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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思惟)의 서재

경계를 넘어 관계를 사유하는 당신께
「라 프론테라」
고려대학교 김희순 교수

한 권의 책에 담긴 무한한 세계와 가능성. 활자 속 유영하는 저마다의 이야기는 일상에 전환점이 되곤 하는데요. 사유(思惟)의 서재는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으로 탄생한 우수학술저서 한 권과 저자 인터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질문거리를 곁들여 전합니다. 책 너머의 저자, 저자 너머의 빛나는 사유가 담긴 서재에 들어오세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이념과 갈등을 통제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막기 위해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벽’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물자,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대라지만, 어떤 경계 앞에서는 여전히 발걸음이 멈춰 서야 하죠. 김희순 교수의 「라 프론테라 : 미국-멕시코 국경을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조우」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놓인 거대한 국경장벽을 따라가며, 이 경계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삶을 가르고 있는지 추적합니다. 글로벌 시대, 더욱 선명해진 국경의 풍경 속에서 우리가 쉽게 지나쳐온 경계의 의미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김희순 고려대학교 교수

고려대학교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연구원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 연구소에서 근무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연구자로서 지역격차의 원인에 대해 식민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지속해 왔으며, 라틴아메리카의 빈부격차 문제, 불량주택지구 문제, 미국-멕시코 국경 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라 프론테라 : 미국-멕시코 국경을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조우」, 「빈곤의 연대기 : 제국주의, 세계화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 등이 있으며, 역서로 「파벨라 : 리우데자네이루 주변 지역의 삶에 대한 40년간의 기록」, 「야만의 해변에서 : 아메리카 원주민, 대항해 시대의 또다른 주인공」 등이 있다.

#01 책을 쓰다 경계 위에서 시작된 질문

  • 김희순 교수님, 한국연구재단 웹진 독자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고려대학교 스페인 라틴아메리카 연구원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지리학자 김희순입니다. 학부 때 우연히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를 공부한 것이 계기가 되어 멕시코에 대해 박사 논문을 쓰게 되었고, 이후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웃음)
  • 「라 프론테라 : 미국-멕시코 국경을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조우」는 구체적 공간에서 출발하지만,
    읽다 보면 단순한 지역 연구를 넘어 ‘경계란 무엇인가’를 묻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을 구상하게 된 출발점은 어떤 문제의식이었나요?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라틴아메리카 지역학 과목을 강의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특성에 대해 강의하려다 보니,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점을 가르쳐야 했는데요. 미국과 멕시코 간의 국경선과 관련해 발생한 전쟁, 이주, 교류 등을 통해 설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멕시코 및 라틴아메리카를 이해하는 하나의 세부 주제로 미국과의 관계, 특히 국경을 둘러싼 관계에 주목하게 되었죠. 책을 구상할 때쯤, 적법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채 미국으로의 이주를 희망하여 대규모로 이동하는 카라반이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국경선은 상품과 금융 교역에 있어서는 가장 자유로운 반면, 사람의 이주에 대해서는 매우 차별적이더라고요. 