적인 정 교수의 연구 이야기를 함께 만나봅니다.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 선정하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상금 1천만 원을 수여하는 상

Chapter 01 인물탐구

정재웅1978년생 소속 한국과학기술원 주요학력
  •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2012)
  •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전자공학 석사 (2008)
  • 미국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 캠퍼스 전자공학 학사 (2005)

Chapter 02 꿈은 이루어진다

학창 시절 내내 장래 희망을 적는 빈칸에 변함없이 ‘과학자’라고 적었던 소년. 그는 책을 친구 삼아 더 크고 넓은 세상을 상상하며 마음속 꿈을 키웠습니다. 수많은 과학 분야 중 전자공학의 매력에 빠진 그는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꿈을 구체화 하기 시작했는데요. 뜨거운 연구 열정을 품은 정재웅 교수는 미국 소재의 대학에서 세 개의 학위를 차례로 완성하며, 연구자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박사 과정 지도교수님(우측에서 첫 번째)과 함께 식사하는 정재웅 교수(좌측에서 두 번째)

하지만 전자공학을 전공하면서도 그의 머릿속 한편에는 늘 같은 고민이 존재했습니다. 자신의 연구가 실질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었죠. 그러던 중 전자장치와 생물학적 시스템의 결합을 통해 더 나은 의료 솔루션을 찾아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오랜 시간 품어왔던 갈증을 해소하게 되는데요. 분명한 목표를 찾은 정재웅 교수는 질병 진단과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가변강성* 기기와 전자소자 연구에 몰두하기에 이르죠.

* 가변강성 : 상황·조건에 따라 강성의 크기(딱딱한 정도)를 조절해 변형할 수 있는 특성

“기존 의료기기들은 딱딱해 활용도가 제한적이지만, 가변강성 기기는 상황과 목적에 맞게 형태와 물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꼈어요.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면 새로운 의공학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Chapter 03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일반적으로 주사바늘을 상상하면 ‘딱딱함’, ‘날카로움’이라는 키워드가 따라오기 마련. 하지만 정 교수는 이러한 통념을 뒤집었습니다. 기존 정맥주사는 바늘이 딱딱한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어 환자의 혈관벽을 손상시키거나 정맥염 등 합병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주사 후 바늘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의료 종사자가 찔리는 상황도 빈번했죠. “어느 날 병원에서 정맥주사를 맞는 환자를 보고 문득 ‘주사바늘이 인체 조직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면 환자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연구실에서 가변강성 기술을 연구하고 있던 터라 이를 정맥 주사바늘 구현에 활용해 보았습니다.” 정재웅 교수 연구팀은 딱딱한 주사바늘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신개념 정맥 주사바늘을 개발해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주목을 이끌었습니다. 일명 ‘가변강성 주사바늘’로, 상온에서 딱딱한 상태로 있다가 체내에 삽입하면 생체 조직처럼 부드러워지는 혁신적인 기술인데요. 액체금속의 한 종류인 ‘갈륨’이 체온에 반응해 고체에서 액체로 상변화하는 특성을 활용했습니다. 심지어 갈륨의 과냉각 특성으로 바늘이 다시 딱딱해지지 않아 재사용 문제도 차단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죠.

체온에 의해 부드러워지는 정맥 주사바늘

환자와 의료진 모두를 위한 정 교수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는데요. 정맥 주사 중 잘못된 주사바늘 위치로 인해 약물이 주변 조직으로 유출될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기술을 개발합니다. 약물이 유출될 때 주위 조직의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이용해 나노박막 온도 센서를 개발, 이를 정맥 주사바늘에 탑재해 국부 체온의 변화를 점검하는 기능을 구현했습니다. 동 기술로 의료진은 정맥주사 중 약물의 누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죠.

나노박막 온도 센서를 탑재한 주사바늘을 이용한 약물 누출 실시간 감지

Chapter 04 즐기는 자가 일류

밤낮으로 고민을 지새운 결과 정 교수의 연구는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요. 지난해 8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의 표지논문으로 등재되는 성과를 이룩합니다.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국민의 의료 경험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새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셈입니다. 현재 가변강성 정맥주사바늘은 실용화를 위한 기술 고도화 과정을 거치는 중으로, 향후 의료 현장에 도입할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통해 차별화된 나만의 연구 주제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유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면, 그 자체로 가장 경쟁력 있는 연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그것도 즐기기까지 하는 자를 당할 사람은 없습니다. 정재웅 교수는 지난 연구 여정을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 애쓰고, 배우는 과정을 즐기려고 노력한 시간’이라고 표현했는데요. 그는 오늘도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더 나은 미래 의료 실현을 위한 꿈을 품고 있습니다. 작은 발상의 전환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듯, 그가 꿈꾸는 ‘오늘’이 우리의 삶을 바꿀 ‘내일’이 되기를 함께 기대해 봅니다.

속닥속닥! 못 다한 이야기 연구자 TMI

  • 2025년 9월의 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큰 상을 받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흔쾌히 공동연구를 수락해 주시고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KAIST 의과학대학원 정원일 교수님, 열정적으로 연구에 함께해준 바이오 일렉트로닉스 연구실 학생들, 다방면으로 도와주신 교수님들과 연구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변함없이 믿고 응원해주는 가족들, 특히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 어느덧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어요.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연구실 내부적으로 세대교체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어 선배 연구자들이 쌓아온 지식과 연구경험을 후배들이 잘 이어 받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중입니다. 더불어 새로운 연구 문제를 발굴하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 연구자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 가장 보람을 느꼈던 기억을 꼽아 본다면?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이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로 여겨지고 관심을 받을 때,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일례로 저희 연구실은 오랜 기간 뇌 연구를 위한 무선 뇌 이식용 장치를 개발하고 있는데요. 신경과학 연구자분들께서 본인들의 연구에 이 장치를 활용하고자 공동연구에 사용해주실 때, 그 의미와 성취감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또한 이번 가변강성 주사바늘 연구 역시 많은 분들이 미디어를 통해 관심을 갖고 따뜻한 응원을 보내주셔서 연구에 큰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 과학자로서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연구 목표는 무엇인가요? 공학적 접근을 통해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질병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의료 접근성과 격차 해소에 기여하는 기술 개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실험실 차원의 기술 개발을 넘어, 누구나 쉽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첨단 의료기기를 구현함으로써 실질적인 의료 환경의 변화를 이끌고자 합니다.
  • 미래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학생들이 너무 성적에만 얽매이지 않고, 배우는 과정을 즐기며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에서 벗어나,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상상하고 더 큰 꿈을 꾸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