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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思惟)의 서재

이름 너머의 의미를 찾는 당신께
「이름의 언어학」
안양대학교 박철우 교수

한 권의 책에 담긴 무한한 세계와 가능성. 활자 속 유영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일상에 전환점이 되곤 하는데요. 사유(思惟)의 서재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으로 탄생한 우수학술저서 한 권과 저자 인터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질문거리를 곁들여 전합니다. 책 너머의 저자, 저자 너머의 빛나는 사유가 담긴 서재에 들어오세요!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저마다의 이름표를 하나씩 달고 살아갑니다. 이름은 누군가를 부르고, 기억하고, 구별하기 위해 붙여지지만, 때론 이름 하나에는 정체성과 관계, 시대의 분위기까지 담기곤 하는데요. 그렇다면 이름의 의미를 단순히 지칭 대상이라고 한정 지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해 이름에 숨은 언어의 원리를 탐구한 책이 있습니다. 이달에 만나볼 「이름의 언어학」은 이름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맥락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기호로 바라봅니다. 사람의 이름에서 지명과 상호, 사물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범위를 넓혀 이름의 세계를 폭넓게 살펴보고 있죠. 이번 사유(思惟)의 서재에서는 박철우 교수와 함께 우리가 쉽게 부르고 지나쳤던 ‘이름’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박철우 안양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 언어학과에서 한국어 의미론(수량 표현) 연구로 석사학위를, 한국어 문법·의미·화용론(정보구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BK21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BK21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현재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어 정보구조에서의 화제와 초점」, 「한국어 정보화와 구문분석」(공저), 「이름의 언어학」, 「한국어 의미론」(공저) 등이 있다.

#01 책을 쓰다 이름의 시작을 찾아서

  • 박철우 교수님 반갑습니다. 한국연구재단 웹진 독자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문법과 의미론, 화용론을 연구하고 있는 박철우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언어학과 방문학자와 전산정보과학과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의 폭을 넓혔고, 인문과학연구소장과 국어문화원장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삶의 현장을 잇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연구의 중심에는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언어가 어떤 원리로 의미를 만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사용되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흥미로웠거든요. 그런 관심을 바탕으로 언어의 이론과 실제를 연결하는 연구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며, 「언어 의미학 개설」, 「화용론의 실제」 등의 번역 작업도 해왔습니다.
  • 「이름의 언어학」이라는 책 제목에서부터 눈에 띄는 단어는 ‘이름’인데요.
    교수님께서 이름과 언어학 연구를 접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언어에는 품사, 즉 단어들의 갈래가 있습니다. 영어에는 8품사, 한국어에는 9품사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명사와 동사죠. 특히 명사(名詞)는 어떤 언어에서나 단어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명사는 고유어로 ‘이름씨’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무언가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인 셈이지요. 저는 대학원 시절부터 의미론을 공부하면서 언어 기호가 어떻게 의미를 갖게 되는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명사의 의미, 그리고 ‘이름’이라는 개념에 눈길이 갔는데요. 들여다볼수록 이름이라는 말이 참 묘하더군요. 이름에는 ‘보통 이름(보통명사)’과 ‘고유 이름(고유명사)’이 있고, ‘이름’이라는 말 자체도 ‘이르다’, 즉 무엇을 무엇이라고 ‘이르다’ 할 때처럼 말하거나 부르는 행위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무엇이라고 ‘이르는’ 일이 어떻게 언어의 의미가 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 본 저서는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지원사업을 통해 출간되었는데요. 그 여정이 궁금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자에게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은 학문적 호기심과 열정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생명수’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의 언어학」을 구상한 건 안양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으로 인문도시지원사업을 수행하던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의미론과 화용론 교과서를 번역할 기회가 있어, 인문학적 지식을 널리 나누는 일의 의미를 새삼 느끼고 있었는데요. 마침 재단의 저술출판지원사업 공고를 접하면서 대학원 시절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언어학적 의미와 실체(entity) 유형의 문제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술 계획을 단숨에 써 내려갔고, 제목도 「이름의 언어학」으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책 한 권을 완성하는 일은 생각만큼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강의와 연구소 사업을 병행하다 보니 초반에는 자료와 소재를 모으는 데 집중했고, 2020년 연구년을 맞아서야 본격적인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코로나19 시기까지 작업을 이어가며 지원 기간과 출판 시한을 거의 다 채운 끝에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지요. 지나고 보니 여러 조건이 꼭 맞아떨어져 가능했던 작업이라 많은 분에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다시 같은 과정을 거친다면 처음부터 조금 더 단단히 준비해서 마감에 몰려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순간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웃음)
    작은 고서점에서 자료를 찾는 박철우 교수

