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R
안전한 미래 도시 인프라를 위해시설물의 과거와 미래를 엮다 인하대학교 이종한 교수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일상이 된 오늘. 여기에 교량, 터널, 건물과 같은 주요 시설물의 노후화까지 빠르게 진행되면서 시설물 유지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 안전 점검 기술은 단편적인 데이터에 의존하거나, 사고가 발생한 뒤 대응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었는데요. 8월호 스토리R에서는 시설물에 숨은 위험 신호를 미리 포착해 읽어내는 디지털트윈 기술을 개발한 이종한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 선정하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상금 1천만 원을 수여하는 상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해 외길을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음에도 희미한 흔적만을 따라가야 하는 순간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게 한 겹씩 쌓아온 시간은 어느 순간 하나의 선명한 길로 연결되곤 하는데요. 이종한 교수는 건설 구조라는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 마침내 시설물의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량과 터널, 도로 같은 사회기반시설이었습니다. 처음 지어졌을 때는 튼튼했던 시설물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나이를 먹습니다. 사람의 몸에 세월의 흔적이 쌓이듯, 시설물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변화가 생겨나죠. 작은 균열과 미세한 변형처럼 지나치기 쉬운 신호들이 쌓이면 결국 큰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설물이 보내는 작은 이상 신호를 미리 알아챌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종한 교수는 바로 이 질문에서 연구의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읽고, 위험이 커지기 전 알아차리는 것. 시설물의 시그널을 읽는 새로운 기술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사회기반시설물은 국가의 핵심 자산이자 시민들의 일상과 직결된 생명선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인프라의 급격한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안전과 유지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요. 국가의 한정된 유지관리 예산을 위험도가 높은 시점과 시설에 적재적소 투입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대한 과제라 생각했습니다.”
외부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된 인프라 시설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나타납니다.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동결융해, 탄산화, 염해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재료가 약해지는 ‘열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여기에 다른 원인이 더해지면 균열이나 철근 부식처럼 다양한 손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문제는 기존 사회기반시설 관리 방식만으로는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변화를 한눈에 파악하고, 앞으로의 성능 저하까지 내다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안전 점검은 인력 중심 외관 조사나 단편적인 센서 데이터에 의존해 왔습니다. 기존의 BIM* 역시 시설물의 데이터와 형상을 3차원으로 보여주는 시각화 도구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상용 소프트웨어의 사용에 따른 적용성과 확장성 한계도 존재했죠.” * 건축물의 설계·시공·유지관리 정보를 하나로 담아낸 지능형 디지털 입체 도면(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이종한 교수 연구팀은 이 지점에 주목했습니다. 복합적인 열화 조건에서 구조물이 어떻게 변하고, 손상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퍼져 가는지 살펴본 것이죠. 콘크리트 동결융해부터 무거운 차량이 지나갈 때 구조물에 가해지는 하중까지 다양한 변수를 함께 고려해 해석하는 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손상이 발생하는 위치뿐만 아니라 이후의 확산 경로까지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한마디로 재료가 약해지는 순간부터 구조물에 손상이 생기고, 점차 성능이 떨어지는 과정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살펴본 셈인데요. 여기에 손상 이력과 확산 정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적해 과거의 상태를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는 것은 물론, 미래의 변화까지 예측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재료·부재 다종손상 확산예측 LIVE 디지털트윈 기술’입니다. 실제 구조물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설물의 변화 과정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이 교수 연구팀의 기술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현재의 손상을 찾아내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과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시설물을 바라볼 수 있죠. 시설물 관리 역시 문제가 생긴 뒤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변화의 신호를 미리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번 성과는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열화 실험과 점검·진단 이력, 이를 아우르는 디지털트윈 해석 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인하대학교 LIVE 디지털트윈 기초연구실이 구축한 연구 기반은 터널과 항만 등 다양한 사회기반시설의 관리에도 활용될 수 있는데요. 시설물의 현재를 정확히 읽는 것을 넘어, 미래까지 내다보는 스마트 유지관리의 새로운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연구성과는 몇 글자의 활자로 정리되지만, 그 뒤에는 대학원생을 비롯한 연구진들의 치열한 땀방울이 담겨 있습니다. 이종한 교수에게 연구실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공간인 동시에 다음 세대의 연구자를 길러내는 배움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는 대학원생들에게 단순히 유행하는 소프트웨어나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자가 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기술을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죠. 이를 위해 꾸준히 수준 높은 강의를 수강하도록 독려하는 한편, 자신의 연구 결과를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자신 있게 발표하는 경험을 쌓도록 돕고 있습니다.
시야는 연구실 밖으로도 향합니다. 이 교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글로벌 마인드’인데요. 단순한 어학 능력을 넘어 해외 연구자들과 당당하게 네트워크를 만들고, 국제 학술대회에서 자신의 연구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죠. 그래서 대학원생들이 해외 학술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해외 장·단기 교육과정이나 국제 학술대회 발표 기회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결국 좋은 연구자를 만드는 것은 하나의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 세상에 나누는 힘을 길러주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시설물의 미래를 바꾸는 기술을 연구해 온 이종한 교수의 시선이, 이제 그 기술을 이어갈 다음 세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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