단지 미국과 멕시코 간 현상이 아니라 세계화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도서국가라 이주와 관련된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만, 이주 관련 이슈는 우리 사회가 지속적으로 고려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관한 연구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 「라 프론테라 : 미국-멕시코 국경을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조우」는 한국연구재단의 저술출판지원사업을 통해 출간됐다고요. 어떤 점을 도움받을 수 있었나요? 국내 여러 기관에서 라틴아메리카나 해외 지역에 대한 지역정보를 생산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연구는 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지원하면서 든 생각은 ‘국내 사례도 아닌데 연구재단에서 지원해 줄까?’였습니다. 특히 해외지역연구는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주제가 많거든요. 하지만 격변하는 세계에서 해외 지역에 관한 올바른 이해는 한국이 국제 사회의 주요 역할자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해외지역연구는 대상 지역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연구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는 편입니다. 특히 긴 호흡의 연구를 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개인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죠. 지원 덕에 수월하게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고, 2023년 세종도서에 선정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 문헌 조사뿐만 아니라 현장 답사를 오가며 이뤄진 결과물이라 들었습니다.
    답사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본래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만 답사하려고 했는데, 미국이 갖고 있는 두 개의 국경을 비교해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캐나다와 미국,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두 곳 모두요. 우선 캐나다 밴쿠버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캐나다-미국 국경을 넘은 뒤 이민국 심사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버스에 다시 탑승했을 때 인도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부부가 미국 입국을 거부당해 버스에 타지 못했습니다. 문헌이나 뉴스에서는 흔하게 보던 일이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니 매우 당황스럽더라고요. 다른 에피소드도 있는데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멕시코 티후아나로 국경을 넘을 때는 검문소 하나를 걸어 쉽게 넘어갔습니다. 국경을 이리도 쉽게 넘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티후아나 답사를 마치고, 다시 샌디에이고로 돌아갈 때는 입국을 위해 2시간 가까이 줄을 서야 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인 아줌마인 제게는 친절하던 입국 심사관들이, 국경을 넘으려던 다른 라틴아메리카 사람에게는 까다롭게 서류를 요구하며 지체하는 모습을 보며 국경의 선별적 투과성을 직접 경험하였습니다.
  • 집필 시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정책, 코로나19 등 국경의 풍경을 뒤흔든 사건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수정되거나 보완된 지점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구상했을 때 라틴아메리카, 특히 멕시코 사회를 형성하는 데 있어 국경선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연구 과정에서 미국 사회의 영향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점을 알게 되었죠. 여기에 트럼프 제1기 행정부의 이민정책 변화와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 등이 일어나면서 다루어야 할 주제들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겪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구조와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원고를 다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이 부분을 많이 다루지는 못했는데요. 트럼프 제2기 행정부의 이주 정책과도 연속성을 지니는 내용들이라 앞으로도 관련 연구를 지속할 계획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과 멕시코 사이 세운 ‘국경 장벽’을 방문하고 있는 모습 ※ 출처 : 미국 백악관 누리집

