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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페이스

도전을 멈추지 않는 로봇공학자 아주대학교 고제성 교수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한 소설책. 빳빳한 양장 표지를 지나 첫 페이지를 넘기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우리를 반깁니다. 세상을 바꿔갈 연구성과 이야기도 마찬가지인데요. NRF웹진 뉴-페이스에서는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로 떠오르는 과학자, 이제 막 새 이야기를 그려갈 신진 연구자를 만나 연구성과와 일상 이모저모를 들여다봅니다.

학창시절, 보물찾기 게임 한번쯤 해보셨을 겁니다. 아무도 찾지 못한, 꽁꽁 숨겨진 보물을 찾았을 때의 기분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기쁜데요.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의 답을 찾아낸 순간도 마찬가지. 여기 손수 만든 로봇으로,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소금쟁이의 비밀을 밝혀낸 연구자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소금쟁이 라고벨리아의 생김새와 기능을 모사한 초소형 로봇을 개발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아주대학교 고제성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Prologue 15년 연구의 결실,
소금쟁이에 감춰진 비밀 풀다

  •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주대학교 기계공학과 고제성 교수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학사와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지난 2017년 아주대학교 교수로 부임했는데요. 여러 공학 분야 중 로봇을 전공으로 다루고 있으며, 현재는 12명의 학생연구원과 함께 멀티스케일 생체모방 로봇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 ‘생체모방 로봇’ 기술을 연구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해당 분야가 낯선 NRF웹진 독자들을 위해 생체모방 로봇, 무엇인지 짧게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생물이 지닌 우수하고 독특한 생체기관 혹은 움직임을 모방하여, 로봇의 성능을 높이거나 기존의 로봇이 할 수 없던 일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기술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예컨대 인간의 신체 내부 탐색을 위해 곤충을 닮은 초소형 로봇을 만드는 일 등을 꼽을 수 있죠. 저는 특정 생물이 ‘어떻게 저런 운동, 움직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서 출발해, 생물이 지닌 구조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로봇으로 구현하여 생물체의 활동에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 지난 8월 22일, 교수님의 연구가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의 표지 논문으로 게재되었습니다. 소감 한 말씀. 최근 부채다리 소금쟁이라고 불리는 곤충 라고벨리아를 모사한 초소형 로봇을 개발했습니다. 해당 연구를 통해 라고벨리아가 수면 위를 어떻게 자유자재로 기동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경이로운 자연의 현상을 로봇연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 논문명 Ultrafast elastocapillary fans control agile maneuvering in ripple bugs and robots
    • 키워드 Elastocapillary, microrobot, biomimicry, rhagovelia
    • 저자
      • 고제성 교수, 김동진 박사, 김창환 박사과정생
      • 써니 쿠마르(Sunny Kumar)
      • 빅터 M. 오르테가-히메네스(Victor M. Ortega-Jimenez)
      • 사드 밤라(Saad Bhamla)
    • 연구성과
      • 라고벨리아의 다리 끝에 있는 평판형 리본 구조의 펜이 탄성-모세관 현상에 의해 근육 개입 없이도 10ms 이내에 퍼지고 접히는 사실 규명
      • 약 1mg 무게, 21개의 끈 형태의 털로 구성된 인공 펜을 개발, 초소형 로봇 제작
      • 물속에서 펼쳐져 큰 추진력을 얻고, 물 위로 들리면 순간적으로 접혀 표면장력 저항을 줄이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화 된 구조임을 입증
  • 세계 최초로 곤충 라고벨리아(부채다리 소금쟁이)를 모사한 초소형 로봇을 개발하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본 연구를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소금쟁이와 인연이 꽤 깊습니다. 박사과정 시절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곤충이기 때문인데요. 소금쟁이가 물 위를 이동하는 움직임은 사람이나 일반적인 동물이 쉽게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합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학계에서도 꽤나 유명한 곤충이죠. 그런데 이번 연구의 대상이 된 라고벨리아는 일반적인 소금쟁이와 달리 조금 더 특별한 특징을 갖고 있어요. 몸집이 아주 작고 발끝에 부채 같은 게 달려 있는데요. 그런데 이 부채가 수면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스스로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물 위에서의 기동성을 높여주더라고요. 처음 이 광경을 본 순간, ‘이거 로봇으로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이 팍 들더라고요. 이 경이로운 생물체를 알게 된 건 미국의 Victor 교수님, Saad 교수님 두 생물학자 덕분인데요. 과거에 제가 공학자의 시선으로 소금쟁이가 점핑하는 원리를 밝히기 위해 연구한 논문이 사이언스지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어요. 아마 그걸 보시고 제게 연락을 주신 게 아닐까 생각이 들고요. 함께 라고벨리아의 비밀을 풀어보자고 하더군요. 저야 너무 좋았죠. 그렇게 두 교수님과 함께 공동연구팀을 꾸리면서 자연스레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고제성 교수 공동연구팀이 모사한 곤충 라고벨리아 로봇
    (그림 위쪽) 라고벨리아 생물 팬이 물 표면에 접촉 여부에 따라 자가 변형하는 사진
    (그림 중간) 인공 팬이 실제 물속에 들어가고 나올 때 펼쳐지고 접히는 연속 사진
    (그림 아래쪽) 인공 팬이 장착된 로봇이 다리를 움직여 실제 물과 상호작용하며 인공 팬을 활용하는 연속 사진
  • 무게 0.23g, 21개의 인공 털을 가진 초소형 로봇을 통해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라고벨리아의 운동 원리를 밝혀내셨습니다. 생물학과 공학, 서로 다른 분야 간의 융합 연구로 이뤄낸 산실이라고 여겨지는데,
    연구 중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저희의 연구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수면 위를 자유자재로 기동하는 라고벨리아의 비밀을 밝히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다리 끝 부채꼴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답을 찾는 건 실패와 반복, 끈기 없이는 이룰 수 없으니까요. 특히 우리는 서로 다른 학문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어, 초반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말씀해주신 것처럼 생물학자의 시선과 공학자의 시선은 분명히 다릅니다. 사용하는 용어도, 기초교육도 다르죠. 쉽게 말해 출발점이 다르고 보시면 되는데요. 그러다 보니 같은 원리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심지어 우리 연구자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의 단계에 와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두 사람이 만나면 절대 이야기가 쉽게 흘러가지 않아요. 맨 처음으로 돌아가 서로 소통하며 말과 개념을 맞춰가야 하죠. 돌이켜보니 이 과정만 꼬박 5년 정도 걸렸네요. 서로 다른 나라에 있다 보니 1년에 한 두 번씩 번갈아가며 왕래하고, 평소에는 화상회의로 자주 소통하곤 했습니다.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결코 쉽지 않아요. 그래도 덕분에 생물학 교수님, 연구진들과 사담도 나누면서 많이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이번 성과가 빛을 보는데,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우수신진연구, 기초연구실)의 지원도 한몫 했다고 들었습니다. 실제 연구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었나요?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신진연구와 기초연구실 사업은 정량적 지표에 얽매이지 않고 지식의 함양에 좀 더 무게를 두어 연구 활동을 도와주는 고마운 사업입니다. 이러한 사업과 아낌없는 지원 덕에 이번 연구 역시 미국이라는 먼 나라를 오가며 연구자들과 소통할 수 있었고, 연구의 원동력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22년 5월 Georgia Tech 방문 연구
    (왼쪽부터 Georgia Tech, Prof. Saad Bhamla, 김동진 박사, 고제성 교수)

