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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R

흔들리는 지구에 던진 질문,
불확실한 기후변화의 시간을 찾다
포항공과대학교 민승기 교수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자의 연구 여정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탄생한 주요 성과와 과학기술이 열어갈 미래를 그려봅니다.

흔히 ‘북극’하면 눈부신 얼음 언덕과 북극곰이 거니는 하얀 땅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하얗게 덮여있던 자리에는 어두운 바다가 드러났고, 얼음 위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동물들은 갈 곳을 잃고 있죠. 이는 단순히 북극 풍경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예상치 못한 극한기후가 찾아올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요. 여기, 지구의 기후변화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앞으로 인류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해 온 연구자가 있습니다. 2월호 스토리R에서는 북극 해빙의 소멸시간을 다시 계산하며 곧 인류가 마주할 기후위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민승기 교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우수한 연구개발 성과로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연구개발자를
매월 1명 선정하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상금 1천만 원을 수여하는 상

Chapter 01 인물탐구

민승기1973년 소속 포항공과대학교 환경공학부 주요경력
  • 2003.09. ~ 2006.05.
    독일 본 대학(University of Bonn) 기상학 박사
  • 1995.03. ~ 1997.02.
    서울대학교 대기과학 석사
  • 1991.03. ~ 1995.02.
    서울대학교 대기과학 학사

Chapter 02 미래 기후를 다시 맞추다

집중호우와 가뭄, 초강력 태풍, 기록적인 폭염까지. 극한기후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은 이미 기후변화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죠. 이에 그동안 과학자들은 수많은 기후모델을 통해 우리 지구의 미래를 예측해 왔습니다. 민승기 교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후위기를 탐지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과학자로서 인류가 맞닥뜨릴 변화에 조금이라도 준비할 수 있도록 그 신호를 추적하는 중인데요. 그의 연구 출발점은 약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상청 기상연구소(현재 국립기상과학원)에서 기상연구사로 일하게 된 그가 처음 맡은 연구 주제는 기후변화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을 탐지하는 통계 기법 개발이었습니다. 독일 본 대학과 공동연구를 하며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이를 계기로 독일로 건너가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독일에서 이상기후 분석 연구를 본격적으로 접하며 연구의 방향은 더욱 또렷해졌습니다. 이후 캐나다 환경부와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현재는 포항공대 환경공학부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기후과학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캐나다 환경부 재직시절(2008년) 사이언스 논문 출간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2011년에는 극한강수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을 최초로 탐지해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증가의 영향은 주로 기온 증가에서만 확인됐고, 강수에 미치는 영향은 과학적 증거가 거의 없었는데요. 특히 짧은 시간에 강하게 쏟아지는 극한강수의 강도가 커지고 있었는데, 그 원인이 인간 활동에 있음을 처음으로 밝혀낸 연구였죠. 이를 계기로 지구 물순환 변화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최근에는 시간당 극한강수와 슈퍼태풍처럼 더욱 강력한 극한 현상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민승기 교수는 기후변화 원인 규명과 이상기후 연구 분야를 이끄는 국제적 연구자로서 연구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관련 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 집단인 국제기후변화탐지그룹(IDAG) 멤버로도 활동하며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규명을 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죠.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평가보고서 주저자로 참여해 ‘해빙 변화의 원인’ 집필을 맡으며, 연구 영향력을 전 세계로 넓혀가기도 했습니다.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의 주저자로 참여한 민승기 교수

Chapter 03 다시 써내려간 북극의 미래

온실가스가 기후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북극 해빙의 소멸은 해수면 상승과 극한기후 현상 증가, 동토층 융해에 따른 메탄과 이산화탄소 배출 확대 등 다양한 문제와 직결되기에 그 변화를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고 분석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한데요. 다만, 그동안 북극 해빙의 미래를 둘러싼 과학적 전망에는 적지 않은 불확실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 민승기 교수는 관측과 기후모델을 비교하는 새로운 접근을 통해 북극 해빙이 빠르면 2030년대에 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했습니다.

