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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대전환의 시대
K-신약의 미래를 꿈꾸다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신약단 오두병 단장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추석 연휴 막바지인 지난 9월 12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최근 미국이 강력하게 추진 중인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의 자국 내 생산 강화 움직임이 바이오 분야까지 확대된 것입니다. 오두병 신약단장은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며 “세부사항이 어떻게 될지 좀 더 지켜봐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아직은 조심스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구원 때부터 익히 강조해온 ‘바이오 대전환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생명공학육성법과 바이오헬스 혁신

오두병 신임 신약단장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전략본부장 시절인 2020년 생명공학육성법 개정 등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바 있습니다. 생명공학육성법은 국내 바이오 분야의 최상위 법률로 이번 개정을 통해 반도체, 자동차와 함께 국가 미래 성장동력 빅(Big3)로 꼽혀온 바이오헬스 분야의 혁신적인 R&D 환경 조성과 사업화 역량 강화 등을 전주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먼저 한국연구재단 신약단장에 부임하신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 신약 분야 국책연구사업들의 기획, 평가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잘 수행해야겠다는 책임감과 함께 큰 심리적 압박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는 미·중 기술 패권경쟁, 감염병 위기, 디지털 전환 등으로 인한 바이오 대전환 시기라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의 바이오 이니셔티브 서명으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에 많은 투자를 해온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중국에 집중돼 있는 바이오 생산 기지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의도인 만큼 위기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기회가 될지는 향후의 구체적인 세부내용을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의 바이오헬스 산업이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기 쉽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이제 선도적 개척자(first mover)로 거듭나기 위한 체질 개선이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약 단장의 임무를 잘 수행해야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약단장에 지원하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국내 바이오 분야의 대표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여 간 연구전략본부장직을 수행했습니다. 덕분에 국가 R&D 육성의 기본계획, 중장기 투자전략 수립, 연구사업 기획과 예산 확보 등 다양한 업무들을 경험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국가 과학기술 진흥에서 한국연구재단이 맡고 있는 역할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상히 알게 되었습니다. 다가올 바이오 대전환의 시대를 준비하는 데 있어 한국연구재단과 신약단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만큼 그간 개인적으로도 많은 힘을 쏟아온 신약 개발 분야에 지속적으로 기여하는 동시에 저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생명연(硏) 연구전략본부장과 연구재단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시며 생명공학육성법 개정 등에 기여하신 공로로 과학의날 대통령표창을 받으셨습니다. 국가 바이오헬스 정책 전반에 대해 이해가 깊으셨던 만큼 신약단의 업무 파악도 빠르셨으리라 여겨집니다.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에 기여한 공로로 제가 대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지만 사실 가장 큰 공은 과기정통부와 국가생명공학 정책연구센터에 돌려야 마땅합니다. 저는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상위 부서장으로 국회 토론회와 언론 홍보 등의 앞자리에 서다 보니 돋보이게 된 것 뿐입니다.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의 이면에서는 특히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 동료들이 정말 많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생명공학육성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오랫동안 계류되는 등 어려움도 많았는데 여러분들의 큰 수고와 도움 덕분에 무사히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힘은 들었지만 많은 분들과 함께 큰 목표를 준비하고 대응하며 결과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과정이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인공지능 기반 첨단바이오

이번 미국의 바이오 행정명령에 앞서 우리나라 역시 지난 7월말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백신 등 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투자를 가속화하는 한편 바이오헬스 산업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규제 개혁과 혁신 인프라 조성을 통해 국민 건강증진과 신성장동력 확보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기존 제도로 판단이 어려웠던 인공지능 기반 첨단바이오 등에 대한 규제 혁파입니다.

책임연구원으로 소속되셨던 노화융합연구단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인류는 무병장수를 꿈꾸지만 현실은 ‘유병장수’에 더 가깝습니다.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82.7년인데, 건강수명은 64.4년으로 생애 마지막 18년가량을 아픈 상태로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노화는 치매, 당뇨, 심혈관 질환 등 여러 노인성 질환들의 공통 위험요소이기 때문에 개별 노인성 질환을 치료하는 것보다 노화를 제어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전략입니다. 그간 혁신적인 노화 연구 성과들을 계기로 국제보건기구(WHO)가 질병코드(MG2A)를 부여하면서 노화는 이제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식하면 장수한다’는 속설은 칼로리 제한이 효모, 곤충, 어류, 영장류를 포함한 포유류까지 다양한 종의 평균수명과 최대수명을 모두 증가시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칼로리 제한을 모사하는 약물 개발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젊은 피 수혈이 노화를 되돌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14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 연구진이 늙은 쥐와 어린 쥐의 혈관을 연결해 늙은 쥐의 근육과 뇌가 회춘하는 현상을 보고하면서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젊은 피에 존재하는 회춘 물질을 찾기 위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화세포 제거로 노화를 제어하는 약물 개발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최근에는 50대 성인의 피부세포를 20대 초반의 피부세포로 되돌리는 역노화에 성공한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같은 억만장자들이 투자한 스타트업 알토스랩에서는 현재 3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세계적인 석학들을 중심으로 이런 역노화 치료제 개발이 한창입니다.

우리나라도 노화 연구가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 생각하던 차에 연구전략본부장 시절에 NST 융합연구사업으로 노화융합 연구단 기획을 추진하였고, 다행스럽게도 융합연구단으로 선정되어서 올해 5월부터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그 시점에 여러 대외적인 직책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저 역시 노화융합연구단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바이오의약품 성능 향상 연구와 성체줄기세포를 상처 부위로 집중 이동시켜 효과적으로 조직을 재생시키는 유전자 전달 기술 개발을 연구했습니다.