#Journey 관심과 집념으로 이뤄낸 꿈,
‘로봇 공학자’가 되기까지

  • 교수님은 언제부터 로봇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유년시절부터 로봇이라는 존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창 인기를 누리던 로봇 태권브이와 아톰 등 SF 기반 애니메이션 역시 제게 꽤나 큰 영향을 주었죠. 로봇 태권브이 주제가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곤 해요. 그래서였을까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줄곧 과학자, 로봇 공학자를 꿈으로 적어 냈어요. 머리가 크면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더 진지하게 로봇을 바라보기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학창시절에는 ‘로봇을 만드는 일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늘 진로 선택의 기준이 되곤 했습니다. 지금은 어릴 적 상상했던 로봇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엿한 로봇 공학자가 되었는데요. 어릴 적 관심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 사뭇 교수님의 대학시절도 궁금해집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보냈는데요. 한 곳에서 오랜 기간 학문적 소양을 기르고 연구했다보니 쌓인 추억도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은 2학년 수업과정에 있던 창의공학설계 수업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파이프나 모터 등 소재나 부품 하나를 고른 뒤, 그걸 중심으로 로봇을 만들어가는 실습이 주된 학습 목표이자 과제였어요. 설계도도 없기 때문에 처음 그 순간을 마주하면 누구나 멘탈이 살짝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요. 물론 저도 그랬고요. 그래도 이게 또 재미있는 게, 어렵게 만든 로봇을 가지고 서로 경쟁을 해요. 저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라는 테마로, 실린더를 옮겨서 탈출시키는 로봇을 만드는 경합을 했는데요. 학부 2학년이라서 아무런 기계적 전문지식이 없는 시절에 나무와 플라스틱 파이프, 모터 등 단순한 재료를 가지고 로봇을 만들다 보니 생각과 현실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수정, 실험, 연습을 통해 로봇이 실린더를 옮기고 우리 팀이 우승을 했을 때, 처음으로 로봇으로 얻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특정 한 순간이 기억나기보다 대학시절 전체가 하나의 긴 에피소드처럼 크게 여운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고제성 교수가 소장 중인 로봇 토이
  • 올해 초에 열린 제20회 한국로봇종합학술대회 초청강연에서 ‘지능적인 기계’라는 개념을 강조하셨습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의미로 들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지능적인 기계’란 무엇인가요?
    기계적 지능(Mechanical Intelligence)은 재료, 구조, 기구설계와 같은 기계적인 설계요소를 통해 로봇의 환경에 대한 적응, 사물에 대한 조작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센서를 이용한 정밀 측정과 제어를 기반으로 로봇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적으로 여러 환경변화에 적응해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아주 효율적인 접근이라 생각합니다. 생물에서 그러한 예를 많이 볼 수 있어 생체모방적 접근이 유용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Epilogue 작은 것이 세상을 바꾼다?!
그가 꿈꾸는 도전과 미래

