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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악마들”의 이야기?
- 역사의 대중화와 역사 정치
한남대학교 사학과 이진모 교수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흥미롭게도 홀로코스트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 명분으로 우크라이나에 있는 나치 협력자들의 청산을 언급했고, 우크라이나와 서방 진영은 푸틴을 히틀러에 빗대기도 한다.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선악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홀로코스트와 히틀러는 극도의 대비 효과를 주는 유용한 역사 주제인 듯하다.
홀로코스트가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이미 오래지만, 우리나라에서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이나 수많은 대중서에서 보이는 히틀러와 홀로코스트 해석은 이런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한 “악마화”이다. 그리고 할리우드식 카타르시스가 뒤이어진다.

사실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 뿐 아니라 가해자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들이 국내에 소개된 지 수십 년이다. 홀로코스트 연구의 “우주”라고 일컬어지는 유대인 역사가 라울 힐베르크 Raul Hilberg의 명저 『홀로코스트 – 유럽 유대인의 파괴』 이래 홀로코스트 집행자는 “미친 독일인”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연구 성과가 소개된 지도 20년 이상이 지났다. 하지만 대중적 역사 담론에서는 그 심층적인 해석과 현재적 의미, 유사한 비극의 재발가능성에 대한 깊은 우려 등은 찾아보기 힘들다. 피해자, 협력자, 방관자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이다.

▲ 히틀러 사진

▲ 부헨발트수용소-미국홀로코스트박물관

홀로코스트 생존자 쁘리모 레비 Primo Levi는 죽음의 수용소 내부에서 펼쳐진 유대인들, 즉 피해자들이 펼치는 막장 드라마를 접하면서 “이것이 인간인가” 절규한다. 구사일생으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후, 그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바깥 세계에 전해주고 깨우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인간을 증언하고자 하는 신념 하나를 꼭 붙들고 살아가던 그는 1987년 갑작스럽게 자신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재일교포 작가 서경식은 이탈리아 토리노로 날아가 레비의 흔적을 누비며, 그가 죽은 이유를 묻고 또 묻는다. 나치의 범죄를 상대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 때문이었을까? 여전히 계속되는 전쟁과 폭력, 그에 대한 정당화 때문에 결국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은 것일까? 수용소 밖의 사회도 수용소 안과 다르지 않아 허무에 빠진 것일까? 혹은 과거사에 눈을 감고 본인의 절규와 경고에 대해 무관심한 많은 사람들을 보고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복잡 다양한 원인을 갖고 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 수많은 협력자와 방관자들이 함께 만들어간 비극, 홀로코스트 동안 펼쳐진 몸서리쳐지는 역사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레비의 절망과 자살이, 서경식이 던지는 질문이 가슴 속 깊은 곳에 비수처럼 꽂힌다.
학생들에게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로 “정체성 찾기”와 “역사적 비판”을 이야기한다.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작업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현실 속에서 “정체성 찾기”와 “정체성 만들기”의 경계를 찾기는 지난한 작업이라고 고백한다.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적 역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가능할까? 현대 유럽사에서 이른바 “독일 문제”가 갖는 현실정치적 무게감, 팔레스타인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을 서슴치 않는 이스라엘의 피해자 코스프레,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미국의 역사 정치를 떠올릴 때, 홀로코스트를 통해 우리가 성찰해야 할 인간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서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쁘리모 레비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명쾌했을 것이다. 고난에 대한 인간성의 승리나 구제의 서사, 오디쎄우스의 개선에 관한 서사 ...... 우리는 대부분 스스로의 천박함과 나약함 때문에 그 단순 명쾌함에 매달리려고 한다. 하지만 옅은 어둠 속 공간에 몸을 던진 쁘리모 레비는, 자기 자신의 육체를 돌바닥에 내동댕이침으로써 우리의 천박함을 산산이 깨부수었다. 냉혈이나 잔혹은 지금도 세계를 덮고 있다. 인간이란 척도는 이미 파괴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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