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있다(?)는
나라, 영국에서의 단상

한국연구재단 홍보실 백승민 수석 연구위원

이전호 목록보기 다음호

해가 지고 있다(?)는 나라, 영국에서의 단상 한국연구재단 홍보실 백승민 수석 연구위원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두 번 다시 영국에는 오지 마세요. 팀장님이 영국 올 때 마다 영국 왕실이 위험해지네요.”
영국에서 만난 한 교수님께 영국과의 인연을 이야기를 했더니 그 분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다.

2022년 재단의 국외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운좋게 선정되어 영국 Brighton에 있는 Sussex 대학에서 영국 연구현장의 문화와 연구윤리, 연구부정행위 검증 체계 등에 관해 직접 공부하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있었다.

영국 다이애나 비는 1997년 8월 31일, 불의의 사고로 36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공교롭게 그 시기에 나는 영국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2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순간에 또다시 나는 1997년처럼 영국에 같은 도시 Brighton에 있었다. 1997년 군대를 갓 전역해서 부푼 꿈을 안고 영국에 있었던 청년이 25년이 지난 2022년 사랑하는 가족들과 또다시 영국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화려한 역사를 뒤로 하고 갈수록 쇠퇴해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한 영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친절하고, 유쾌했고, 자유분방했고, 여러 가지 사회적 담론들을 자유롭게 논의하고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 나라였다. 조급함이 없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영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좋게 영국인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는 딸아들 각각 1명씩 두고 있었다. 그 친구네 집에서 자주 모여서 술도 마시고, 한국 음식도 해 주곤 했었다. 딸아이는 이미 독립해서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아들은 이제 19세로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찾으면서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느낀 그들은 부모 자식 사이가 아니라 친구 사이처럼 편한 관계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주저할 주제들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 받았다.

내가 공부하고자 했던 연구현장의 분위기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냥 모든게 자유롭고 자연스러웠다.

대학, 연구소에서 학생, 교수, 연구원들이 생각하는 연구윤리는 너무도 당연하고 몸에 체화(體化)되어 있는 것 같았다. 논문을 쓰면 누가 묻지 않아도 당연히 셀프체크를 했고, 제출하면 또다시 당연히 멘트를 달아 주고 권고사항도 적어 주었다.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었다. 현재에는 한국에서도 서울대, 카이스트 등 웬만한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다 활용하고 있는 Turninit 같은 시스템이 영국은 이미 오래 전에 구축되어 있었다.

영국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에세이를 학교 내부 시스템에 제출하는 순간 어떤 부분이 이미 발표 혹은 제출된 논문과 동일한지 여부를 확인해 주고, 독창성 점수가 매겨진다. 따라서 영국 학생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을 함부로 인용해서 쓰지 않는다. 쓰더라도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하는 것이다.
시스템도 시스템이지만 영국은 어릴때부터 그런 관념과 학습이 체화된 듯 하다. 즉, 문화적인 배경이 연구부정행위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한인 석박사 과정 학생 및 박사들을 대상으로 연구윤리 특강을 하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학생은 학부생을 포함하면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강에 참여한 대부분은 영국에서 학부를 시작해 옥스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있는 학생들이었고, 아주 어릴때부터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학생들도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주요 연구부정 사례를 소개하니 생소하고 신기하다는 듯이 경청했다.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그곳에서 박사후연구원(Post-Doctor) 생활을 하는 박사들 몇 명만이 익히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연구현장의 문화와 풍토가 부러웠다. 물론 영국이라고 연구부정행위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극히 일부였고, 처벌(제재) 수위 또한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못해 가혹했다.

연구윤리, 연구부정행위와 관련된 국내의 법 체계와 제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연구현장의 문화와 분위기인 것 같다. 건강하고 건전한 연구문화,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긴 호흡을 가지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만이 정답일 것 같다.

영국은 지금 해가 지고 있는 나라일지도 모른다.
해가 지고 있는 나라 영국에서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가 120여명이나 된다.
오랜 시간 축적되고 조성된 그런 연구환경, 문화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세계사적 배경은 뒤로 하더라도 부럽고 또 부러울 뿐이다.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그런 건강한 연구 문화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국, 훗날 내가 또다시 가면 왕실에 어떤 큰일(?)이 생길지 궁금해서라도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한국연구재단 정보
  • 대전청사 (34113) 대전광역시 유성구 가정로 201
  • TEL 042-869-6114
  • FAX 042-869-6777
  • 서울청사 (06792)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릉로 25
  • TEL 02-3460-5500
  • 간행물 심의번호20141223-2-17

한국연구재단 웹진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23 NRF all rights reserved.

홍보실
  • TEL 042-869-6117
  • 팩스 042-861-8831

웹진에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나 의견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