#02 책을 읽다 이름에 의미가 생기는 순간

  • 독자들이 전체 흐름을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책의 구성과 각 부에서 다루는 핵심 내용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책은 크게 3부로 구성했습니다. 제1부 ‘이름이란 무엇인가’에서는 무엇을 ‘이름’이라는 언어기호로 볼 수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이름을 판별할 수 있는지를 의미론·화용론·형태론·통사론·음운론 등 언어학의 여러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제2부 ‘이름을 가지는 실체의 유형’에서는 사람과 단체, 공간, 시간, 사건 등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존재로 시선을 넓힙니다. 각각의 대상이 어떻게 이름을 얻고 정의되는지, 그 과정에서 단순한 지칭을 넘어 어떤 의미가 이름에 더해지는지를 다뤘습니다. 이러한 분류가 정보기술 분야의 온톨로지(ontology)* 구축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살펴보고요. 제3부 ‘이름의 사용 양상’에서는 이름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다룹니다. 호칭과 지칭에서부터 이름과 정체성, 개명, 지명 분쟁, 상표권 분쟁까지 폭넓게 살펴봤습니다. 다시 말해 제1부는 ‘이름이란 무엇인가’, 제2부는 ‘무엇이 이름을 가지는가’, 제3부에서는 ‘이름은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탐구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들을 사람, 장소, 사건 등 일정한 유형으로 나누고, 각 대상이 어떤 특성과 관계를 맺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지식 체계
    • 1부 이름이란 무엇인가
    • 2부 이름을 가지는 실체의 유형
    • 3부 이름의 사용 양상
  • 「이름의 언어학」에서 말하는 ‘이름’이란 무엇인가요? 책에서 말하는 ‘이름’이 일반적인 의미와 크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이름은 특정한 사람이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우리는 흔히 사람이나 반려동물의 이름부터 떠올리지만, 조금만 범위를 넓혀보면 나라와 단체, 사물, 공간과 시간, 사건은 물론 구체적·추상적 대상에도 이름이 붙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우리가 ‘이름’이라고 부르는 말이 항상 특정 대상을 직접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령 “저 동물의 이름은 무엇이니?”라는 질문에 “기린이에요”라고 답할 수 있지만, ‘기린’은 특정한 한 마리의 고유한 이름이 아니라 동물종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죠. 반대로 세상에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대상이 저마다 이름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 소나무 가운데 대부분은 개별적인 이름이 없지만, ‘정이품송’은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처럼요.
  • 「이름의 언어학」에서는 이름은 대화에 참여하는 화자와 청자 사이의 지식과 맥락을 통해 해석된다고 하셨는데, 쉽게 설명 부탁드려요. 이름 가운데 ‘이순신’, ‘인천’, ‘한강’, ‘광한루’처럼 사전에 올라와 있고, 정의도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체로 널리 알려져 있거나 지식적인 가치가 있어 사전 이용자들이 찾아볼 만한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름이 있어도 사전에 오르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더 좁은 범위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이름도 많고요. 가령 친구 중에 ‘철우’가 있다고 해봅시다. 누군가 “철우가 오늘 안 왔어”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철우’가 누구인지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존재를 알고, ‘그의 이름이 철우다’라는 지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이 사용되는 현장에는 앞뒤에 오는 말인 ‘언어 맥락’, 그 자리에서 확인되는 시공간이나 존재와 같은 ‘상황 맥락’, 그리고 화자와 청자의 머릿속에 공유된 지식인 ‘인지 맥락(공유 지식)’이 함께 존재합니다. 이름이라는 언어기호 역시 이러한 맥락(context)을 통해 그것이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지 해석될 수 있죠.
  • 이러한 관점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유의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언어학은 소리나 문자처럼 눈에 보이는 언어기호를 분류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규명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 문제는 간접적으로 다뤄졌고, 언어철학이나 기호논리학과 같은 철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논의됐는데요. 그러다 보니 언어학에서 언어기호의 의미를 설명할 때 ‘지시’ 혹은 ‘지칭(reference)’이라는 개념은 충분히 정립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유 명칭은 의미를 따지기에 앞서 ‘무엇을 가리키는가?’가 중요한 언어기호입니다. 그래서 먼저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에는 어떤 유형이 있고, 그 차이가 언어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나아가 생각해 보니, 이름으로 어떤 대상을 가리키려면 그 이름을 함께 알고 있는 화자와 청자가 필요하더군요. 자연스럽게 ‘공유 지식’이라는 개념으로 관심이 이어졌고, 누가 그 이름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지, 나아가 그 과정에서 단순한 지칭을 넘어 어떤 의미가 이름에 덧붙는지까지 생각이 뻗어나갔습니다. 하나의 질문이 또 다른 질문을 낳는 과정이었지요. 물론 난관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생각의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웃음)
  • 이름은 그 대상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까지 품게 되기도 하는데요.
    이름의 의미 확장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설명 부탁드려요.
    이름에 사회문화적 의미가 담기는 경우는 대체로 그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나 대상이 가진 특징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이순신’이라는 이름의 본래 의미와 별개로, 우리는 이 이름을 들으면 삼도수군통제사, 거북선의 운용자, 「난중일기」의 저자 같은 사회문화적 이미지를 함께 떠올립니다. 이러한 연상은 그 대상이 언어 사용자들에게 충분히 알려지고 평가되면서 이루어진 것이죠. 이처럼 사회문화적 의미가 축적된 이름은 때로 본래의 대상을 가리키는 기능을 넘어, 다른 대상을 설명하는 표현으로까지 확장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조언자’라는 뜻으로 쓰이는 ‘멘토’가 본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르(Mentor)’라는 고유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 이름은 다양한 분야에서 저마다의 관점으로 연구됐는데요.
    「이름의 언어학」을 통해 보여준 관점의 전환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나요?
    학문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무엇을 만지고 있느냐에 따라 설명은 달라지지만, 전체적인 진리는 그보다 더 넓고 큰 그림으로 존재하겠지요. 과거의 이름 연구를 하나의 경향으로 한정하기는 어렵지만, 가령 지명 연구는 옛 지명을 통해 우리말의 과거 모습을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책은 이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언어기호의 형식과 의미, 그리고 그 기호가 실제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을 하나의 체계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텍스트학이나 담화분석학, 문헌 연구 등 실제 사용된 언어를 해석하는 여러 분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03 책을 건네다 이름을 다시 보다

