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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이 기초연구의 본질…
몰입 여건 조성에 힘쓸 것”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 의약학단 김성준 단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009년 UN 보고서가 예고한 ‘호모 헌드레드’ 시대가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불과 한 세기만에 두 배 가까이 평균수명이 늘 만큼 지구촌 전반의 영양 상태와 공중보건 환경이 크게 개선된 덕분입니다. 하지만 다가오는 백세 시대의 핵심은 수명 연장이 아닌 삶의 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년까지 건강하고 독립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다면 인류의 보편적인 장수는 자칫 축복보다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초고령 사회로 향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간의 평균수명 연장을 견인해 온 의약학에 ‘건강수명’의 또 다른 기대를 더하게 되는 시기, 김성준 신임 의약학단장을 만나 국내 의약학 기초연구의 주요 과제와 미래를 가늠해보았습니다.

“연결이 창의성 핵심”

지난 6월 새로 부임한 김성준 의약학단장은 서울의대 생리학교실을 이끌고 있는 의사과학자입니다. 그는 인체 장기와 조직 중 건강수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심혈관을 연구해 왔습니다. 심장과 혈관의 수축조절 기능에 대한 이해를 통해 고혈압, 심부전, 부정맥 등의 질환을 세포 수준에서 극복하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온통로 전기생리학의 영역 확대에도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웹진 독자들에게 이온통로 전기생리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응급실에서 볼 수 있는 심전도는 익히 잘 아시리라 여겨집니다. 심장 박동과 관련한 심근의 전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심장뿐만 아니라 인체의 장기와 근육들은 모두 이런 전기신호로 작동합니다. 여기서 일종의 스위치 역할을 하는 세포막이 바로 세포 내외부의 이온 이동을 조절하는 이온통로(ion channel)입니다. 이온통로 전기생리학은 이들 나노 수준의 생체 스위치인 이온통로가 어떻게 연결되고 상호작용을 하는지, 또한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질환으로 발전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부정맥입니다. 심장의 수축과 확장은 심근 세포의 반복적인 전기신호 발생과 자극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를 조절하는 이온통로에 이상이 생겨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심혈관계 이온통로 연구는 최근 줄기세포 연구와 결합하며 한층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맞고 있기도 합니다. 인체 조직을 구하기 어려워 동물 심장과 혈관으로 대신하던 실험을 이제 환자 혈액에서 분화시킨 심장세포로 직접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특히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는 의약품 개발의 관문 중 하나인 독성연구에 이미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 더 큰 기여가 기대됩니다.

이온통로 연구 범위를 전문 분야인 심혈관에서 면역세포로도 넓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면역학을 연구하는 동료 교수님과 이런저런 학문 동향을 이야기하다 관련 연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항체를 만드는 면역세포는 전기적인 자극과 무관할 것 같지만 뜻밖에도 다른 세포들처럼 이온통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높아진 관심에 비해 아직 국제적으로도 연구가 많지 않은 상황입니다. 제 전문 분야인 심혈관 이온통로 연구를 좀 더 확장하면 면역학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관심사인 피부장벽을 이루는 세포들이나 분비샘 (췌장, 전립샘)의 기능 등에 관한 연구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자유롭게 정보와 의견을 나누던 게 융합연구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격의 없고 일상적인 교류가 협력연구 착수에 더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창의성의 핵심은 연결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도 종종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분야의 교차점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몇 명만 소규모로 모여도 연결의 범위가 폭발적으로 넓어지는 데다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각자의 궁금증을 해결하며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분위기 덕분일 텐데요. 연구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런 다이내믹함은 제가 생리학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실험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바로바로 확인하고 또 다른 대응을 준비하며 결과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과정이 무척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굳은 심지로 매진할 수 있도록”

mRNA 원천기술로 신속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한 독일 바이오엔테크의 창업자 우우르 샤힌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는 의사 과학자들입니다. 의대 졸업 후 임상의 대신 연구원의 삶을 선택한 부부는 결혼식도 실험실에서 가운을 입고 할 만큼 연구에 푹 빠진 이들이라고 하는데요. 백신 개발로 막대한 부와 명성을 얻은 후에도 이들은 여전히 자전거로 집과 실험실을 오가며 필생의 업으로 여겨온 항암 면역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기초의학에 매진하시게 된 계기를 좀 더 소개해주세요.

어릴 때부터 생물이나 물리, 화학 같은 자연과학을 좋아했습니다. 의대에 진학한 후에도 기초의학 연구자의 미래를 계속 생각했습니다. 특히 의대 수업 중 생리학은 인체 기능에 대한 다차원적 이해와 통합이 중심인데, 이런 접근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처음 기초의학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의 분위기 덕분이었습니다. 비록 연구비는 부족했지만, 요즘처럼 지나치게 가시적인 성과에 내몰리지 않고 스스로 연구할 기회를 찾는 자율성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임상의가 된 동기들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매 순간 내 삶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연구재단 의약학단장에 지원하시게 된 동기는?

