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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분의 1초 펨토초
레이저가 만드는 우주시대의 경쟁력

2021 젊은과학자상 대통령상 수상자 시리즈③
KAIST 기계공학과 김영진 부교수

사람이 생각하고 표현할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는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눈 깜짝 할 사이’ 또는 ‘빛의 속도’를 떠올릴 텐데요. 1000조분의 1초의 빠르기로 진동하는 ‘펨토초 레이저’ 앞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빛의 속도도 거북이처럼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세상에 처음 존재가 밝혀진 ‘펨토초 레이저’는 수백 킬로미터(㎞)의 거리에서 1 나노미터(㎚)의 차이까지 정밀 측정이 가능해 단시간에 측정의 최강자로 부상했습니다. 또 보통의 레이저는 파장이 하나인 것과 달리 자외선부터 극자외선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합니다. 미세먼지 측정은 물론 지구 온난화 모니터링까지 우주분야에서의 활약도 두드러집니다. 대학원 시절부터 20년 간 펨토초 레이저와 동고동락하며 첨단산업 발전과 우주시대의 경쟁력을 견인해온 일등공신, 2021년 젊은과학자상 수상자 KAIST 김영진 교수를 만났습니다.

PART 1.연구자의 길

김영진

펨토초 레이저를 주제로 다양한 연구를 해오셨어요. 교수님이 20년간 한 우물 판 펨토초 레이저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2004년부터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한 다양한 측정과 가공을 연구해왔습니다. 연구에 필요한 펨토초 레이저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요. 빛을 이용하는 레이저의 활약은 무궁합니다. 소리(음파)는 공기와 같은 매질이 있어야 전달 가능하지만 빛은 직진성이 좋아서 진공상태인 우주에서도 멀리 보낼 수 있어요. 또한 빛은 속도가 일정하고 무게도 없어 정밀 측정에도 사용됩니다. 빛은 에너지를 좁은 영역에 모을 수 있어 정밀 가공에도 활용됩니다. 특히 펨토초 레이저는 1000조분의 1(10-15)초라는 상상조차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어, 원자보다 작은 DNA의 움직임도 관찰할 수 있으며, 반도체 미세 패터닝 장비의 정밀도 보정은 물론 라식 수술과 같은 의료용으로도 사용됩니다. 최근에는 우주기술에도 접목되고 있어요. 2004년 사이언스지에는 지구의 중력장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두 인공위성 사이의 거리 차이를 모니터링한 내용이 소개되었어요. 연구팀은 지구 중력장에 영향을 주는 아마존 밀림의 지하수 높이를 인공위성에서 재는 방법을 사용했죠. 과거에는 땅을 뚫고 지하수 높이를 쟀는데, 이제 우주에서 레이저를 쏘아 정밀하게 지구를 측정할 수 있게 됐어요.

김영진

보통 빛은 물리의 영역이라 생각하는데요. 기계공학과 광학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요?

많은 분들이 기계공학하면 거대 장치를 떠올리지만, 사실 기계공학은 자연의 원리와 제품화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즉 인간을 위한 학문이에요. 물리학에서 탐구한 광학의 원리가 실생활에 적용되려면 기계공학의 손을 잡아야 하죠. 특히 레이저는 큰 영역과 작은 영역, 킬로미터(㎞)부터 피코미터(pm)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물리, 그중에서도 광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IMF 직격탄을 맞은 1998년 대학에 진학한 탓에 졸업 후 다양한 분야로 취업이 가능한 기계공학을 전공으로 택했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 됐죠. (웃음)

PART 2.내가 하는 연구는?

김영진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에서도 레이저 기술이 주목받고 있어요. 교수님도 지상-우주 간 광통신을 위한 광주파수 전송기술 개발을 통해 2021젊과상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관련 연구를 시작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우리가 지하철이나 산에서도 휴대폰으로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건 지상의 인터넷망을 이용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주-지구 간 통신은 지상의 광섬유 네트워크 사용이 불가능해요. 따라서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통신방법이 개발됐지만, 한 번에 전송할 수 있는 데이터 양에 한계가 있어요. 하지만 고해상도 인공위성의 발달, 고성능 카메라를 장착한 우주탐사선의 활약 등으로 우주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양과 크기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주-지구 간 통신 수단으로 파장이 큰 마이크로파를 이용했기 때문에 화성의 탐사로버가 촬영한 사진을 지구로 보내는데 최소 1시간이 걸렸어요. 이를 대체하기 위해 레이저를 이용한 광신호 전송 기술이 연구돼 왔지만, 레이저가 혹독한 대기 환경에 노출되며 광주파수와 위상에서의 고유 특성을 잃어버리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펨토초 레이저 광빗에서 여러 파장의 레이저를 추출하고 그중 하나의 파장을 이용해 대기 환경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김영진

펨토초 레이저를 이용해 국가 간, 대륙 간, 나아가 지상과 우주 간의 대용량 정보를 보다 빠르고 깨끗하게 전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셨어요. 연구의 주요 성과도 설명해주세요.

1000분의 1초의 오차를 갖는 펨토초 레이저 광빗을 대기에 전파시켜 대기의 영향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제어함으로써 레이저의 성능이 대기를 통과하기 전과 후의 차이가 없는 우수한 안정도로 다채널 광주파수 초정밀 대기전송 시연에도 성공했습니다. 관련 기술을 활용하면 지금까지 마이크로파를 사용했던 지상과 우주 간 인공위성 통신의 통신용량 한계를 극복하여 차세대 항법장치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빛의 직진성은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뿐 아니라 도청과 감청이 어려워 국방과 안보 분야에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김영진

최근 증가하는 폐전지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어요. 그 대안으로 나뭇잎을 가공해 마이크로 배터리를 선보이셨습니다.