  •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기업이 브랜드·공간 이름을 만드는 때도 여러 요소를 살피곤 하는데요.
    오늘날 이름을 짓고 사용하는 방식에서 엿볼 수 있는 사회문화적 변화가 있다면요?
    발음은 자음과 모음의 특성에 따라 특정한 느낌과 결부되기도 하지만, 이름에는 시대마다 유행하는 음절도 있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에는 ‘순아, 희야, 자야’라고 부르면 대부분의 여성이 돌아봤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지요. 요즘에는 남자아이 이름에 ‘준, 우, 현’, 여자아이 이름에 ‘서, 아, 윤’이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이름의 유행 주기가 5년 정도로 짧아졌다고 하니, 이름에서도 시대의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해당 이미지는 AI를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언어 태도’입니다. 개인이나 특정 언어 사용자들이 어떤 언어에 대해 갖는 평가적 믿음이나 감정적 태도를 말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네이밍에도 많이 반영됩니다. 가령 아파트 브랜드에는 영어나 프랑스어, 라틴어 등이 많이 활용되는데요. 영어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유럽어는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과거 고급화 전략에 활용되던 한자의 선호도는 낮아졌고, 순우리말 역시 친근한 이미지를 주지만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덜 활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소리와 언어를 ‘좋은 이름’으로 받아들이는지를 살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미지와 가치도 함께 읽어낼 수 있는 셈이죠.
  •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딱 한 문장에만 밑줄을 그어 선물할 수 있다면 어떤 문장을 고르고 싶으신가요?
    그 문장에 담긴 의미와 이유도 함께 들려주세요.  
    69쪽에 밑줄을 긋고 싶습니다. 조금 어려운 문장인데요. ‘화시(deixis)’는 화용론(언어사용에 관한 이론)에서 상황 속의 가리킴을 뜻합니다. ‘나/너, 지금, 여기’ 같은 말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가리키는 대상이 달라지는데요. 반면 ‘전제(presupposition)’는 어떤 문장이 성립하기 위해 이미 참이거나 존재한다고 가정되어야 하는 내용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창호가 담배를 끊었다’라는 말에는 ‘창호가 이전에는 담배를 피웠다’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런 개념으로 이름, 즉 고유명칭을 바라보면 조금 흥미로워집니다. 고유명칭 역시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대상을 곧바로 가리킬 수 있다는 점에서는 ‘화시’와 닮았습니다. 다만 그 대상이 반드시 눈앞에 있는 것은 아니며, 화자와 청자가 머릿속에 공유하고 있는 지식 속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름은 화자와 청자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라는 공유지식을 바탕으로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이 문장이야말로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이름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기술한 대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각자의 ‘이름’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에서는 이름의 본질을 밝히고자 했지만,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이름’이라는 말에는 훨씬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름을 날리다’, ‘이름이 높다’처럼 평판이나 명성을 뜻하기도 하고, ‘이름을 더럽히다’처럼 명예나 품위를 가리키기도 하지요. 또 ‘평화라는 이름으로’처럼 어떤 일을 위한 명분을 뜻하거나, ‘누구의 이름으로’처럼 누군가의 권위를 빌리거나 대신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름’은 어떤 이름인가요? 저는 이름 때문에 내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이름이 평가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삶이 쌓이면서 그 이름에도 그 사람만의 의미가 새겨지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인생을 다 살아낸 뒤, 각자의 이름에는 어떤 사회문화적 의미가 남게 될까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처럼, 여러분의 이름이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멋지게 기억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