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결정권 보장과 지원이
진정한 사회통합의 기초”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 한양대학교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SSK대형연구센터)
진정한 사회통합의 기초”
한국사회과학연구사업 한양대학교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SSK대형연구센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기결정권’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가치 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제10조의 규정을 바탕으로 국민 모두의 자기결정권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기결정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국사회과학연구(SSK) 지원사업을 통해 비로소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 권리와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는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이 그들입니다.
모든 국민의 존엄과 가치
SSK 사업은 국내 사회과학 연구의 자생력 강화와 차세대 사회과학자 양성을 위한 10년간의 중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이 사업을 통해 국가·사회의 미래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연구집단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대중의 관심권 밖에 머물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주제들에 대한 연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 중 대표적인 연구가 한양대학교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가 수행 중인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사회통합’ 연구입니다.
제철웅 센터장의 설명에 따르면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은 발달장애, 정신장애, 뇌병변장애인과 치매환자처럼 본인 스스로의 의사결정능력을 의심받는 이들을 통칭하는 용어입니다. 판단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사회적 인식 속에 누군가 타인이 결정과 권리 행사를 대신 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온 이들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의사결정능력 장애인 대상의 연구에 천착해온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연구진의 견해는 다릅니다.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은 보호라는 명목 아래 실질적으로는 사회생활에서 배제되어 왔습니다. 약점을 보완하거나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보호의 의미가 실제로는 성인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형태로 작동된 것입니다. 반면 우리 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이 스스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감정과 욕구, 목소리에 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제도적 보완이 이뤄진다면 의사결정능력 장애인들도 충분히 자기 문제해결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자기결정권에 대한 믿음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가 출범한 2013년은 금치산·한정치산자 제도가 성년후견제도로 바뀐 해입니다. 전통적인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제도가 질병과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을 가진 사람들은 판단능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성년후견제도는 보다 폭넓게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새로워진 제도에 발맞춰 향후 보다 진일보한 지원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될 것 역시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성년후견제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던 상황이었습니다.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것도 쉽지 않은 분위기였지요. 그렇게 기업과 공공기관 어디에서도 관심을 주지 않을 당시 감사하게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10년 정도만 연구를 지속한다면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행사에 대한 믿음이 최소한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리를 잡고 시범사업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됐습니다.”
힘들게 얻은 연구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연구진은 무엇보다 세밀한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는 데 특히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SSK 사업 소형 단계에서는 먼저 후견제도를 의사결정지원의 핵심수단으로 보고 상당한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독일, 일본 등의 모델이 우리에게도 적용 가능한지를 분석하는 데 연구력이 집중됐습니다. 동시에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다양한 사회통합 방안에 대한 기초연구가 이어졌습니다.
중형 단계에서는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의사결정지원제도의 이론화와 함께 제도 마련에 필요한 인적, 물적 기반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이를 통해 지원의사결정제도가 장애인을 위해 제공되는 개인별 지원수단,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지원수단, 그리고 개인별 지원과 보편적 지원이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조적 수단 등으로 구성되어야 함을 규명하는 연구 성과들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론화에서 제도화로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의 연구는 비단 새로운 지식의 창출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실천 가능한 정책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병행하였습니다. 국회와 행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공공과 민간 영역의 기관들과 함께하는 토론회, 학술대회, 시범사업을 통해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지원의사결정제도의 한국적 모델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가 가동됐습니다.
이들의 노력은 2014년 제정된 발달장애인법에 공공후견제도가 도입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후견인이 일시적이고 특정한 사무에 대해서만 대리권을 보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의 성년후견제도가 의사결정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던 부분을 보완한 것입니다. 탈시설 장애인의 의사결정 지원제도인 공공후견제도는 현재 치매 환자로도 대상이 확대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요양시설에 입원 중인 중증 정신장애인들 가운데 친족이 없는 이들도 공공후견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시행 범위의 확대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는 데도 크게 기여 하였습니다.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비자발적인 입원 요건을 강화해 강제입원을 최후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성년후견제도의 후속작업으로 논의되고 있는 민사소송법 개정, 학대피해노인의 권리보호 및 지원을 비롯해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되는 아동의 지원법 등 아동과 관련한 여러 입법안 마련에서도 탄탄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의 연구는 6년간의 소형과 중형 단계를 마무리하고 현재 대형 단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형 단계에서는 앞서 소형·중형 단계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본격적인 ‘한국형 지원의사결정제도’의 제도화와 함께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자기결정권 행사를 지지하고 의사결정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실무 가이드 제시가 중점 추진되고 있습니다. 급성기 혹은 위기 상태의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이 잠시 안정을 취하며 사회 복귀와 자발적 입원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당사자 쉼터의 개소도 대형 단계의 연구목표 중 하나입니다.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 등의 위기쉼터를 벤치마킹한 시설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되고 있습니다.
사회통합 전문 연구소를 향해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재산관리를 지원하는 공공신탁서비스 제도의 도입도 대형 단계의 중요한 실천과제 중 하나입니다. 재산관리가 어려운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재산을 국가나 공공기관이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관리하고, 당사자들의 욕구와 희망에 맞게끔 안정적으로 지출되게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공공신탁서비스는 선진국의 의사결정능력 장애인 가족이 자신들의 사후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게 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제도입니다. 싱가포르는 이미 10년 전부터 발달장애인과 치매 환자들에게 공공신탁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홍콩,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도 수조 원의 자산이 관련 제도를 통해 운용되고 있습니다.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는 2016년부터 한국자폐사랑협회와 협력해 관련 시범사업에 들어가 현재 관리하는 재산이 수백 억 원에 이를 만큼 안정적인 도입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정부에 제도 도입을 지속적으로 건의한 결과, 올해부터 국민연금관리공단과 함께 국가 차원의 시범사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척박한 환경에서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사회통합과 한국형 지원의사결정제도 연구에 매달려온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의 노력은 결국 이제 누구도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자기결정권을 지원해야 한다는 공감대 역시 전문가들 사이에 깊게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 연구진들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속에 이제 간신히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됐다”며“남은 SSK 사업을 잘 마무리한 뒤에도 의사결정능력 장애인을 비롯해 아동,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 전반의 인권실현과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연구의 지속을 통해 활발히 정책제안을 제시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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