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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방에 감초가 있다면,
산업현장에는 촉매가 있다

2021 젊은과학자상 대통령상 수상자 시리즈②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최민기 교수

촉매(catalyst)는 자신은 변화하지 아니하면서 다른 물질의 화학 반응을 매개하여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늦추는 물질입니다. 석유화학 공정은 물론 이산화탄소 전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현장과 일상생활 곳곳에서 활약하며 현대판 연금술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2021년 젊은과학자상 주인공 최민기 교수는 2010년 KAIST에 부임한 이래 친환경 공정개발과 고부가가치 화학물질의 생산에 활용될 수 있는 고성능 촉매 개발에 매진해 왔습니다. 지난해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효소의 작용 메커니즘에 착안한 신개념 산업용 촉매 개발에 성공하여 학계와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산업현장에서 실제 활용 가능한 공정 개발을 목표로, 눈에 보이는 꽃보다 땅속 깊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최민기 교수를 만났습니다.

PART 1.연구자의 길

최민기

2021년 젊은과학자상 주인공이십니다. 수상소감과 함께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교수님의 주요 연구 분야도 소개해주세요.

젊은과학자상 수상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연구하라는 뜻에서 동료 과학자들이 해주신 큰 격려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학 분야인 화학을 전공하고, 공학적인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여 화학공학분야에서 수상한 것이 뿌듯합니다. 저희 연구실(에너지·녹색촉매 연구실:Energy & Green Catalysis Lab.)에서는 화학물질을 생산하거나 환경오염 물질을 분해하는 다양한 공정의 반응속도를 높일 수 있는 촉매 소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촉매하면 흔히 정유나 석유화학 산업을 떠올리실 텐데요. 촉매는 다양한 산업 공정에 활용되며,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환경오염 물질을 줄이는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최근 환경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요. 높은 활성과 원하는 생성물에 대한 선택도, 장기 안정성을 보이는 고성능 촉매를 개발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촉매 설계 원리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민기

KAIST에서 화학을 전공하시고, 독립연구자의 길을 시작하면서는 화학공학, 특히 촉매 관련 연구에 집중해 오셨 습니다. 화학과 화학공학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과학의 모든 영역이 재미있었는데요. 대학에 입학하며 수학과 물리는 번뜩이는 재능이 필요한 학문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화학은 부족한 저라도 많은 노력만 하면 성취가 가능한 학문 같았어요. 화학과에 진학해 분자나 나노 단위에서 소재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익혔습니다. 다만 학위 말에 제 지식을 활용하여 실제로 세상에 이로운,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희망이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화학공학, 특히 촉매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촉매는 유기·무기·물리·분석 화학뿐 아니라 반응 공학 등의 다양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만큼 공부는 어렵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지식과 내공이 쌓이고 앞선 연구들이 축적돼 더 큰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분야인 만큼 스스로 즐기며 꾸준히 연구하면,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민기

도전하고 싶은 연구주제를 찾고 몰입하기까지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과학자를 평가하는 지표가 논문 편수와 임팩트 팩터라는 획일화된 숫자라는 사실이 저를 비롯한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거대한 장벽입니다. 특히 촉매는 타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 속도가 느리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획일화된 평가 프레임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정말 도전하고 싶은 연구, 집중해야 하는 연구가 있음에도 평가 실적이 부족하다 느껴질 때는 이러한 평가지표를 충족할 연구들을 함께 수행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PART 2.내가 하는 연구는?

최민기

지난해 자연계 효소와 같이 원하는 반응물만 선택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신개념의 고성능 산업 촉매 개발로 학계와 산업계의 주목을 받으셨습니다. 주요성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효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촉매 중 가장 선택성이 높습니다. 천연 고분자인 단백질이 촉매 활성점을 3차원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구조 덕인데요. 이들 단백질은 특정 반응물만 선택적으로 활성점에 접근할 수 있게 하여 높은 반응 선택도를 부여합니다. 저는 이 같은 효소의 특성을 산업에서 사용하는 불균일 고체 촉매 위에서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효소는 보통 상온에서 작용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분자는 산업적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고온·고압의 가혹한 조건을 버틸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높은 안정성을 갖는 고분자 물질을 탐색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매우 안정한 고분자를 찾았고, 이 고분자가 금속 입자를 둘러싸며 효소와 같이 3차원 계면을 만드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나아가 이 고분자를 이용한 촉매를 석유화학의 중요 공정 중 하나인 아세틸렌 부분수소화 공정에 사용하면, 기존의 촉매에 비해 비약적으로 증진된 활성, 선택성, 장기 안정성을 보임을 확인했습니다. 금속을 둘러싸고 있는 고분자막이 반응물인 아세틸렌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금속 표면을 비활성화 시킬 수 있는 다른 부생성물들은 빠르게 제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최민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촉매를 개발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이었나요?