  •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생체 기능이 이미 밝혀진 동물이나 생물을 로봇으로 만드는 일반적 과정과 달리, 역으로 로봇을 만들면서 생물이 지닌 비밀을 발견해가는, 다소 독특한 케이스로 여겨집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Science for Robotics, Robotics for Science. 국제학술지인 사이언스 로보틱스(Science Robotics)의 에디터 중에 한 분이 하신 말씀인데요. 로봇이 과학을 위해 쓰이고, 과학이 로봇을 위해 쓰이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되게 좋아하고 공감해요. 기존의 로봇이나 사고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사람의 생각도 더 넓어지고 우리가 아는 지식도 넓어지기 마련인데요. 제가 모사한 라고벨리아 로봇 역시 어딘가를 다니면서 정보를 얻거나 사람 대신 구조활동을 한다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자연의 이치를 풀어낸 점에서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의 로봇에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부여할 수 있으니까요. 수년 전만해도 제가 만든 소금쟁이 로봇과 점핑 기술을 두고 ‘대체 어디다 쓰면 좋지’ 라고 생각하곤 했어요. 그런데 이러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연구를 통해 이룬 모든 과학적 이론과 기술은 결국 더 큰 가치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저도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습니다.
  • 소금쟁이 말고 모사해보고 싶은 생물이 있을까요? 큰 생물보다는 크기가 작은 생물체를 모사해보고 싶어요. 독특한 거동을 하는 생물이면 더 좋겠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바퀴벌레도 한번 탐구해보고 싶습니다. 대개 바퀴벌레는 원자 폭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곤충 중 하나라고 이야기 하곤 하잖아요. 기회가 된다면 바퀴벌레를 로봇으로 모사하여, 생존력과 빠르게 움직이는 생체 구조적 비밀을 풀어보고 싶어요!
  • 연구자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있다면요. 로봇이 조금 더 인간생활 깊숙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연구 개발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초소형 로봇의 경우, 사람이 몸에 차고 다니는 웨어러블 기기, 몸속에 들어가는 초소형 수술 로봇, 환경 탐사용 곤충로봇 등 인간의 삶 전반에 도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러한 과정은 앞으로 더 진보한 로봇을 만드는 기초 요소 기술로 작용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교육자로서는 훌륭한 연구자들을 길러내어 로봇공학 기술 개발의 발전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 생체모방 로봇 연구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나 후배 연구자에게 전하고 싶은 연구 철학이나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구가 제 업이 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 안 되는 것, 실패하는 것에서 제 일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안되기 때문에, 실패하기 때문에 제가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통해 더욱 많이 배우게 되기 때문에,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연구에서는 실패가 성공의 길입니다. 수차례 실패한다는 것은 지적으로 성공해 가는 과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처음부터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문제의 이유, 어려운 이유, 실패하는 이유에 대한 탐구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며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조금씩 아는 것을 늘려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전문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About the Interviewee

고제성 교수 (1983년생)

  • 소속

    • 아주대학교 기계공학과 부교수
    • 아주대학교 멀티스케일 생체 모사 연구실
  • 학력 및 경력

    • 2002.03. ~ 2008.08.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학사
    • 2008.09. ~ 2014.08.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박사
    • 2014.11. ~ 2017.08. Harvard University, PostDoc Fel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