IT 모바일 기기를 비롯한 전기전자 제품의 확산으로 우리 생활은 편리해 졌지만, 폐전지의 발생 증가로 인한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친환경 소재인 나무나 나뭇잎을 재료로 센서와 배터리를 제작하면 이 같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나무의 특성상 자연 상태 그대로 배터리나 전기부품으로 가공하기는 어렵지만 나무가 탄소로 바뀌어 그래핀화되면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요. 기존에도 나무를 그래핀으로 바꾸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공정이 복잡하고 시간에 오래 걸려 실제 활용은 요원했죠. 저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공동연구를 통해 펨토초 레이저로 목재나 나뭇잎을 가공하고 그 효과를 검증했는데요. 연구결과 탄화된 부분에 전도성이 생기며, 나무 자체를 전선으로 쓸 수도 있고, 나뭇잎을 온도 센서 등으로 가공할 수도 있었습니다.

김영진

지금까지 연구를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 보람된 경험은 무엇인가요?

2013년 세계 최초로 펨토초 레이저발진기를 인공위성에 탑재해 5년간 우주실험을 진행한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주용 레이저 기술을 개발해도 우주에서 실험할 기회를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렵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로호 1,2차 발사 실패로 나로호에 실었던 과학기술위성 2기가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우주에서 소멸됐어요. 이에 따라 나로호 3차 발사 시 사용할 연구용위성 제작이 새롭게 추진됐고, 연구재단은 우주에서 국산화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과제를 공모했어요. 당시 저는 우주에서 활용 가능한 레이저발진기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던 만큼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당시 학계에서는 인공위성에서 지상으로 레이저를 쏘면 우주 방사능으로 레이저의 성능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요. 실제 실험을 통해 충분히 안정적인 광원임을 검증하고, 세계 최초로 펨토초 단위의 정밀거리 측정 기반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PART 3.나의 원동력, 나의 경쟁력

김영진

20년 간 우수한 성과를 창출할 수 있었던 교수님의 연구경쟁력은 무엇인가요?

남들보다 먼저 펨토초 레이저 연구를 시작해 한 우물을 판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인 것 같아요. 제가 학부생일 때만 해도 물리분야에서 연구되던 펨토초 레이저를, 지도교수님이 일찍이 공학 쪽에 도입하셨고, 저 또한 연구에 집중했기에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에서 직접 실험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또 다른 경쟁력은 전공은 기계공학이지만, 물리, 전자, 재료 등 인접학문에도 늘 관심을 갖고 흥미 있는 주제는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입니다. 2005년 노벨상 수상자인 테드 핸슈 교수는 “닭장을 나온 닭과 병아리가 있었는데, 닭은 다시 닭장으로만 돌아가려해 먹이를 못 먹고 병아리는 농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더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었다”는 말을 했어요.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의미인데요. 같은 맥락에서 평소 학생들과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나누는 이야기들이 기존의 한계를 돌파하는 경쟁력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학생들과도 미팅을 자주하고 수평적 연구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정신적 활동과 육체적 활동의 균형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학생들과 함께 풋살도 시작하고, KAIST 교정에 작은 텃밭이 있어 상추랑 쑥갓, 토마토 등의 작물도 가꿉니다.

김영진

펨토초 레이저 연구 분야에서 도전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연구자 개인의 차원에서는 가장 큰 스케일의 측정을 가장 정밀하게 수행하는 동시에 가장 작은 원자단위의 측정도 가장 정확하게 측정하고 싶습니다. 또한 빛을 이용한 측정의 한계는 무엇인지도 탐구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연구가 지속되고 확장될수록 고령화와 삶의 질, 환경문제에 대응하는 연구, 즉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연구에 대한 고민도 함께 커지고 있는데요. 보다 큰 차원의 연구 목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펨토초 레이저를 만들고, 상용화 장벽을 낮춰 각 분야에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펨토초 레이저는 1990년대 처음 개발돼 세계적으로 측정과 정밀 가공에 필요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뛰어난 성능은 검증됐지만, 높은 비용의 벽을 넘지 못해 아직까지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실제 생산 공정에 사용하진 못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진

어떤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학부 3학년 때 김승우 교수님의 지도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지도교수님과 20년을 같이 연구하며 가장 부럽고 존경스러웠던 부분 중 하나가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계속 찾아와 연구에 대해, 나아가 삶에 대해 상의하고 지혜를 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 역시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것은 물론, 언제라도 제자들이 찾아올 수 있는 지혜롭고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김영진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연구재단과도 인연도 많으셨는데요. 연구재단에 제안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재단의 발전에 대한 고견 부탁드립니다.

제가 학부생일 때 지도교수님께서 공학 분야에서는 최초로 연구재단 창의과제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덕에 저는 기계공학을 전공하면서 물리와 가까운 광학 연구를 9년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 창의과제 후속으로 진행된 도약과제를 통해 우주분야로 연구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재단의 지원으로 연구교수로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독립연구자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며 펨토초 레이저의 우주관측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재단의 과제와 함께 연구자로 성장해 왔기에 재단에 감사한 마음이 누구보다 큽니다. 뉴스페이스 시대가 도래하며 인류의 우주 진출이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시대적,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우주관련 주제들, 대학실험실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창의적인 과제들이 더욱 다양하게 추진되면 좋겠습니다.

PART 4.내 인생의 등대가 되어 준 책

평소 학생들에게 <피라니아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많은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연구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걱정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하는 일 중 90%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요. 누구나 실험을 하다 보면 계획대로 될 때보다 안 될 때가 훨씬 많아요. 되는 것 역시 수많은 ‘안 됨’을 기반으로 해서 나오는 것이죠.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해온 것처럼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인 삶을 이루어가길 응원합니다.

PART 5.신진연구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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