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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서서 생각에 잠기다 -‘반도적 성격론’에서 ‘신반도적 성격론’으로-
목포대학교 사학과 강봉룡 교수

문물교류는 권역별 혹은 지역별로 각기 다른 문화와 물산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보다 다채롭고 풍요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문물교류의 흐름에서 소외되어 폐쇄적 자급자족에 안존하는 국가나 사회는 여지없이 문명사에서 뒤처지고 퇴락하고 말았으니, 문물교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점에서 역사적으로 바다가 시종 문물교류의 압도적 통로로 기능해 왔다는 사실은 크게 주목할 만하다.

육로의 개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전근대의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도로 및 철도와 같은 육상 교통로와 항공기를 이용하는 하늘길이 최고도에 달한 오늘날에도 바다는 세계 물자유통의 75%을 책임지는 절대적 통로로 기능한다. 남북분단 상황인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무려 99.7%의 물자유통이 바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바다라는 공간은 인류의 문명발달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할 것이고, 그래서 바다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리적 중심축이 바다와 긴밀한 관계에 있는 반도(한반도)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실제 반도는 역사에서 문명의 탄생과 발화의 거점으로 작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컨대 유럽의 고대문명이 발생한 그리스반도와 이탈리아반도, 그리고 유럽의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이베리아반도 등이 그러하니, 그 이면에는 유럽대륙과 지중해 혹은 대서양의 바다를 이어주는 반도의 지리적 조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반도를 대표하는 한반도가 대륙과 바다를 연결하며 문물교류를 매개하는 중요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논의는 의외로 매우 소극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부정적이기까지 하였다. 이는 일제가 악의적으로 왜곡한 반도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서 말미암는다.

일찍이 일제는 식민사학의 일환으로 ‘반도적 성격론’을 주창하였다. 조선은 중국의 대륙세력과 일본의 해양세력으로부터 양면적 침탈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반도’에 위치하여 주체적 역사 발전이 불가능하니, 일본의 지배와 보호를 받아 대륙의 침략세력을 저지하고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 ‘반도적 성격론’의 요체였다. 우리는 간혹 이러한 ‘반도적 성격론’의 악의적 비논리를 깨닫지 못하고 반도의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예를 들어 스스로 반도국가가 아니라 대륙국가임을 애써 강조했던 논의의 경우, 비록 ‘반도적 성격론’을 극복하기 위한 의도에서 제기된 것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의도와는 달리 일제가 호도한 반도의 열등감이 일부 내재되어 있다.(홍이섭, 1967, 「단재사학의 일면-반도적 사관의 비판과 고구려 구강론-」, 『백산학보』3) 이 점에서 그후 ‘반도적 성격론’의 이론적 모태가 되었던 ‘지리적 결정론’ 자체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한반도에서 구현한 우리 역사의 역동성을 예시하면서 ‘반도적 성격론’의 비논리를 논박한 보다 진전된 견해가 제기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이기백, 1987, 「반도적 성격론 비판」, 『한국사시민강좌』1)

이제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다의 관점에서 한반도 역사에 접근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바다로 열린 반도의 지리적 조건을 염두에 두고, 한반도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반도임을 자부하면서, 한반도와 그 삼면의 바다를 통해 동아시아 문물교류를 매개하면서 성취한 우리의 역사적 성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해양사를 일별해 보면, 반도의 연안을 따라 조심스럽게 항해하던 연안항해의 단계를 거쳐, 황해와 남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세계의 바닷길인 해양실크로드로 이어지면서 바다의 활동 범위를 동아시아 바다는 물론 세계의 바다로 확대해 갔으니,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해양사의 발전 과정에 따라 순행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이르러 문득 바다를 통한 대외 문물교류를 금지하는 해금(海禁)을 국가정책의 기조로 채택하여 지속 강행함으로써 문명사의 퇴보를 자초하였으니, 이는 해양사의 통상적인 발전 과정에 역행한 모양새이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들의 인지와 선택이 그 지리적 조건보다도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고 있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방기해 버리면 무용지물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조선 쇠망의 이면에는 한반도의 유리한 해양 조건을 저버리고 해금으로 일관한 그 시대 구성원들의 잘못된 선택이 있었음을 성찰할 일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조선업 1위와 해운업 5위에 랭크될 정도로 해양강국을 구가하고 있는 배경에는 바다에 대한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진출 의욕이 작동하고 있음을 자각할 일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앞으로 바다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발전적으로 지속시켜 가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유념할 일이다. 이를 위해 기왕의 부정적 ‘반도적 성격론’을 전혀 새로운 긍정적 ‘신반도적 성격론’으로 바꾸려는 인문학적 인식전환의 노력이 긴요하다. 인문학은 우리의 인식(생각)을 시대정신에 맞추어 조율하는 ‘생각하기 나름의 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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