#02 책을 읽다 국경으로 나뉜 두 세계를 읽는 방식

  • 이 책은 국경의 형성부터 이주, 도시, 문화, 산업, 위험, 권력, 그리고 팬데믹 이후의 변화까지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많은 주제를 하나의 책으로 엮기 위한 중심축은 무엇인가요? 본서에서 다루고자 한 가장 중요한 개념은 국경선이라는 ‘경계’입니다. 과거 국경선은 양 국가 간의 언어, 제도, 경제, 문화 등 대부분의 사회 현상이 달라지고 단절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국경선을 따라 많은 것들이 멈췄죠. 오늘날은 국경선을 따라 달라지는 그 ‘차이’가 국경 지역의 발전과 변화의 기본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임금의 차이로 노동력이 이동하고, 물가의 차이는 국경 지역의 도소매업이 발달하는 계기가 됩니다. 기업들도 저렴한 노동비와 느슨한 규제를 찾아 국경선을 넘곤 하죠. 경계를 사이에 둔 ‘차이’로 인해 두 지역 간의 인적 교류, 경제적 기회가 커지며 문화적으로 통합되는 ‘국경 지구’의 형성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크게 네 개의 내용으로 구성하였는데요. 우선 미국과 멕시코 두 나라 간의 경계이자 앵글로 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간의 경계로서 미-멕 국경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다음 부분에서는 국경이 형성된 이후 경계를 넘어 이루어진 양 국가 간의 인적, 물적 교류에 대해 다루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형성된 국경 도시들과 마낄라도라 산업지구, 국경의 마약산업 등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세 번째 부문에서는 국경을 넘어간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대해, 네 번째는 국경을 넘어온 이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을 다뤘습니다.
    • 1부 미국-멕시코
      국경 형성 과정
    • 2부 양 국가 간의
      인적, 물적 교류
    • 3부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
    • 4부 국경을 넘어온
      이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
  • 30여 전만 해도 미-멕의 국경은 일상을 오가던 ‘공존선’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금지선’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경의 성격 변화에 따라 국경 인근 지역의 일상 풍경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실제로 국경을 넘어선 양 국가 간의 합법, 비합법적인 인구 이주는 1848년 국경 형성 이후 늘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미국인들이 주시하지 않았을 뿐이죠. 실화 기반의 미국 영화 <맥팔랜드 USA>는 멕시코의 마을을 옮겨 놓은 것 같은 캘리포니아 농촌지역이 배경입니다. 주인공 가족은 ‘미국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라는 대사를 합니다. 국경을 넘는 것에 대해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주민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경계를 넘어갔겠죠. 저도 책으로만 읽었습니다만, 국경 도시인 시우다드 후아레스 주민들은 1970년대까지도 달걀 같은 상품을 구매하러 국경을 넘어 엘파소까지 다녔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국경의 미국 측 지역에는 저가 생필품을 파는 상점들은 성업 중이죠. 국경의 풍경을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은 1994년부터 발효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였습니다. NAFTA 이후 엄청난 양의 상품과 자본, 노동력이 국경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나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양 측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면, 사람들의 이주는 다른 한편의 구성원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출산하기 위해 멕시코의 임산부들이 국경을 넘는 모습들이 미국의 시사 주간지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NAFTA 이후 미국 아래쪽에 사는 이웃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서 '경계해야 할 존재들'로 명확하게 바뀝니다. 라틴계 인구가 흑인 인구를 제치고 미국 내 주요한 소수 인구 집단이 되었고, 나아가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을 미치면서 그들의 존재감이 커졌죠. 결국 미국 사회는 그들의 유입에 대한 구조적인 반발을 드러내게 되었죠.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 트럼프 행정부가 세운 국경 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국경선을 따라 세워진 거대하고 폭력적인 장벽은 라틴아메리카인에 대한 미국 사회의 두려움을 반영한 게 아닐까요.
  • 과거 국경을 따라 형성된 도시와 산업을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거대한 장벽을 마주하고 있을까요? 만일 제가 국경에서 거주하는 주민 중 한 명이라면, 국경에서 벌어지는 일이 절망스럽고, 분노가 느껴질 것 같아요. 멕시코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경을 전면 개방한 나라였습니다. 기사를 접하고 개인적으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물론 2009년 신종플루 때 국경 봉쇄의 효과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지만, 미국이 타이틀 42*를 내세워 전면 봉쇄를 선언한 그 시기에도 멕시코가 국경을 개방한 이유는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겠죠. *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미국의 이민자 강제 추방 정책 그리고 그들이 장벽에 대해 갖는 감정은 절망만은 아닐 것입니다. 카라반들이 고된 여정을 거쳐 미국 국경까지 가는 이유는 길 끝에 더 나은 기회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저는 해외 답사를 가면 되도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교류하는 지구를 방문하려 합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국적도 행태도 달랐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표정이 밝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빈곤을 개척하는 용감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이었거든요. 이처럼 사회가 해결해 주지 못한 빈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가는 수많은 노동자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이 책의 국경 이야기가 어떤 질문을 남기기를 바라시나요? 세계는 거대한 전환점에 와 있다고 생각해요. 20세기 말과 21세기 초반, 전 세계의 경제·사회·정치를 지배했던 규칙들이 무너지고 있거든요. 새 국제 질서의 도래, 관세 장벽 등을 마주하며,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세계화된 세상에 살게 될 것입니다. 3,140여 킬로미터의 국경을 멕시코와 공유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와도 국경을 공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계의 문제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곤 하죠. 하지만 물리적 경계가 아닌 여러 형태의 경계와 국경 이야기가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입장, 멕시코의 입장만 고집할 수도 없죠. 아직 미국처럼 난해한 국경 문제를 겪진 않았지만, 향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그 이상으로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입장은 미국이어야 할지, 멕시코의 입장이 되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미국-멕시코 국경을 넘으려다 국경수비대가 쏜 최루탄 가스를 피하고 있는 여성 ※ 출처 : 로이터 연합뉴스

