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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과제 탄생의 이면
“연구 전문가들의 밑그림 작업”
한국연구재단 강동우 전문위원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한국연구재단은 지난 2010년부터 지원사업의 전문성과 공정성 제고를 위해 해당 분야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연구사업을 관리하는 전문위원(RB,Review Board)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문위원은 학회 추천으로 지명되며 자격검토와 후보자 추천 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선임됩니다. 국책연구본부 신약단의 비상근 RB로 활동 중인 강동우 교수를 만나 전문위원들의 세계를 살짝 엿보았습니다.

나노의학의 봄

작년 말 일산 킨텍스에서 ‘2021 대한민국 과학기술대전’이 열렸습니다. 한국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래가 총망라되는 대형 전시회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매년 기초연구 부문에서 우수한 성과를 낳은 연구자 10인에 대한 포상도 함께 진행됩니다. 강동우 교수도 수상자 중 한 사람으로 단상에 올랐습니다.

지난 4월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의 표지논문이 이번 수상의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연구인지 소개해주세요.

혈액에 나노물질을 주입하면 면역 반응이 활성화되는 원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규명한 연구입니다. 나노물질이 혈액에 주입되면 수많은 단백질들이 나노물질에 흡착되는 소위 ‘단백질 코로나’가 형성되며 면역반응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런 나노-코로나가 어떻게 면역반응을 활성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 임상적인 응용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저희 연구팀은 나노물질과 단백질 코로나를 인위적으로 결합시켜 구조적인 변화와 면역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이런 실험들을 통해 나노물질과 면역반응 유발 단백질을 결합하면 단백질의 구조가 심하게 뒤틀리고 면역세포들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반면 면역반응과 무관한 단백질들은 구조 변화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별도의 약물 없이 나노-코로나만으로도 특정 면역세포의 활성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향후 면역조절 관련 질환 및 항암치료 전략에 나노-코로나의 임상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도 나노약물-줄기세포 결합체를 이용한 폐암 치료 연구로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하신 바 있습니다. 앞서 2011년에는 나노물질의 의학적 안정성에 대한 연구로 국가연구개발사업 우수성과 100선에 이름을 올리셨는데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관련 연구와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그러고 보니 10년 만에 다시 연구 성과를 인정받게 되었는데요. 앞으로 10년 뒤에 또 새로운 연구성과에 대한 수상도 좋겠지만 이런 연구들이 실제로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활용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최근 제 연구주제들은 나노의학의 안정성이 확보되는 방식으로 동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인 2011년의 연구는 나노물질의 친수성과 소수성 표면처리의 차이가 면역세포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하였고, 2018년 논문 역시 폐종양 부위를 추적하는 능력이 뛰어난 줄기세포 표면에 항암 나노약물을 결합하는 전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암을 유발할 수 있는 기존의 줄기세포 유전자 조작 방식을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현재는 그간 해온 연구들의 연장선에서 관절염 등의 염증과 항암 부위에 대해 맞춤형 표적능력과 약물 전달력을 높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노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뜻하지 않은 경로를 통해 우연히 나노 의과학자가 된 경우입니다. 원래는 학부와 대학원 모두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다 박사 과정 시작 시 첫 지도교수님과 소통에 마찰음이 생겨 인접 분야인 나노의학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됐습니다. 마침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연구풍토가 순수학문에서 융합학문으로의 전환적 사고방식 덕분에 새로운 지도 교수님들(바이오 의공학 및 물리학) 덕분에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나노의학은 세계적으로도 생소한 분야인 데다 누구도 잘 몰랐던 주제이기 때문에 연구 자체가 모험과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논란도 많은 학문이었지요. 나노의학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쟁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합니다. 나노 수준의 약물전달체를 이용해 기존 약물의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인 동시에 자칫 예기치 못한 독성 발생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까닭에 그간 많은 후보물질들이 미국 FDA에 승인을 요청했지만 사용이 허가된 사례가 극소수 였는데, 최근 나노약물전달 시스템이 mRNA 백신을 통해 구현되면서 상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향후 더욱 다양한 난치성 질환의 임상에 나노물질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관련 학계의 분위기도 한껏 고무되고 있습니다.

기초연구와 국책연구

강동우 교수는 지난해 3월 분자세포생물학회의 추천을 통해 국책연구본부 신약단 기획전문위원에 위촉됐습니다. 어느새 2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그간의 활동과 소회에 대해 물었습니다.

본연의 연구와 교육에 더해 전문위원으로도 일하시는 데 시간상의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현재까지 9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처음 걱정했던 것만큼 정신없지는 않습니다. 지금이 한창 바쁜 시기를 지난 때여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요. 과제 기획을 주로 맡고 있는 전문위원들은 일단 기획했던 과제가 손을 떠나고 나면 한결 여유가 생기고, 이제 평가위원들과 후속 업무를 맡고 계신 분들이 바빠질 시기가 되지요.

