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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자본주의 시대의 기술혐오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부 박인찬 교수

누가 감히 기술을 혐오하는가. 과학기술이 절대선(善)처럼 추앙받는 시대에 기술혐오는 부적절하고 불경스럽기까지 하다. 혹은 요즘 주목받는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연결망-이론에 빗대어 보자면, 기술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과 기술의 ‘동맹’을 거스르는 인간 중심적 구태다. 로봇에 대한 불쾌감의 비유로 쓰이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도 더는 예전만큼 낯설거나 불쾌하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인공존재들의 최전선에서 디지털 가상인간이 그 골짜기를 건너 우리에게 속속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을 마냥 좇는 게 능사는 아니다. 기술 진보는 더 잘살게 되리라는 믿음을 줄 때라야 공감을 얻는다. 만약 사는 게 더 힘들어진다면 기술은 저항에 부딪힌다. 초고속 인터넷과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이 자본과 시장의 지배를 받는 지금의 AI 자본주의는 장밋빛 약속과 달리 적잖은 불안과 불만을 낳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AI 자동화로 인한 불평등 때문이다. 자동화 기술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생산성 향상기술과 노동을 대체하거나 절감하는 노동 대체기술로 나뉜다. 문제는 AI 자동화 기술의 다수가 노동 대체 유형이어서 저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새 일자리가 제공되지 않는 한 재취업은 쉽지 않다. 자동화 관련 직종으로의 이직도 전문 교육을 요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주위에서 배달 라이더, 택배기사, 단기 근로자 같은 노동 이주민, 1인 유튜버, 노동력으로부터 아예 이탈한 무직자, 암호 화폐와 주식을 전전하는 개미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자동화로 인한 실직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이 무대에서 사라진 현장은 무인화(無人化)된 세계와 같다. 사라진 인간들은 노마드처럼 부랑하고 유령처럼 배회한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무인 상점이나 키오스크 점포, 조만간 등장할 자율주행차에서 인간은 중심이나 전경에 있지 않다. 때론 으스스하게도, 매끄럽고 투명한 무인화된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AI에 의해 움직인다. 그 안에서 인간 노동자는 장막 뒤에 배치된 뒤편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거나 모처에서 감시카메라를 쳐다보는 일을 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AI 기술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아마존 같은 플랫폼 회사의 서비스도 고객에게서 나온 데이터의 알고리즘 덕분에 가능하다. 이 데이터들을 공급하고 가공하는 것은 인간이다. AI 시스템이나 프로그래밍에 필요한 데이터 분류 같은 초벌 작업은 저임금 인력의 보이지 않는 ‘유령 노동’(ghost work)을 거친다. 작업장은 근처이거나 멀리 떨어진 나라일 수 있다. 인간으로부터 무상으로 취한 데이터 원자재를 인간의 값싼 노동력으로 가공해서 인간에게 상품으로 되파는 게 AI 자동화 산업이다.
AI 자동화의 문제는 단지 기술 실업으로 그치지 않는다. 자동화로 생산성이 높아졌다면 그로 인한 부는 사회 전체로 퍼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쪽에는 이익과 혜택이, 다른 한쪽에는 불이익과 희생이 주어지는 식이다. 가령, 자동화 관련 정보기술 직종이나 플랫폼 회사 전문직의 수입은 늘어난 반면 자동화 기술로 노동력이 대체되는 저숙련 업종에서는 일자리 자체가 줄거나 임금이 하락한다. 게다가 최근의 택시 산업에서 보듯이 카카오 택시 같은 플랫폼 기업의 등장은 지역의 중소 업체들을 일시에 붕괴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미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야기된 포퓰리즘의 심화와 불안정성의 일상화에 직면해 있다. 지금대로면 새로운 자동화의 물결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AI 자본주의가 약속한 기술 진보의 혜택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고 실업, 임금하락, 박탈감을 계속 초래한다면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파견한 군대보다 더 많은 인원으로 제압한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의 기계 파괴 운동이 재연될 공산은 적지만, 신 러다이트 정서가 여러 나라에서 감지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AI 자본주의 시대의 기술혐오는 이를테면 기술을 사랑하기 위해 미워하는 행위다. 표면적으로는 인간을 위협하는 기술에 대한 반감과 증오심을 가리키지만, 인간과 기술을 물화(物化)하는 자본주의와 도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기술혐오는 유령화된 세계의 불평등과 균열과 상처의 이음새에 주목한다. 21세기의 언캐니 밸리는 AI가 자본과 함께 만들어내는 주름 하나 없는 평평한 세계다. 기술혐오는 그런 균열을 연결이니 공존이니 하면서 실제로는 기술중심주의적인 수사로 봉합하려는 시도를 경계한다. 이 노력은 인간만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인간 노동은 기계나 기술 같은 비인간 행위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AI 자본주의에서 수없이 양산되고 폐기되는 다양한 비인간들, 예컨대 로봇, 아바타, 가상인간, 블록체인, 대체 불가능 토큰 등은 무인화된 세계의 비인간 자본주의 국면을 예고한다. 이들 비인간 행위자가 인간 혹은 자본과 맺는 관계는 단일하지 않다. 적대 관계이거나 유대 관계일 수 있고, 둘 다이거나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혐오는 자본주의 공간을 부유하는 비인간 행위자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도모한다. 비인간의 정치경제에 대한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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