#03 책을 건네다 경계에 대해 남기는 말

  • 교수님께서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국경선’이란 무엇인가요? 국경선이란 단절하고 가르는 선이 아니라 상호 간 소통하고 교류하는 지점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국경 지역을 답사했는데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일자리가 많고 임금이 높은 싱가포르로 일하러 가고, 싱가포르 사람들은 물가가 저렴하고 음식도 맛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쇼핑을 하고 관광을 즐기고 있더라고요. 그들은 국경을 넘는 지점을 ‘Checkpoint’라고 불렀습니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넘어갈 때 여권을 한번 체크하는 지점이라는 의미죠. 대부분의 월경 과정은 자동화되어 있었고, 국경 수비대는 진지하고 무서운 얼굴 대신 질서가 잘 유지되는지를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적법한 서류를 갖추지 못한 이주민들을 추격·추방하는 미-멕 국경 지역과는 매우 다른 지점이었습니다. 물론 싱가포르-말레이시아와 미국-멕시코 간 관계는 상당 부분 다릅니다. 하지만 국경선이라는 경계를 두고 발생한 ‘차이’가 곧 두 지역 간의 교류의 원인이 되고, 이를 단순히 막는 경계로 쓸 것이냐, 잘 이용해서 발전의 기회로 삼느냐는 그 사회의 몫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 「라 프론테라 - 멕시코 국경을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조우」를 통해 어떤 독자와 만나고 싶으셨나요? 라틴아메리카나 미국에 대해 공부하는 분보다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시기를 기대하고 글을 썼습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 태평양 너머의 내 삶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겠지만, 지난해 9월 조지아에서 발생한 현대자동차-LG 에너지 솔루션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시작된 문제가 결국 우리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는 현재 밀접하게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역사, 사회,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만, 세계를 구성하는 많은 나라와 지역들도 삶에도 매우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 딱 한 문장에만 밑줄을 그어 건넬 수 있다면, 어떤 문장을 고르고 싶으신가요? 그 문장에 담긴 의미와 이유도 함께 들려주세요. “이주자들이 고향집에 보낸 돈으로 그 가족들은 식료품을 구입하고, 필요한 옷을 사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입니다. 이주민들이 국경선을 건너는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인 것입니다. 자신들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이 먹고 살 기본 소득을 위해, 국경을 건너 낯선 지역에서 자국민들이 하지 않는 고된 일을 합니다. 20세기까지 대부분의 국제 이주는 목적지에서의 정착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국제 이주의 가장 큰 변화는 이주자들이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오히려 이주 목적지와 고향 간의 임금 차이, 경제적 기회의 차이를 이용해 가난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간 이루어진 경제 원조 프로그램이 해내지 못한 일들입니다. 이주민들이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이방인과 함께 살아야 할 우리 사회도 기반을 탄탄하게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미국에서는 미-멕 국경 지역 및 이주민에 대한 연구들이 축적되어 있지만, 대부분 국경을 둘러싼 당사자들의 입장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책은 방대하고 깊이 있는 자료들을 살짝 맛보기로 보여드린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갖는 장점은 우리의 시각에서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미-멕 국경은 우리나라에서 지구를 반 바퀴 돌아야 갈 수 있지만, 국경이 둘러싼 그 상황들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든 재현될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우디에 가셨다는 친구, 이모가 독일에서 간호사를 하시는 친구와 함께 자랐고, 가장 친한 친구는 학생비자로 미국에 갔다가 오랜 노력 끝에 얼마 전에 시민권을 취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식탁에 오르는 국산 농산물은 대개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르고 수확한 것이고, 국산 공산품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죠. 학교에서는 결혼 이주를 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이주노동자의 입장도, 이주민을 고용하는 사회의 구성원도 되어 본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 사회가 겪었던 갈등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국경 문제가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