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플러스

계사년 검은 뱀의 해가 우리를 떠나가고 이제 2014년 파란 말의 해가 펼쳐졌습니다. 연구재단 웹진을 통하여 과학계의 최신동향을 읽고 있었던 평범한 독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지면을 통해 신년인사를 드리게 되어 무척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창의성을 추구하기 어려웠던 과거의 기초연구

이제는 50줄에 들어선 중견연구자로서 경험담에 비추어 ‘기초연구에 대한 발전방향에 도움이 될 기고문’ 요청을 받고,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고민 하다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 옛 생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근 15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2003년 한국으로 귀국했을 당시 한국에서의 기초연구는 ‘창의성’을 추구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상황이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처음 발령을 받아 부임하였을 때 15평 남짓한 공간 한쪽에는 연구실로 쓸 수 있는 방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Fume Hood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다리가 부러진 테이블을 두 개 모아 실험벤치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신임교수에게 지원되는 1,000만 원의 연구정착비로 무엇부터 해야 할 지 막막하였습니다. 1,000만 원이면 큰 돈 이었지만 외산 세포배양 인큐베이터를 하나사고 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실정이었습니다.

신진과학자의 드림과제로 일어서다.

텅 빈 실험실에 앉아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며 현실을 고민하던 중 미국에 계신 지도교수님께서 해결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제가 연구해왔던 모든 테마와 시약 그리고 유전자 결손 마우스까지 모두 제공해주시고 연구비까지 주시면서 그동안 진행해 왔던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미국실험실에서 값비싼 항체 및 시약, 심지어는 자비로 구입한 현미경까지 박스로 항공기에 실어 나르던 것을 네다섯 차례 하던 중 구 과학재단에서 새로이 공모하는 ‘젊은 과학자’ 과제에 선정이 되었습니다. 당시 ‘젊은 과학자’ 과제는 3년에 총 2억 원 가량을 지원하는 과제로 40세 이하의 연구자들에게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했던 사업이며 모든 신진과학자의 드림과제였습니다. 이 과제로 연구에 필수적인 기자재를 사고 동시에 구 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신진연구자’ 과제까지 선정되어 5,000만 원을 수여받아 필요한 시약 및 동물을 구입하며 대학원생들과 함께 본인이 꿈꾸던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풀뿌리 사업이 신진과학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던 가를 절실히 체감한 저는 지금도 항상 이러한 기회를 주신 한국연구재단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기초연구 진흥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 기초연구 투자

창조경제에서 기초연구의 역할은 무엇보다 신지식 창출과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원천기술 개발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른 성과확산을 통하여 고 부가산업 창출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발맞추어, 지난 5년간 정부의 기초연구 투자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고 연 평균 약 35%의 증가율로 올해 기초연구 R&D가 4조 6천 억 원에 이르는 혁신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중 순수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2009년 5,944억 원에서 2013년 9,770억 원으로 1.6배 증가하였고, 개인 연구지원 예산은 연 평균 11.3% 증가하였으며 집단 연구 지원 사업 예산으로 소폭 증가하였습니다. 또한 투자의 패러다임도 응용연구중심의 추격형 연구에서 풀 뿌리형 창조적 연구로 전환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한국연구재단의 중추적인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사료됩니다.

비전 플러스

중견연구자의 지속적 연구지원 필요

그러나 2013년에 보여준 개인연구 지원 사업 중 중견연구자 지원 사업이 10:1(8.8%) 을 넘는 선정률을 보이면서 현장에 있는 연구자들의 기초연구비 확대에 대한 체감도는 그리 높지가 않은 실정입니다. 일반연구자 지원 사업으로 기반을 구축한 중견연구자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없는 사태가 발생이 되며 연구를 단절해야하는 상황이 초래되었습니다. 최근 한국 과학기술평가원에서 창조경제의 근간인 기초연구 성과확산 및 활용을 유발하는 성공요인으로 ‘연구의 지속성과 안정성확보’를 가장 주요한 성공요인으로 지목한 바와 같이 연구의 단절, 단기성과에 대한 압박감, 연구비의 결여 등은 연구자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여 연구의 질을 낮추고 이에 따른 성과확산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해에는 과도한 거대 신규 사업은 지양하고 우수성과를 얻은 일반연구자가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중견연구자 사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자격대상을 부여하여 진입 관문을 넓히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효율적 운용을 위한 다각적 검토와 노력

또한 기초연구 저변확대와 연구현장의 체감도 향상을 위해 순수기초연구사업 투자의 지속적 확대가 필수적일 것이며,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분야별 기초연구 예산 편성, 지원 분야 및 지원 체계 등에 대하여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필수적인 항목은 분야별 예산편성이며 사전에 적절한 배분원칙을 정하여 분야별 지원 금액에 대한 적절한 금액을 산정하고 과제를 선정하여 분야별 균등한 발전을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집단연구 사업에서는 우수한 과학자들이 새로운 분야를 창출 할 수 있도록 융합연구의 추진을 목표로 인력양성 및 선도형 연구 (first moving)를 지향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블록펀딩 등의 제도를 도입하여 분야에 필수적이고 창의적인 과학자의 자유로운 영입으로 대한민국이 주도가 되는 학문영역을 개척하여 성과를 창출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 입니다.

기초연구의 도약을 기대하며

끝으로, 기초연구비 증대에 따른 적절한 배분이 다양한 연구분야의 균등한 발전에 초석이 됨을 강조하고, 지속적·안정적인 기초연구의 지원을 통하여 창조경제에 이바지할 것을 기원하며 한국연구재단과 함께 힘껏 달릴 수 있는 청마의 해를 기대합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이경미 교수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University of Chicago 대학교에서 약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University of Chicago와 Harvard Medical School에서 종양학, 면역학으로 training을 받은 후 2003년 귀국하여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이다. 대한 암학회, 생화학회와 면역학회 운영위원과 자문위원, 그리고 국가 대통령 장학생선발위원을 거쳐 현재 기초연구진흥 협의회위원으로 기초연구의 발전 및 진흥을 위하여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국연구재단의 의견 및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쇄하기

top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