자연계 효소들은 유기물과 무기물이 합쳐서 좋은 결과를 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촉매 구조나 구동 원리는 기존에 발표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었습니다. 특히 고분자와 금속의 계면이 고정된 것이 아닌, 반응조건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분석법으로는 이해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훌륭한 촉매 반응 결과를 얻고도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해서 외부에 발표할 수 없었고, 일 년 이상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왔는데요. 마침내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계면의 동적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최민기

촉매뿐만 아니라 지구촌 모두의 숙제인 이산화탄소 포집 저감 및 기타 환경정화 기술 개발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촉매는 분자를 고체 표면에 흡착 후 반응을 유도하는 소재입니다. 따라서 촉매를 설계할 때에도 흡착 원리를 많이 고민합니다. 저희 연구실은 촉매 이외에도 흡착 관련 연구도 많이 진행해왔는데요. 특히 화력발전소나 산업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는 흡착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해왔습니다. 단순히 논문 작성에 목표를 둔 것이 아닌, 실제 적용이 가능한 흡착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해왔고, 한국화학연구원의 공정전문가이신 박용기 박사님 연구팀과 함께 활발한 공동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건식 흡착 소재를 개발했다고 자부합니다. 실제 대규모 실증 테스트에서도 앞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개선의 여지는 많지만, 꾸준히 연구하여 꼭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 고유의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최민기

연구성과가 실제 산업 공정에 적용될 수 있는 실용적 기술개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제가 연구한 촉매나 흡착제 기술들이 원천기술 개발과 소재개발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산업에 적용이 될 수 있는 완숙한 기술로 여물었으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공정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듣고 연구에 반영하려 노력합니다. 실용화를 목표로 연구하며 느낀 점은 논문으로 나오는 원천 기술과 실제 공정 기술의 간극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실험실에서는 연구 중 좋은 내용이 하나만 있어도, 또는 여러 개의 결과들이 ‘or’만 되어도 논문 작성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실제 공정은 모든 결과와 조건이 ‘and’가 돼야 가능해집니다. 어느 조건 하나만 어긋나도 공정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원천성을 찾는 초반의 연구는 논문 등을 통해 실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지만, 기술이 성숙해 질수록 겉으로 드러나는 실적은 없고,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연구자의 진통도 커져갑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기간도 잘 참아내고, 연구실 밖에서 꽃피울 수 있는 성숙한 기술들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PART 3.나의 원동력, 나의 경쟁력

최민기

우수한 연구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교수님만의 연구경쟁력도 소개해 주세요.

제 연구의 원동력은 선천적인 재능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주변에는 출중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강점은 과학을 좋아하는 마음, 그리고 몰입인 거 같습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화학분야는 꾸준함이 쌓일수록 더 큰 내공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데요. 연구에 집중하는 시기에는 밥을 먹을 때도, 샤워할 때도, 간혹 꿈에서도 분자가 머릿속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합니다. 그 과정을 오래도록 거치고 나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아이디어들이 제 연구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최민기

교수님이 직접 가꾸고 그린 식물들과 그림으로 연구실이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입니다. 연구를 잘 하는 방법, 또 연구에 집중하기 위한 교수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연구의 세계는 경쟁이 치열해요. 자기와의 싸움도 이겨야 하고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독방 생활을 하는 만큼 좋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화학은 미시의 세계이기 때문에 작은 것에 몰입해야 하는데, 화초를 키우고, 산책을 하면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최민기

교수님의 연구 철학과 비전이 궁금합니다.

과학자는 일생에 한 가지 영향력 있는 업적만 이루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제가 은퇴했을 때 논문을 몇 편 썼고, 임팩트 팩터가 몇 점이었는지가 중요하진 않을 것 같아요. 따라서 너무 빨리, 너무 많은 과학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제게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능력과 자원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개발한 촉매가 실제 산업 어딘가에 적용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쉽지 않지만, 이산화탄소 포집 연구도 10년 이상을 계획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최민기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연구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 연구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을 끝까지 성숙시키고 싶습니다. 제가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왜 이산화탄소 포집하냐?’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환경 관련 기술 개발은 규제나 의무조항이 없으면 산업에서도 적극 나서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산화탄소 포집은 이제 사회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기술 중 하나입니다. 세계가 직면한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의 노력이 녹아있는 연구이기 때문에 꼭 기술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최민기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연구재단과도 인연도 많으셨는데요. 연구재단에 제안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재단의 발전을 위한 고견을 나눠주세요.

연구 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좀 더 유연한 평가 방향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획일화된 수치에 의한 정량적 평가가 아닌 대표업적들에 대한 정성적 평가도 포함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제안은 쉽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고 과학계 전체의 올바른 의식이 선행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전반적으로 연구재단은 지난 10년 동안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PART 4.내 인생의 등대가 되어 준 말

처음 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늘 들려주는 말입니다. 메이저리그 전설 스즈키 이치로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절대 천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천재가 맞습니다.” 저도, 학생들도 노력을 통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길 바랍니다.

PART 5.신진연구자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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