“IPCC 6차 보고서의 주저자로 참여하며 기존의 북극 해빙 연구결과들을 모아서 정리해보니 미래의 북극 해빙 변화가 상당히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불확실한 전망을 줄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최근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관측-기후모델 비교 방법을 시도하였습니다.” 2021년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서는 2050년 정도에 북극 해빙이 소멸하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망에 사용한 기후모델들은 대부분 관측에 비해 북극 해빙 감소를 약하게 모의하고 있는데요. 이에 민승기 교수 연구팀은 41년간의 위성 관측자료와 10종의 기후모델 실험자료를 활용해 북극 해빙 변화가 어떤 요인에 의해 나타났는지를 분석했습니다. 그렇게 북극 해빙이 연중 모든 달에서 유의미하게 감소하며, 감소의 주요 원인이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 증가라는 점을 확인했죠. 이후, 관측에서 탐지된 온실가스 영향 크기를 기후모델과 비교하여 그 차이를 북극 해빙 소멸 전망에 반영하였습니다. 이렇게 보정된 결과, 북극 해빙의 소멸 시점이 기존 IPCC의 전망보다 10년 이상 앞당겨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해빙이 남아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저배출 시나리오에서도 2050년대에 북극 해빙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관측된 기후변화의 원인에는 온실가스 이외에도 에어로졸, 태양 및 화산활동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관측-기후모델 비교 연구들은 과거 변화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이 충분하지 않아 한계가 있었어요. 반면 저희 연구에서는 과거 북극 해빙 감소의 대부분이 온실가스 증가 때문이라는 점을 먼저 확인했기 때문에, 미래 온실가스 배출에 따라 달라질 북극 해빙 변화를 보다 정확하게 수정해 줄 수 있었습니다.”

Chapter 04 기후변화를 읽는 다음 신호를 찾다

‘물의 별’ 지구. 물이 어떻게 순환하느냐에 따라 지구를 살아가는 인류는 이상기후를 겪기도 합니다. 예년과 달리 더 강한 비가 많이, 자주 쏟아지고, 쉽게 가뭄에 노출되는 것 역시 이러한 물의 흐름 변화와 맞닿아 있죠. 그래서 북극 해빙 연구는 이 물의 순환 구조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아직 밝혀내지 못한 기후변화 증폭 메커니즘이 적지 않습니다. 평균기후의 변화는 비교적 느리고 그 폭도 작게 나타나는 반면, 실제로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는 극한기후 현상은 지구가 가진 자연 변동성과 맞물려 발생해, 그 영향이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거든요. “앞으로 지구온난화의 속도는 예상보다 더 빨라지고, 그 영향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한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 연구년을 맞이한 민승기 교수는 극한기후 현상의 예측성의 정확도를 높여가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동료 연구자들과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의하며 작은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를 차근차근 확장해가며 기존의 한계점을 극복해가고자 하는데요. 그렇게 그는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기 위한 과학자의 길 위에서, 오늘도 묵묵히 다음 질문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민승기 교수와 함께 연구하고 있는 POSTECH 기후변화연구실

속닥속닥! 못 다한 이야기 연구자 TMI

  •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좋은 결실을 보게 되어 기쁘고,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제가 기후변화 관련 국제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도전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포항공대 교수님들과 직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저를 과학기술인상 후보로 추천해 주신 한국기상학회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이 상은 포항공대 기후변화연구실 연구원들과 학생들이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노력해 준 결과라고 생각하며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 교수님 근황과 올 한해 주요 계획을 전해주세요. 붉은 말의 해인 2026년은 새로운 도약과 전환점을 맞는 해로 삼아 힘차게 출발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연구년을 맞아, 새로운 연구를 기획하는 중요한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우선 전례 없는 극한기후 현상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또한 딥러닝을 포함한 AI 분석 기법을 보다 깊이 있게 익히고, 이를 연구에 적용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합니다.
  • 북극 해빙 소멸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까요? 북극 해빙의 소멸은 북극 지역의 환경 변화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최근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북극항로의 활용 가능성이 해빙이 빠르게 줄어들면서 더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보다 직접적인 영향으로는 북극 온난화의 가속화를 들 수 있어요. 태양복사를 반사하던 해빙이 사라지면 북극 지역이 더 많은 열을 흡수하게 되고, 그만큼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거죠. 이러한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위도와 고위도 사이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면서 대기의 흐름이 정체되고, 북반구 전반에서 폭염과 호우 같은 극한기후 현상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북극 지역의 동토층이 빠르게 녹으면서 메탄과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 지구온난화는 더 가속화 될 것이고, 그린란드 빙상이 더 많이 녹게 되면서 해수면 상승도 빨라질 거예요.
  • 기후변화 과학자로서 궁극적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구 목표도 말씀해주세요. 극한기후 현상의 예측성을 확보하고 높여나가는 것입니다. 최근 시간당 극한강수, 급격히 발생하는 슈퍼태풍, 대규모 폭염과 산불 등은 지구의 대기순환과 그에 따른 물순환이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까지의 기후과학은 이렇게 비선형적으로 급격하게 발생하는 대기순환과 수분수송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러한 극한 물순환 변화의 원인을 찾아내고, 미래 변화를 보다 정확히 예측하고 싶습니다.
  • 미래 기후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앞으로 지구환경과 기후변화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입니다. 하나뿐인 지구를 지키는 과학자의 길에 과감하게 도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과학자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가 멀리 내다보고,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인데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결국에는 끈기를 갖고 버텨내는 힘이 중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 석사과정을 마친 뒤 군 복무를 했고, 기상청에서 근무했던 여러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연구를 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몇 년 정도 늦었다고 느끼는 시간은 큰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차근차근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꿈이 가까이 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