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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고전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이세동 교수

스티브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의 결합을 강조할 즈음, 늘 인문학의 위기를 부르짖던 이 땅에 잠시 인문학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대학에는 기초교양(Liberal Arts) 과목들이 증설되었고 문화센터들에는 인문학 강좌가 넘쳐났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히말라야 일대를 장기간 여행하였다거나 선불교 수행을 한 인문학적 이력이 있다하더라도, 애플의 창업자로서 그가 강조한 ‘리버럴 아츠’는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인문학일 뿐이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인문학의 들뜬 기운은 가라앉았고, 사회적 수요가 빈약하다는 이유로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문을 닫는 현실에서 우리는 또 다시 인문학의 위기를 말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조선의 선비들은 누구나 『사서삼경』을 읽었고, 그 책들은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들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고민하던 사람이 과거에 급제하면 그 책들의 가르침대로 경륜을 펼치는 관리가 되었고, 낙방하면 돌아와 그 책들의 가르침대로 올곧게 살아가는 초야의 선비가 되었다. 조선이 그렇게 아름다운 왕조가 아니었다거나 그렇게 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논의는 논외의 문제다. 적어도 그 책들이 주는 삶에 대한 통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서삼경』은 그 시대의 교과서였고, 졸업하고 나면 분리수거 되는 오늘날의 교과서와는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사서삼경』은 당대성(當代性)을 초월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고전이 된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이 『사서삼경』을 품었던 그 자리에 현대인들은 자기계발서들을 품고 산다. 인문학도 성공의 인문학, 경영의 인문학, 리더의 인문학 따위로 대중화의 길을 달려가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들을 열심히 읽으며 갈고 닦은 능력으로 남보다 풍요롭게 사는 성공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여유로울 수 있지만 풍족하면 더 풍족해지기 위해, 성공하면 더 큰 성공을 위해 다시 달려간다. 온 세상이 더 나아가려고 애쓰는데 나만 서 있으면 퇴보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뒤쳐짐에 대한 불안으로 바쁘게 자신을 몰아가다보면 지치고 피곤해진다. 그래서 가끔씩은 힐링이 필요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이야말로 지친 나의 심신을 치유해 줄 것만 같다. 인문학 강좌들을 찾아다니면서 강사가 요약해주는 고전의 명구 몇 마디에 격한 공감을 보내고 돌아온다. 하룻밤 자고나면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그래도 잠시 힐링이 되었다고 자위하면서 다시 아파트 평수를 늘릴 고민을 한다. 이것이 인문학 대중화의 현주소다.

인문학은 고전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전은 교양이나 지식을 쌓는 책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은 그런 책이 아니다. 아니, 그런 책은 고전이 될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고전에는 당대성을 초월하는 삶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한다. 이천 년 전 중국에서 만들어진 고전이 21세기 한국에서도 유의미하게 다가와야 고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가 퇴근해 돌아와 ‘사람이 다쳤느냐?’ 하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다.” 마구간과 말이 현대의 실용과 거리가 멀다고 하여 이 문장의 인본주의적 관점이 퇴색하지는 않는다. 『맹자』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다. 왕이 ‘노인장께서 천 리 먼 길을 오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맹자가, ‘왕은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천여 년 전의 이 대화는 이익과 옳음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보편의 가치를 언급한 저술이라 하더라도 독자를 감동시키지 못하면 고전이 되기에 부족하다. 감동이 없는 독서는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뿐이지만 감동이 있는 독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고전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로되 민감한 자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한 마디 말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자기계발서들이 고전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성공을 위한 욕망을 부추길 뿐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난 뒤 가슴의 울림을 들을 수 있는 책이 고전인 것이다.

이런 울림이 있는 책들은 느리게 읽어야 한다. 『논어』라는 책을 어떤 이유로 반드시 읽어야 한다면 하룻밤만 시간을 내어도 다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고전을 이렇게 읽어서는 안 된다. 절실하지 않으면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가슴을 울리는 구절을 만났을 때 책을 덮고 나머지는 다음에 읽어도 좋다. 『논어』는 읽을 때마다 다르다는 말이 있다. 20대에 읽은 그 책을 50대에 다시 읽을 때 다른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은 늘 곁에 두고 읽고 또 읽는 것이 좋다. 고전을 읽지 않고도 살 수 있지만,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은 삶의 질이 다르다. 잠시 달려가던 길을 멈추고 고전을 느리게 읽으며 가슴의 울림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인문학의 진정한 대중화가 이루어진다. 코로나 시국의 격리가 혹 이 느림과 울림의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난망한 일일까? 고전을 읽으며 감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진정한 인문학 열풍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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