전문위원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연구과제 하나가 기획되기까지 참 많은 노력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점입니다. 전문위원들은 기획을 마친 후부터 사업공고가 뜰 때까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여러 위원들이 오랜 시간 토의를 통해 마련한 과제이지만 외부적인 요인들, 이를 테면 국가 예산 등의 우선순위 문제로 인해 실제 사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이지요. 평가위원들의 과제기획 이후 사업이 성사되기까지는 단장과 본부장 등의 상근 PM, 재단 구성원들, 또 부처 담당자 간에 많은 협의와 조정이 필요한 까닭에 늘 사업공고를 보고 결과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책연구사업(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중간평가입니다. 함께 시작했던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실제로 탈락하는 것을 보면서 같은 입장의 연구자로서 냉엄한 연구 현실을 경험하였습니다. 그간 주로 기초연구사업만 해왔던 터라 국책연구사업의 엄정한 적자생존 방식을 처음 경험하며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 연구자들의 상황도 가슴 아프지만, 살아남은 연구자들도 연구비가 늘어난다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인 까닭에 향후 경쟁형 과제들에 대한 평가 개선이 충분하게 논의되고 정책적으로 반영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일방향과 양방향 조화 필요해”

전문위원 제도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점은?

이미 10년 이상 많은 시행착오 속에 정제되어온 제도인 만큼 시스템 상의 문제점은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다만 국책연구사업의 성격상 대부분 하향식으로 과제가 기획되는데 이 부분에서 상향식 내지 미들업 방식이 절충된다면 이전 보다 혁신적인 과제들이 수립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대개는 수요조사를 통해 현장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일선 연구자들의 참여도가 저조한 까닭에 원하는 만큼의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자들 중에는 수요조사가 진행됐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원인을 생각해본다면 변화가 빠른 국책연구사업의 특성, 선정에 대한 낮은 기대감으로 인한 연구자들의 무관심 등을 꼽을 수 있겠는데요. 이런 요소들을 정확히 파악해 호응도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적극적인 홍보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간의 전문위원 경험을 토대로 연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씀해주세요.

기초연구사업도 국책연구사업도 결국 준비된 연구자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연구역량이 부족하다면 설령 운 좋게 과제를 수주하더라도 지속할 힘이 없습니다. 특히 국책연구사업의 경우는 기술이전이 포함되는 경우도 많아 연구자들의 사업화 능력까지 요구되기 때문에 기회인 동시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필요요소들을 인식하며 꾸준히 연구성과를 준비하신다면 좋은 결과를 얻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수요조사에 대한 부분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되겠어’ 하는 마음에 마지못해 참여하거나, 기존 제안들을 복사-붙이기해 분량만 채우는 경향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은 금방 알아차립니다. 반대로 연구자들의 노력과 수고가 녹아 있는 제안의 경우도 금세 전문위원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수요조사 제안에 대해서는 별도로 검토하는 경우가 많고, 나아가서는 자연스럽게 질문 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기획에 참여하는 뜻밖의 효과도 발생한다는 점을 인지하시고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해주시기면 분명 좋은 결과를 기대하실 수 있을 것 입니다.

About the Interviewee
강동우 전문위원

경희대 및 서울대에서 학부, 석사를 취득하였고 미국 퍼듀대에서 나노의학 연구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브라운대학교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2014년부터 가천대 의과대학 생리학 교실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11년 나노물질의 친수성을 이용한 인체 독성억제기술로 국가연구개발사업 우수성과 100선, 2021년 나노 코로나를 이용한 면역 활성화 원리를 세계 최초로 밝혀낸 공로로 기초연구 우수성과 창출 연구자 10인에 선정되었다.

Asset of life

LP

뉴욕타임즈 선정 올해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은 한물 간 아날로그 기기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재유행하는 현상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강동우 교수의 서재 한켠에 자리잡은 LP들과 턴테이블을 보면 디지털 이분법으로 쉽게 계량화하기 힘든 그의 다양한 질감들이 느껴집니다. 뉴욕타임즈 선정 올해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은 한물 간 아날로그 기기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재유행하는 현상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강동우 교수의 서재 한켠 LP들과 지직거리는 턴테이블에서도 디지털 이분법으로 쉽게 계량화하기 힘든 그의 다양한 질감들이 느껴집니다.

스피커

강동우 교수의 연구실에는 눈에 띄는 2대의 스피커가 있습니다. 하나는 음악을 듣는 용도, 또 하나는 실험용입니다. 그는 요즘 ‘어쿠스틱 사운드 웨이브 테라피’를 연구 중입니다. 음파에 반응하는 나노입자로 오토파지 관련 질환을 치료하겠다는 게 그의 새로운 꿈입니다.

액자

사무실 양쪽 벽면에 걸린 액자들의 분위기가 어딘지 닮은 점이 많아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알고 보니 강동우 교수의 모친이 쓴 글씨들입니다. 취미로 시작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인데 초심자의 눈에도 결코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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