생명연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KOBIC)의 바이오 데이터 스테이션 구축사업에 대해서도 소개 해주세요.

제가 연구전략본부장직을 수행할 당시에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는 연구전략본부의 산하 조직이었습니다. 2019년부터 다음해 말까지 잠시 센터장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제가 책임자로 겸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KOBIC은 기존 연구사업의 일몰과 함께 새로운 임무를 탐색 중이었습니다. 마침 관련 정부 부처에서도 국가 연구사업으로 생산된 바이오 R&D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 활용할 수 있는 ‘국가 바이오데이터 스테이션’ 사업을 기획 중이었고, 이 역할을 수행할 핵심기관으로 생명연 KOBIC과 KISTI의 슈퍼컴퓨팅응용센터가 지목되었습니다. 현재 새 정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로 바이오 대전환 대응에 필요한 디지털 바이오 육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범국가적인 바이오 데이터 축적·공유·활용 플랫폼 구축과 고도화의 핵심으로 바이오데이터 스테이션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센터장 시절 기획했던 일들이 새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가 되는 것을 보게 되어 감회가 무척 새롭습니다.

K-진단 이어 ‘K-신약’으로

연구재단 신약단장에 부임하신 지 3개월가량이 지났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선임 소식을 듣고 나서 미처 임명장도 받지 못한 채 영국 출장을 떠났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디지털바이오 포럼 참석과 관련기관 업무 협의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박 5일의 바쁜 일정으로 다녀온 뒤에는 그 사이 밀려 있던 업무 처리로 지금까지 분주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간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대해 적잖은 경험이 있었던 까닭에 무리 없이 신약단의 업무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었지만 한국연구재단의 특성상 긴급을 요하는 일들이 많아 평일에는 꽤 많은 정신적 압박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가급적 더 신경 써서 재충전을 하려고 합니다. 앞서 일해오신 선배 단장님들로부터 연말로 갈수록 더 바빠진다는 말씀을 많이 들어서 그에 대비해서라도 시간과 스트레스 관리에 만전을 기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최근 신약단의 주요 사업과 이슈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신약단은 크게 신약, 줄기세포·재생의료, 감염병의 세 가지 분야에서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 기초·기반 구축 ▲첨단 세포치료제 및 재생의료기술 개발 ▲미래 신변종 감염병 대응 핵심원천기술 개발을 중장기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새 정부 국정과제인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방안을 통해 디지털 바이오 산업의 육성을 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신약단에서도 디지털바이오 혁신전략 수립과 이를 위한 연구사업 기획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추진되던 인공지능 활용 혁신신약 연구개발을 비롯해 줄기세포, 오가노이드, 인공혈액, 혈액암 치료에서 좋은 성과를 낳고 있는 CAR-T 세포 치료를 고형암 분야로 확대하는 등의 첨단재생의료 및 바이오융복합 연구사업들의 기획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2의 코로나19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신변종 감염병 기초·원천기술 로드맵과 주요 핵심기술 개발 사업의 기획도 함께 추진되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은 평균 10년 이상 막대한 연구비와 인력의 투입이 필요한 분야로 관련 정책과 과제 기획 역시 중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할 듯합니다. 연구재단 신약단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말씀하신 것처럼 신약 개발은 긴 시간과 거액의 연구비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그래서 반도체에 무어의 법칙이 있다면, 신약 개발에는 ‘이룸의 법칙’이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이룸(Eroom)은 무어(Moore)의 철자를 거꾸로 읽은 것인데요. 반도체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과 달리 신약 연구개발의 생산성은 거꾸로 감소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지난 40년 간 신약 R&D의 투자 대비 신약 승인 수는 10억 달러 당 30분의 1로 감소했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신약 개발의 고비용·장기간·낮은 성공률이란 장벽을 돌파하기 위한 연구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신약단 역시 이런 디지털 기반 첨단 연구들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2년의 임기 동안 꼭 이루시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지난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우리나라가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기술로 ‘K-진단’이란 명성을 쌓은 것처럼 신약 분야에서도 ‘K-신약’을 탄생시키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의 신약 연구개발 역량이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 퍼스트 무버로 도약하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진단기술도 예전에는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부족했지만 신종플루와 메르스 등의 감염병 위기를 통해 역량을 쌓은 끝에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관련 기업들도 작년에만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릴 만큼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향후 신약 부문에서도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기본 역량에 해당하는 플랫폼 기술의 확보와 다양한 후보물질 파이프라인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작년에 출범한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이 전임상과 임상에 이르는 파이프라인 지원을 담당하면서 연구재단 신약단은 신약 플랫폼 기술과 첨단의약품 개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습니다. 이를 기회로 mRNA 백신처럼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신약 플랫폼 기술, CAR-T와 같은 획기적인 첨단의약품 개발의 지원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의 K-신약들이 대거 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보다 많은 환자들이 첨단 신약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도 힘쓰고자 합니다.

About the Interviewee
오두병 신약단장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생명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 박사후 연구원과 기업 연구원을 거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당단백질의약품의 당사슬 분석 및 리모델링, 줄기세포의 이동 능력 향상 기술 개발 등에 주력해 왔다.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전략본부장, 국가생명연구자원정보센터장, UNIST 이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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