대학에서는 연구와 교육 외에도 소위 보직이라는 이름으로 기관 운영과 구성원들의 역량 향상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이 같은 일련의 행정 업무를 위해 동료 직원들과 크고 작은 임무를 수행하며 기획하고, 관리하고, 평가하는 일들이 제 적성과도 꽤 잘 맞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의약학단장 공모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이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문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연구재단에서 대한민국 의약학 기초연구의 큰 틀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습니다.

단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람직한 의약학 기초연구 지원의 방향을 말씀해주세요.

이는 그간 오랜 시간 연구재단이 고민해온 부분이고, 그를 바탕으로 구축된 지원 사업들이 이미 다양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의약학단장 부임 초기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도 기초과학 연구자들의 여러 고충과 애로사항이 매우 꼼꼼하게 사업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지원의 방향에 대해서는 의약학 역시 다른 학문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받을 만한 주제’, ‘정말 필요한 연구자’ 그리고 ‘적시성’이 가장 중요한 방향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기초연구 분야가 전통적인 실험실 중심의 기초연구뿐만 아니라 산업과 사회 적용에 대해서도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가시적 성과에 앞서서, 지금은 더욱 진지하게 창의-도전적 가설을 탐구하는 기초연구에 관심을 둬야 할 때라 여겨집니다. 기초연구에 힘쓰는 연구자들이 시대적 분위기에 휩쓸려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보다 굳은 심지로 본연의 사명에 매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역할을 맡고 싶습니다.

“Discovery is our business”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의사과학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초기 방역의 성공과 달리 게임체인저인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서 뒤처지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의사과학자 양성에 소홀했던 점을 들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서비스를 자랑하지만 기초의약학과 임상, 바이오산업의 중개연구를 담당할 의사과학자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의약학단이 추진 중인 역점 과제들을 소개해주세요.

최근 의약학을 비롯한 연구재단 기초연구 지원 분야의 가장 역점적인 사업은 수 년 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전면 시행에 들어간 ‘학문별 지원체계’입니다. 해당 학문 분야의 환경과 여건을 잘 아는 연구자들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스스로 연구체계와 발전 방향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기초연구본부 산하 연구단들이 각 분야 연구자들과 소통하며 소액·장기 연구, 소규모 집단연구 등과 같은 과제들의 포트폴리오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 자율권을 기초의약학계가 어떻게 하면 가장 적절히 행사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임기 중 꼭 이루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학문별 지원체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예산이 좀 더 허락된다면 현재의 기초연구실 사업을 보다 확대해 장기적인 의약학 협력연구를 가능케 할 의약학기초연구실(MRL), 탑다운(Top-down)이 아닌 바텀업(Bottom-up) 형태의 상향식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 등을 우리 의약학단 고유의 세부사업으로 기획해보고자 합니다. 이와 함께 국내 의약학 기초연구의 허리가 될 신진 의사과학자 육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원생 수에 따른 차등지원, 3~4명 규모의 공동연구 과제 확대 등 연구에 소질이 있는 의대생들이 의사과학자의 길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도 함께 탐색 중입니다.
한국연구재단처럼 의약학 기초연구에서 중요한 지원군 역할을 맡고 있는 보건산업진흥원(KHIDI)과 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것도 큰 관심사입니다. 보건산업진흥원에서는 현재 사회적 요구나 산업적 수요 중심의 기획과제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양 기관의 협조와 연계는 특히 새 정부의 국정과제가 된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과 임무중심형 의학 연구에 긴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사안인 만큼 의약학단장의 임기와 상관없이 효율적인 범부처 연구지원 시스템의 발전을 위해 힘쓸 계획입니다.

끝으로 재단 구성원과 연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연구재단 첫 회의 때 인사말로, 대전역에 내리면서 ‘대한민국 과학수도’라는 문구를 보고 큰 자부심이 느껴지더란 소감을 전한 바 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은 특히 대한민국 과학수도에서도 기초과학 연구자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연구재단이 수량과 수질 모두에서 더욱 만족스러운 기초연구의 상수원이 되는 데 기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중 수량에 해당하는 예산의 확보는 기본적으로 기초연구의 중요성에 대한 관련 부처들의 이해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견이 곧 우리의 일(Discovery is our business)”이라는 제 연구실의 모토를 다시 한번 새기면서, 순수한 발견의 기쁨을 지원하는 것이 국가 미래의 중요한 원동력임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지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연구비가 보다 투명하게 운용되고 멋진 성과로 이어져 국민들께 자부심이 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About the Interviewee
김성준 의약학단장

서울대학교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생리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생리학연구소 연구원과 성균관대 생리학교실 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서울대 생리학교실 교수로 일하고 있다. 동대학의 연구부학장과 학생부학장, 산학협력단분원장 외에도 기초기술연구회 기획평가전문위원, 연구재단 의약학단 전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현재 대한생리학회 국제이사, 한국평활근학회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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