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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사회 패러독스
덕성여자대학교 사회학전공 김종길 교수

지식이 중요하지 않은 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학계와 공공부문 그리고 민간부문을 가리지 않고 지식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지식혁명이나 지식사회와 같은 용어가 시대의 표제어로 인구에 회자된 때는 없었다. 누구에게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대중의 지식 보유 수준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어떤 이는 미래에는 지식과 아이디어의 힘이 전통사회의 군대와 같은 권세를 갖게 될 것으로 말하고 있고, 또 다른 이는 머잖아 ‘선진국, 개도국, 후진국’이라는 말 대신에 ‘지식(smart) 국가, 지식 우위(smarter) 국가, 최고(smartest) 지식 국가’라는 구분이 사회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예단한다.

그런데 유념할 점은 지식사회가 단순히 지식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광범위하게 보급된, 그래서 이에 대한 대중의 접근이 손쉬워진 사회만을 함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식사회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지식 증가에 비례해 무지(non-knowledge), 위험, 공포, 불확실성도 증가하는 패러독스(paradox)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근대 이후 사회발전을 추동해 온 핵심 동력은 과학지식이었다. 당대를 풍미했던 내로라하는 학자들은 한결같이 과학지식이야말로 대중의 무지몽매를 바로잡을 수 있는 교정자이자 사회발전의 열쇠라고 설파했다. 반면에 무지는 참된 지식으로부터의 일탈 또는 이해관계에 종속된 이데올로기의 변종으로 평가 절하되었다.
그런데 계몽주의 이후 광범위하게 확산된 이 같은 지식 낙관론은 최근 과학지식의 타당성과 효과성을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극적인 반전을 맞았다. 오존층 파괴, 지구온난화, 유전자조작생명체의 출현과 확산 등에서 보듯 과학적 진보와 과학지식의 유용성을 의심케 하는 생태계 위기의 징후가 속출하고 있으며, 과학지식이 증가하는 것에 비례하여 무지도 확산하는 역설이 펼쳐지고 있다. 오늘날 무지가 증가하는 현상은 우리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실상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 이른바 ‘인지된 무지’의 측면과 우리가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덜 알게 되는 것, 즉 ‘미인지된 무지’의 측면에서 두루 목도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래전부터 지식사회의 출현을 예고해 온 이들조차도 무지 현상의 부상과 확산이 가져올 새로운 도전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과학지식과 길항관계에 있는 일상 지식, 미지, 불확실성, 비가시성, 복잡성 등의 어젠다를 새롭게 들추어내고 있다.

▲ 생명복제의 길을 연 복제양 돌리, 출처: 위키피디아

지식사회의 또 다른 패러독스는 위험의 제거와 최소화에 일조했던 근대과학의 성취가 되레 새로운 위험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산업화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덮쳤던 질병, 사망, 노령, 산업재해, 실업, 빈곤과 같은 전통적 사회위험은 물론이고 노동시장의 불안정, 가족해체, 노인부양문제와 같은 새로운 사회위험이 엄습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현대인이 대도시적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각종의 대형 재난도 심각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저에는 그간 인간 삶의 편리와 윤택을 위해 인간이 만들었던 과학기술이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다.

산업화 초기만 해도 위험은 개인적·국지적·비구조적인 성격을 띠었고 대개는 잠재적 위협 수준에 머물러 있었는데 과학기술과 과학지식을 근간으로 한 지식사회가 부상하면서 위험과 불확실성의 원천이 다양해졌고 위험 잠재력도 덩달아 커졌다. 홍수나 가뭄 또는 이상기후와 같은 자연적 위험의 다수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유발되거나 악화한 측면이 크며, 사회적 위험의 다수도 새로운 기술 개발의 맥락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술위험 중 일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예 알지를 못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에 대해서는 알기는 하지만 그 정도와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어떤 경우든지 분명한 사실은 널리 퍼져있는 위험에 대해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을 뿐, 총체적 위험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계측해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가공된 불확실성의 세계’가 쏟아내는 위험 앞에 과학지식의 효용성과 정당성에 대한 회의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과학이 오히려 위험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드세다.

▲ 현대인의 공포와 불안을 표현한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위험의 내용과 범위의 정확한 예측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대중의 불안과 공포도 확산하고 있다. 정확한 발병경로와 치료방법이 밝혀지지 않은 광우병과 같은 신종 질병 공포나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술의 적용에 따른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등이 좋은 예이다. 이런 류의 공포는 천재지변보다는 오히려 효율성과 합리성을 좇는 인간과 제도의 탐욕에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그런가 하면 작은 위험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더 큰 위험이 불거지거나 위험을 예방할 목적의 안전장치가 되레 새로운 위험원이 되어 공포를 유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범죄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거리와 동네 골목 곳곳에 설치한 CCTV가 주민감시와 사생활 노출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위험을 만들어 내고 이는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기 일쑤이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119구조대, 경찰력, 행정지도, 안전교육 또한 현존하는 사회위험 요소들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위험의 심각성을 우리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처럼 지금까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과학지식이 위험과 무지와 공포를 증가시키는 역설이 펼쳐지면서 지식의 생산과 검증을 자기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엘리트 지식인과 전문가의 손에만 맡겨 둘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드높다. 지식 생산과 활용 및 검증 과정에서 전문가와 대중 간, 학계와 정부와 시민사회 간 소통과 비판 및 견제가 강화되고 제도화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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